美1·6사태 판박이…브라질 입법·사법·행정, ‘대선불복’에 뚫렸다

박형수 2023. 1.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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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67) 전 대통령의 지지자 수천명이 8일(현지시간) 브라질 의회·대법원·대통령궁에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21년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빼닮은 ‘대선 불복’ 무력 시위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평화로운 민주주의와 권력이양에 대한 공격을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한 규탄 입장을 밝혔다.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8일(현지시간) 대통령궁에 난입해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CNN 방송 등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날 오후 2시께 수도 브라질리아 중심부에 있는 3권(입법·사법·행정) 광장에 집결해 3부 기관으로 난입했다. 일부는 ‘보우소나루 대통령(President Bolsonaro)’이라는 글귀와 보우소나루의 사진이 프린트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시위대는 브라질 의회 앞에 설치된 저지선을 뚫고 문과 창문을 부수며 건물 내부에 진입했고 집기·컴퓨터 등을 파괴하며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권력을 되찾겠다” “룰라는 하야하라”는 대선 불복 메시지를 외치며, 둔기로 창문을 깨뜨리고 회의장 집기류를 집어던졌다. 의장석을 점거하고 의장의 책상에 앉아있거나 단상에서 미끄럼틀을 타는 등 난동을 이어갔다. CNN 브라질에 따르면, 의회 건물 내부에서 일부 시위대가 카펫에 불을 붙였고 이에 스프링클러 시스템이 작동돼 건물 내부가 물바다가 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시위대는 의회 복도에 전시된 미술품도 파괴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브라질 출신의 모더니스트 화가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의 그림, 프랑스계 브라질 예술가 마리안느 페레티의 스테인드글라스 설치물,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정치가 루이 바르보사의 흉상 등이 훼손됐다. 시위대는 의회 옥상에 올라가 브라질 군대에 쿠데타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는 보우소나루 지지자. AP=연합뉴스


의회 인근 대통령궁과 대법원도 쑥대밭이 됐다. 각종 집기와 전자 장비 등이 창문 밖으로 내던져졌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공식 사진사인 리카르도 스투커르트는 대통령궁의 집무실에서 여권과 9만5000달러(약 1억2000만 원) 상당의 장비를 도난당했다. 소셜미디어 동영상엔 한 시위 참가자가 대법원 집무실에서 대변을 보는 장면이 담겼다. 일부 시위대는 칼날이 달린 무기를 소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헬기를 동원해 고무탄과 최루액을 쏘며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대는 경찰관을 말에서 끌어내려 바닥에 내팽개치는 등 난동을 이어갔다. 무장 군인들이 뒷문을 통해 대통령궁에 진입하고서야 시위대를 진압할 수 있었다. 오후 9시에야 완전히 해산됐고 당국은 최소 400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대통령궁 내부를 파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통령궁에 난입한 시위대가 말을 탄 경찰을 공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수 피해 지역인 남부 상파울루주 아라라콰라를 방문 중이던 룰라 대통령은 시위 소식을 듣고 이들을 “파시스트”라 부르며 격분했다. 그는 “이들의 야만적 행위에 대해 법의 모든 힘을 다해 조사하고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반복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이같은 사태를 부추겼다”면서 전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내비쳤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의 발언에 “증거 없는 비난”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트위터에 “평화적 시위는 민주주의의 일부지만, 오늘의 사건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며 시위대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룰라 대통령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은 대통령궁의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폭도 중에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조카도 포함됐다. 이날 사건이 일어난 브라질리아의 보안 총책임자인 안데르송 토레스 안보장관은 보우소나루 정부의 법무장관 출신이다. 브라질리아 연방 주지사는 이날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토레스 안보장관을 즉각 해임했다.

각국 정상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충격적”이라며 “브라질 민주주의는 훼손돼선 안 되고, 룰라 대통령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서 브라질 국민들과 민주주의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고 전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브라질 의회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비겁하고 사악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번 시위는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1.8%포인트(p) 차이로 꺾은 ‘노동자의 대부’ 룰라 대통령이 지난 1일 취임한 지 열흘도 안돼 벌어졌다.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19년 집권 후 우파 포퓰리즘 정책과 코로나19 대응 실패, 공금 횡령 등 각종 부패 혐의로 재선에 실패했지만 선거 패배를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 룰라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브라질의 마지막 군부 쿠데타인 1964년 이후, 브라질의 민주주의에 가장 중대한 위협”이라며 “선동적 정치 수사로 급진화된 강경파가 선거 패배 인정을 거부하고 법치를 훼손하는 일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 용어사전 >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폭동 사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 수천 명이 대선 패배에 불복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당선을 최종 승인하는 2021년 1월 6일 상·하원 합동회의를 앞두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해 일으킨 폭력 시위.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과정에서 시위대 4명이 사망하고, 경찰 150여 명이 다쳤다. 사태 직후 경찰 1명이 사망했으며, 4명의 경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 사태 직후 민주당은 폭동을 선동한 혐의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착수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사태 발생 2년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미 하원 1·6 사태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달 트럼프에 책임이 있다며 법무부에 기소를 권고하기도 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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