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스승, 우총평 프란치스코를 기리며

이재선 2023. 1. 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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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2월 28일, 큰 별이 졌습니다.

커다란 일을 성취했음에도, 살아 생전 아무런 명예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당신은 소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이제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에 눈물만이 나오네요.

두 다리가 없어서, 두 주먹을 방바닥에 대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중복장애아를 씻기고, 밥 먹이고, 글자를 가르치던 당신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참으로 눈물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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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기자]

지난 2022년 12월 28일, 큰 별이 졌습니다. 커다란 일을 성취했음에도, 살아 생전 아무런 명예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당신은 소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이제 당신의 빈 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나요? '병신' 주제에 '병신'을 돌본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사회의 멸시와 조롱 속에서, 묵묵히  휴머니즘을 실천하신 분, '병신대장' 우총평 프란치스코! (관련 기사 : 소유로부터 해방된 장애인 복지운동가 http://bit.ly/2QDi59)

이제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에 눈물만이 나오네요.
 
▲ 장례 미사 우총평 프란치스코의 장례미사
ⓒ 지인 제공
두 다리가 없어서, 두 주먹을 방바닥에 대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중복장애아를 씻기고, 밥 먹이고, 글자를 가르치던 당신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참으로 눈물이 나오네요. 당신이 가르친 글자로 경수는 가끔 이름을 쓰곤 했지요. 그게 자신의 이름인지도 잘 모르면서.
   
▲ 장례식장 장례식장에서 상주차림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경수
ⓒ 지인 제공
   
당신이 가신 그곳에는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겠지요. 당신이 가신 그곳에는 약간의 불편함을 지녔다고, 사람을 차별하고 멸시하지 않겠지요. 이제 편히 쉬십시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이 걸어온 80여 년의 가혹한 삶과 감내해온 인내와, 불굴의 의지는 충분히, 그리고 영원히 쉴 자격을 주겠지요.

정말로 보고 싶습니다.

중복장애아를 돌보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으시던 그 시절이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말이 좋아 후원금 모금이지, 솔직히 구걸에 가까웠지요. 두 다리 없는 장애인이 사회복지 운동을 한다면서, 후원을 요청하니, 비웃음과 의심의 눈초리가 얼마나 많았나요.

그 때마다 당신은 나에게 "바오로, 배고프지? 어디가서 점심이나 먹자고" 하시면서 화제를 돌렸지요. 그렇지만 당신 얼굴에 드리우는 서러움, 모멸감, 쓸쓸함. 그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하남, 제천, 통진, 김포 그리고 파주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훌륭한 장애인 복지시설을 만들었지요.
     
▲ 김포시절 초창기 김포프란치스코네집 개원 당시
ⓒ 강성아
그 복지 시설에서,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 하나로 부모가 버리고, 사회가 버린 수백명의 아이들과 장애우들이 따듯하게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겠지요. (관련 기사 : "상수씨와 미영씨에게 빛을 돌려줍시다" http://omn.kr/2fmk)
게다가 당신은 그리 어렵게 만든 모든 시설을, 천주교 사회복지재단이나 국가에 귀속토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황망히 총총히 빈손으로 떠나시려고 그러셨나요? 두 다리가 없어서 여름에 무좀으로 고생할 일이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시던 분.
 
▲ 운구 장례 미사 후 신도들이 운구
ⓒ 지인 제공
 
잘 가세요. 당신이 가신 그곳에는 무좀도, 차별도, 장애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가끔은 사회에서 당신을 알아주곤 했지요. 국민훈장 동백장도 주고, 천주교 원주교구장 감사패도 주고, 심지어는 그 유명한 막사이사이상 후보로 추천도 해주었지요.

남들은 상장을 크게 인쇄해서 동네방네 자랑했을 것인데 당신은 그 상을 받은 사실도 가끔은 잊어버리시더군요. 두 다리를 자른 7차례 대수술 후유증 때문이라고 얼버무리면서요. 하긴 그런 상이 봉사와 헌신으로 가득한 당신의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이제 창밖에는 흩날리던 눈발도 멈추고, 시인의 노래도 멈추었네요. 세상 사람들이 불꽃같던 당신 삶을 잊을까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졸필로 당신의 행적을 적어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참스승, 우총평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여. 
 
▲ 장례미사 납골당 앞에서 주임신부님과 신자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
ⓒ 지인 제공
우총평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 1941년 생  
- 30대 중반 버거씨 병으로 두 다리 절단
- 1985년 작은프란치스코의 집 설립(경기도 하남시)
[현재 성모영보수녀원에서 운영]
- 1989년 살레시오의 집 설립(충북제천 배론 성지)
[현재 성가소비녀수녀회에서 운영]
- 1991년 국민훈장동백장 수상, 막사이사이상 후보 추천
- 1992년 살레시오의 집 설립(제주도 남원)
- 1992년 프란치스코네 집 설립(경기도 김포)
- 1996년 제주도 명예 도민
- 1999년 천주교 원주교구장 공로패
- 2001년 김포시 문화상 수상
- 2001년 프란치스코의 집 설립(경기도 파주)
- 2022년 12월 28일 영면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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