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 '사업'을 넘어서려면

이민희 2023. 1. 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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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구현주의 <공동체의 감수성 : 공동체의 본질에 던지는 일곱가지 질문>

[이민희 기자]

다시 교육청 마을학교 보조금 사업을 하기로 했다. 8년째 지속해 온 시골의 '작은 학교 살리기'와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을 내려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농업농촌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균형발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변방에 사는 이들이 아무리 중심부에 대고 소리친들 그 아우성은 도시라는 '블랙홀'에 허무하게 빨려 들어갈 뿐이다. 결국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보조금 사업은 주민들이 지역을 바꾸는 행동전에 나서는데 마중물 역할을 한다. 우리 지역은 마을학교 보조금 사업을 통해 다양한 마을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고 공동체의 관계망 형성을 촉진하는 성과를 거뒀다. 폐교 위기의 작은학교를 학부모와 주민들의 힘으로 회생시킨데 안주하지 않고 농촌 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데 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중단한다면 지역은 공동체 이전으로 빠르게 후퇴할 것이다.

마을, '운동'과 '사업'의 경계에서
 
▲ 책 <공동체의 감수성> 표지 .
ⓒ 북인더갭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었다. 이러한 신념을 공유한 수많은 이들이 인간다운 삶의 대안을 마을에서 찾고자 했다. 정부도 호응했다. 파괴적이며 각자도생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새로운 성장도, 국가도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중앙부터 지방까지 정책 기조로 '마을'을 채택되기 시작했고 보조금이 풀리면서 '운동'이었던 마을은 '사업'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로부터 마을은 더 복잡해졌다. 마을 일에 속도가 붙고 확장되는 만큼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보조금을 받아 행정의 뒤치다꺼리나 해주는 단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실적을 위한 사업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소진하지 않기 위해, 장시간 저임금의 관계 노동에 지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과 '사업'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상시적으로 부닥치는 '신뢰의 위기, 경영의 위기, 사상의 위기'(국제협동조합연맹, 1980년 레이들로 보고서)를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가 제기되었다.

책 <공동체의 감수성>에서 구현주 작가는 "과연 '사업'으로 마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행정과 결합해 붐처럼 일어난 마을 만들기 '사업'은 결과적으로 마을공동체 강화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내었나? 책은 마을공동체 활동가라면 익숙하지만 가슴에 비수처럼 품고 있는 질문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관 주도의 마을공동체 사업 어디로 가고 있나?

마을은 서로가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당연한 자연스러움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꼈다. 인류의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도 삶의 불안으로부터 발원한 열망이었고 전 세계 공동체 운동은 현실에서 유토피아적 구상을 실천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니 공동체는 인간이 '만들고자 하는' 이상향이자 과정이고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공동체적인 방법으로, 공동체를 실천하는 것이다.

문제는 '관'이 결합하면서부터다. 본디 마을공동체는 민주성, 공공성, 개방성, 수평적 연대, 분권과 협치 등을 핵심적 가치로 삼는다. 그러나 관 주도로 흐를 경우 보조금을 매개로 한 정부 의존도가 높아지거나 다양성, 자율성, 민주성 등이 훼손되는 질곡을 낫기도 한다.
 
"운동이 제도의 영역으로 발을 담그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운동의 자율성이 축소되는 지점이다. 때문에 공동체 만들기가 '운동'에서 '사업'이 될 때, 주민 주도의 운동 지향성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오늘날 전개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관 주도의 주민 동원 사업으로 의심받는 새마을운동과 무엇이 다른가 밝혀야 하는 과제가 있다." (93쪽)
 
국가는 체제 유지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공동체'를 이용하고 동원하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새마을운동'이 그랬다. 새마을운동은 군부 독재 시대 관료적이고 효과적인 주민 동원 체제로 기능했다. 오늘날 마을공동체 운동 제도화의 귀결점은 새마을운동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새마을운동이 체제 유지 강화에 복무했다면, 마을공동체 운동은 주민의 자율성과 자치의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정책을 잘 설계해 놓는다고 해서 저절로 결과값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마을공동체 정책 설계의 가설, 즉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면 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이다' 혹은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면 주민자치는 확대될 것이다'라는 명제는 어떻게 증명되고 있나?

작가는 마을공동체 대해 자본의 투여보다 '배제의 구조'를 바로잡는게 먼저라고 역설한다. 한국 사회 장시간 노동구조로 인해 시간의 빈곤에 처한 노동자들, 청년들은 그만큼 마을공동체에 진입하기 어렵다. 단순히 여가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마을의 일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마을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가정 돌봄을 전담하던 여성의 노동력이 사회적 돌봄에서도 저임금 노동으로 양산되기는 마찬가지이고, 먹고 살기 버거운 경제적 약자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이처럼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는 실상 주민 누구나 참여하기는 힘든 사회구조적인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작가는 "사람들의 경제적 조건이나 삶의 처지가 마을공동체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이라면, 이의 결과물로 형성되는 사회적 자본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형성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던진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오히려 사회적 자본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위험도 있다"(143쪽)는 지적은 날카롭다.

새로운 사회의 바탕이 되어야 할 '공동체 감수성'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윤석열 정부가 얼마전에 건강보험 개혁을 이야기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나라인만큼 건강보험 재정 고갈은 시간 문제다. 베이비부버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사회보험 재정 문제 해결은 향후 한국사회가 지속가능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건강보험 개혁은 의료의 공급자 건 수요자 건 모두 '적정의료'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중요한 것은 합의! 즉 사회구성원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보험료를 조금 더 내는 것, 과잉 진료 관행을 근절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구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규범적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 때문에 건강보험 개혁에는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 요구된다.

이처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개혁은 정책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각성과 연대에 기반한 공존과 상생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어느때보다 공동체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마을공동체가 왜곡되지 않고 건강하고 좋은 사회 만들기 운동으로 지속가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 구조적인 모든 문제들을 공동체로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산적한 과제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역시 '공동체의 회복'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과 제도가 결합하고 행정과 민간이 협력하는 시대, 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문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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