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던 아빠 없지만…이 악문 스키 여제, 월드컵 여성 최다우승 눈앞
"다음 레이스에선 새 역사에 도전한다."
미국 NBC스포츠는 9일(한국시간) '스키 여제' 미케일라 시프린(28·미국)의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통산 82번째 우승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예상했다. 시프린은 전날 슬로베니아의 크란스카 고라에서 열린 2022~23시즌 FIS 알파인 월드컵 여자 대회전 경기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52초53으로 페데리카 브리뇨네(이탈리아·1분53초30)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82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시프린은 린지 본(은퇴·미국)이 보유한 월드컵 알파인 여자부 최다 우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35승의 라라 구트 베라미(스위스)가 여자부 현역 선수 2위일 정도로 시프린의 기록은 압도적이다. 남녀부를 통틀어 역대 최다승은 남자부의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은퇴·스웨덴)의 86승이다. 시프린은 이날 우승 후 자리에 주저 앉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어진 FIS와 인터뷰에서 그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초긴장 상태로 스키를 탔다"면서 "82승을 의식한 것 같다. 정말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는데 성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프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 역사에 도전한다. 10일 오스트리아 플라하우에서 열리는 회전 경기에서 우승할 경우 본을 넘어 여자부 최다 우승 단독 1위로 올라선다. 시프린은 올 시즌 열린 12차례의 회전, 대회전 경기에서 8차례 우승하며 종합 랭킹 1위를 질주 중이다. 아직 자신의 주종목인 회전, 대회전 레이스가 8번 더 남아 있다. 시즌 중 스텐마르크의 기록까지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시프린은 시련을 맞을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일어섰다. 2014 소치올림픽 알파인스키 회전과 2018 평창올림픽 대회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시프린은 거침없이 승수를 쌓으며 종합 선두를 달리던 2019~20시즌 돌연 레이스를 멈췄다. 2020년 2월 초 아버지 제프 시프린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당시 65세였던 시프린 부친의 사인은 사고사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시프린의 멘토였다. 실의에 빠진 시프린은 스키를 벗고 두문불출했다. 은퇴설까지 돌았다. 그는 슬픔을 딛고 한 달 만인 3월 초 복귀했다.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당시 시프린은 소셜미디어(SNS)에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도 행복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안 계신 현실을 받아들이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어쩌면 그 현실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아직 아버지와 이별한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최강자의 면모를 되찾은 시프린은 베이징올림픽을 위해 절치부심했다. 대회 직전 코로나19에 확진되는 악재를 만났지만,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다. 하지만 알파인스키 5개 전 종목 석권을 노리던 베이징올림픽에서 그는 빈손으로 물러났다. 대회 첫 경기였던 대회전에서 미끄러져 기문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며 실격 당했다. 이어진 종목에서도 미끄러지거나 부진하며 '노 메달'로 끝났다. 코로나로 실전 감각이 떨어진 데다 인공 눈으로 만들어진 코스의 설질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마지막 경기였던 회전에서 기문에 부딪혀 넘어진 뒤엔 그대로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시프린은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런 것을 이겨내라고 얘기해주셨을 것"이라며 "하지만 아버지는 여기 안 계시고, 그래서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은퇴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는 또 한 번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최고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꿈 때문이다.
이날 시상대에 선 시프린은 "예전엔 아버지가 시상대에 선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셨다.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에 간직할 것"이라면서 "신인 시절 아버지께선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시상대에서 (미국)국가를 불러야 하니, 정확히 외우라'고 말씀하셨다. 이젠 시상식에서 국가를 부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기록인 83번째 우승은 목표는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라며 다음 레이스 각오를 다졌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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