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 산행서 도중 낙오했지만 서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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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식 기자]
쌓일만큼 눈이 내린 줄 몰랐다. 그래서 도보여행에 별다른 준비없이 너무 가볍게 나섰다. 수서역에서 모여 대모산을 거쳐 구룡산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대모산으로 내려오는 프로그램에는 10명이 참석했다.
날씨는 모처럼 포근했지만 미세먼지로 시야가 뿌옇다. 산이니까 그래도 도심보다는 낫겠지 위안하며 대모산에 들어섰다. 산 초입에서는 장비 없이도 그럭저럭 따라갈만 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니 점점 길이 미끄러위졌다. 길잡이 하는 분이 이래서 아이젠이 필수라 했건만 급히 나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게 문제였다.
이 도보여행을 지속적으로 함께 하며 설산에 철저히 대비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오랜만에 참가한 친구와 처음 참가한 나는 여러모로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로 하여 그들까지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민폐를 끼칠 수 없어 그들의 완주를 바라며 대열에서 자진 하차하기로 했다.
살아가다보면 모든 일이 꼭 계획된 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나름 열심히 틀을 잘 짜서 시작했다 해도 전혀 다른 변수가 생겨 엉뚱한 결론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예상밖의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물론 오늘의 경우는 준비 부족이라는 명백한 과오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대모산으로 향했다
일행에서 떨어져 나온 친구와 좀 더 올라갈 것인지 이대로 내려갈 건지 잠시 고민했다. 나름 수년째 많은 산을 오르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단은 우리끼리 코스를 점하기로 했다. 미끄럽지만 조심조심 표지판을 따라가는 길이 새로운 즐거움이고 쌓인 눈을 보는 호사는 덤으로 누리는 행복이다.
산을 오르다보면 등산이 우리의 삶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정말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쯤에는 어김없이 정상이 보이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되는.
▲ 대모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
ⓒ 홍미식 |
대개의 경우 산 정상에는 고도를 새긴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데 대모산에는 정상석 대신 높이가 적힌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 커다랗게 나침판처럼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자리하고 누워있는 것도 좀 이색적이다. 날이 맑으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는데 탁한 공기에 가려져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산 정상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 약간의 간식은 다시 기운을 내어 다음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더 높은 다음 산을 향할 것인가, 둘레길로 돌아갈 것인가, 되돌아 내려갈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늘 선택을 강요 당하며 사는 지도 모른다. 순간의 선땍이 아주 큰 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가 예상될 때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지금의 선택이야 아주 가볍게 할 수 있는 경우지만.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시작점도 중요하지만, 삶에 있어서나 산행에서나 그에 못지 않게 멈춰야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왼쪽 구룡산으로 향하고 싶은 유혹을 애써 누르며 지금은 돌아설 때라고 생각하고 아쉬운 마음은 다음을 기약한다.
준비 부족으로 힘들었던 겨울 산행에서 겸손을 배우며 여러 갈래 중 거리도 가장 짧고 경사도 완만하게 예상돼 수월하게 여겨지는 하산길을 선택했다. 지금은 그저 우리의 예상이 맞기를 바랄 뿐, 오를 때보다 오히려 내려갈 때 사고 위험성이 크다는 걸 되새기며 더욱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 성모상, 혹은 한복의 여인상의 돌탑 |
ⓒ 홍미식 |
사진은 내려오는 길에 만난 돌탑이다. 누가 저렇게 정성스레 쌓았을까? 그 돌탑 전면에 멀리서 언뜻보면 성모마리아상인 듯. 좀 더 가까이 가보니 한복을 입은 여인인 듯, 위태로운 듯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묘한 조형의 돌탑이 우리의 무사한 하산을 기원해주는 것 같다.
2023, 새해를 맞으며 아슬아슬 했지만 무사히 마무리한 대모산 산행, 우리의 낙오는 전혀 서글프거나 아쉽지 않다. 현명한 판단과 빠른 대처, 바른 마음가짐과 겸손함을 일깨워준 행복한 경험에서 얻은 즐거운 마음으로 새해의 희망과 함께 가능성까지 섣부른 예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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