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들이는 값진 경험, 여기서 한 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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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경 기자]
"삐비비삑~ 삐비비삑~"
오전 5시 30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알람을 끄고,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일으킨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해 오전 11시 50분까지 30명분의 점심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0여 명의 직원은 점심을 굶는다. 부랴부랴 씻고, 정신을 차린다. 우유 한 잔, 빵 한 조각을 입에 구겨 넣는다. 출근하면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을 테니까.
▲ 개장 준비중인 북한산 사기막골 야영장 전경. 흰지붕은 ‘솔막’이라는 간이숙소, 바로 옆은 ‘카라반’이라는 조금 고급스러운 숙소다. |
ⓒ 문세경 |
대중교통이 불편해 왕복 40km 자차 출퇴근, 소요 시간 왕복 두 시간을 빼면 좋았다. 산을 좋아하니 매일 아침 등산하는 기분으로 출근했다. 멋진 풍경은 덤이다. 야영장 주변을 청소하고 잡풀을 뽑고 카라반에는 조리도구를 솔막에는 이불과 상비약품, 청소도구를 비치했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근무지 변경했으나
근무한 지 한 달이 될 무렵, 야영장에서 잡풀을 뽑고 있는데 직원이 불렀다.
"국립공원공단 북한산사무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10월 말일 자로 계약이 종료돼요. 혹시 직원 식당에서 일할 생각 없어요? 집이 정릉이라고 하셨죠? 사무소에서 집도 가깝고 출퇴근 시간 줄어서 좋을 것 같은데."
국립공원공단 북한산사무소는 정릉에 있다. 집에서 700m 거리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역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예상 못 한 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0월 26일부터 직원 식당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하는 일이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있을까. 임노동자로 처음 해보는 새벽 출근이다. 만만치 않다. 이곳에서 30~40인분의 점심을 준비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물론 혼자 하는 일은 아니다. 같이 일하는 분이 한 분 더 있다. 하숙집을 20여 년 운영했던 베테랑 경력자다. 나는 그분을 도와서 보조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착각을)이다. 북한산사무소의 근무 방식은 주 5일 근무지만 토요일, 일요일이라고 무조건 쉬지 않는다. 주 7일 중 이틀을 본인이 정해서 쉰다. 평일에 쉴 수도 있고, 주말에 근무할 수도 있다.
두 명이 일할 때는 보조역할(식재료 다듬고, 씻고, 자르고, 설거지)만 하면 되지만 혼자 일할 때도 있다고 한다. 주 5일 근무하고 이틀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두 명 중 한 명이 쉬는 날은 혼자 일해야 한다. 출근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함께 일하는 분이 말했다.
"내일은 제가 쉬는 날이에요. 제가 쉬면 문쌤 혼자 밥을 해야 합니다. 혼자 할 때는 쉬운 메뉴로 하면 돼요."
▲ 간절하게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야채를 썰며 한 모금, 야채를 익히면서 한 모금 마셨다. |
ⓒ 문세경 |
출근하면 반드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하지만 도무지 마실 짬이 나지 않는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마시고 하자, 아니야, 커피 마시느라 시간 맞춰 밥을 못 할 수도 있어, 참자.'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고 있었다. 시간 결벽증(약속 시간은 칼같이 지킨다. 지각, 결석은 내 인생에 없다)이 있는 나는 마시면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집에서 가져온 머신으로 (캡슐)커피를 내렸다. 향긋한 커피향을 맡으니 기운이 솟았다. 커피잔을 옆에 둔 채로 야채를 썰며 한 모금, 야채를 볶으면서 한 모금 마셨다. 육수 끓는 시간 동안 다 마셔야지, 하고 커피잔을 들었다. 뜨거운 커피는 어느새 냉커피로 자동 변경되었다.
▲ 주말에는 산에 올라가는 직원들의 도시락을 싼다. 도시락가방에는 밥통과 반찬통 두개를 넣는다. 사진에 보이는 것 말고 메인통에는 고기류의 단백질을 담는다. |
ⓒ 문세경 |
▲ 베테랑 경력자인 선생님은 나랑 같이 일할 때는 약간 복잡한 메뉴를 선정한다. 이날은 닭계장, 잡채, 계란말이, 멸치 볶음을 만들었다. 나는 보조만 했다. |
ⓒ 문세경 |
11시 30분, 드디어 밥과 반찬을 다 만들었다. 무거운 국통을 가스레인지에서 식당으로 나르고, 반찬을 스테인리스 통에 예쁘게 담았다. 오늘의 메뉴는 들깨미역국, 오징어볶음, 애호박볶음, 브로콜리, 김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주방을 휘저으면서 겨우 제시간에 맞춰 완성했다.
11시 50분, 직원이 하나둘, 식당문을 열고 들어온다. 중요한 발표를 하기 위해 단상에 선 기분이다. 떨렸다. 사람들은 내 발표를 듣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공감할까, 잘했다고 칭찬해줄까. 생애 처음으로 30명이 넘는 분량의 밥을 혼자서 했다고 의미심장한 기분으로 서 있자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시간 맞춰 밥은 했는데, 맛은 괜찮을까? 짜거나 싱겁다고 하면 어떡하지?'
나 합격인가?
식사를 마친 직원이 개수대에 식판을 두고 나가면서 말했다.
"혼자 하느라 고생 많으셨죠?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는 말이 "합격했습니다"라는 말로 들렸다. 잘리진 않았다. 2014년에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보조 조리사로 일하다가 3일 만에 잘린 악몽이 떠올랐다(관련 기사 : 학교급식실 실상에 경악... 3일만에 해고됐다 http://omn.kr/a8cz).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마터면 "만세"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식은 커피 마시면서 발 동동 구르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듯, 긴장은 풀리고 마음은 가벼웠다.
직원들의 식사가 끝나고 남은 반찬을 (식판 아닌) 접시에 담아 혼자 밥을 먹는다. 배가 아주 고팠지만 밥맛이 돌지 않았다. 텅 빈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이라니, 전혀 예측하지 못한 그림이다. 이쯤이면 눈물 한 방울 떨궈야 맞는데 청승가련 모드는 나랑 안 어울리니 참자.
외로운 식사를 마친 후, 개수대에 쌓인 식판을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고, 대형 냄비는 직접 씻는다. 설거지와 정리는 시간 맞춰 밥하는 것에 버금가는 노동이 필요하다. 모든 그릇이 무거워서 손가락 힘이 약한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 밥과 반찬이 남을때가 많다. 담당자는 남으면 무조건 버리라고 했지만 온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버리는 것은 고문이었다. 그래서 위와 같이 써 붙였다. |
ⓒ 문세경 |
4시간 30분 동안 30~40인분의 밥을 한 것은, 결혼 후부터 현재까지 25년 동안 3인분의 밥을 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노동이다. 한순간에 집약된 노동에는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이 배는지, 얼마나 귀한 정성이 담기는지를 이번 일을 하면서 알았다. 2022년은 돈 안 들이고 오십 평생에서 가장 값진 것을 배운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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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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