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양말이 사람으로 음식이 동물로…관찰력이 만든 일상 속 초현실 세계

2023. 1.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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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에서 마주했던 물건들이 재미있는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다면 어떨까요. 영국 런던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출신 사진작가 헬가 스텐첼은 주의 깊게 관찰한 일상 생활용품·음식·빨랫감 등의 소재가 특정 사물이나 동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식빵으로 누워있는 강아지를 만들고 눈과 코에 건포도를 붙여 완성한 ‘브래드 펫’. Brad Pet ⓒ Helga Stentzel / CCOC 2022


그는 런던에 있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 디자인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 과정을 마치고 광고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다가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활용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2014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다람쥐처럼 생긴 빵 한 조각, 개를 닮은 바나나 한 조각 등을 올리며 팔로워를 끌어모았어요. 인기에 힘입어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를 활용해 작업하며 BBC·혼다 등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고, 2020년에는 영국 내 ‘올해의 푸드아트 크리에이터’ 상을 수상했습니다.

‘적극적인 관찰하기’를 통해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는 즐거움을 주는 헬가 스텐첼의 초현실주의 작품 세계가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 소개됐어요.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 있는 CxC아트뮤지엄에서 그의 개인전 ‘헬가 스텐첼 사진전’이 열린 것이죠. 김채원·최아민 학생기자가 이번 전시를 기획한 ㈜씨씨오씨 김예은 전시기획 매니저를 만나 헬가 스텐첼의 작품을 둘러봤어요.

헬가 스텐첼은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했다. ⓒ Helga Stentzel / CCOC 2022


“헬가 스텐첼은 ‘집 안의 초현실주의(Household Surrealism)’라는 주제로 일상에서 발견한 여러 사물을 찍어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초현실주의는 과거에 인간의 무의식에서 꿈과 이상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는데요. 헬가 스텐첼은 무료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고, 이 요소들이 약간의 위트가 더해져 얼마든지 재미있게 재탄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이용해 보는 이들이 작품에 쉽게 공감할 수 있어요.”

사진·조형물·영상 등 약 70점의 작품이 전시된 이번 사진전은 일상 생활용품으로 자화상을 만든 ‘초상화’, 티백을 재사용한 ‘티 타임’, 음식에 생명을 더한 ‘먹을 수 있는 존재’,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으로 동물을 만든 ‘빨랫줄 동물들’, 집을 상상의 놀이터로 탄생한 ‘홈플레이 & 빨래의 표정들’, 음식으로 개인적·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생각을 위한 음식’ 등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됐어요.

김예은(맨 오른쪽) 매니저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서랍을 열면 개와 고양이 모습이 나타나는 전시물 ‘퍼피넛’을 소개하고 있다.

아민 학생기자가 “작가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나요?”라고 물었어요. “작가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작은 산업도시 옴스크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에서는 당시 읽을 만한 지역 신문은 하나뿐이었고, 볼 만한 TV 채널도 두 개뿐일 정도로 오락거리가 부족했죠. 심심했던 작가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뚫어져라 관찰하면서 물건들을 여러 형태의 모양으로 만들어봤어요. 심심한 환경은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됐어요.”

작가는 대부분 무생물을 주제로 작업하는데요. 때로는 사람의 신체부위나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특이한 모양을 찾아내기도 해요. ‘초상화’ 섹션에서는 빨래바구니가 놓인 모습을 보고 표정으로 따라 한 ‘쌍둥이’, 종이를 뒤집어서 입술을 만들어 얼굴에 가져다 댄 ‘DIY 립 필러’ 등을 만날 수 있어요. ‘티 타임’에서는 작가가 차를 마시고 남은 티백을 재활용해서 캐릭터로 구현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요. ‘스토리타임’은 눈알을 붙인 티백 두 개가 마주 보고 같이 책을 보는 모습이 담겼는데요. 이외에도 노래 부르는 등 마치 인간과 같은 티백의 행동을 작품으로 만나 볼 수 있어요.

양배추와 올리브를 이용해 만든 강아지 ‘크런치’. ‘브래드 펫’과 형제이며, 인터넷에서 밈(meme)으로 유명하다. Crunchie ⓒ Helga Stentzel / CCOC 2022


‘샐러드에서 만나요’는 샐러드가 될 위기에 처한 피망이 겁먹은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먹을 수 있는 존재’ 섹션에는 작가가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동물을 만든 작품이 전시돼 있어요. 채원 학생기자가 양배추로 만든 강아지 사진을 보고 “정말 귀여워요”라고 말했어요. 바로 ‘크런치’라는 작품이었죠. “이 작품이 인터넷에서 밈(meme·SNS 등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패러디물)으로 유명해요. 양배추로 강아지 모양을, 올리브로 눈과 코를 만들었죠. ‘브래드 펫’의 강아지는 ‘크런치’ 강아지와 형제인데요. 식빵으로 누워있는 강아지를 만들고 눈과 코에 건포도를 붙였죠.”

김 매니저가 ‘먹을 수 있는 존재’ 섹션을 둘러보던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헬가 스텐첼에게 특별한 작품”이라며 작품 하나를 소개해줬어요. 곰이 된 호두가 체리 아령을 들고 있는 ‘피칸 베어’였죠. “작가가 2020년 ‘올해의 푸드아트 크리에이터’ 상을 받은 작품이에요. 결혼 후 육아를 하던 그는 이 상을 통해 다시 한 번 창작 활동과 사회 진출을 할 수 있다는 힘을 얻었어요.” 아민 학생기자가 “푸드아트 사진들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요?”라고 했어요. “치밀하고 섬세하게 연출된 것이에요. 푸드아트 대부분은 조명·색감 등을 신경 쓰고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죠.”

티셔츠와 재킷을 빨랫줄에 걸어 만든 소 ‘스무디’는 온순하지만 감정 기복이 있는 친구다. Smooothie ⓒ Helga Stentzel / CCOC 2022
넓은 초원을 달리고 싶은 활기찬 성격의 말을 빨랫감으로 표현한 ‘페가수스’. Pegasus ⓒ Helga Stentzel / CCOC 2022


‘빨랫줄 동물들’ 섹션은 작가가 2020년 여름,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부모님 댁에서 빨래를 널다가 시작한 시리즈예요. 티셔츠와 재킷을 널어 자유분방한 소를 만든 ‘스무디’, 빨랫줄에 걸린 말 ‘페가수스’ 등이 소중 학생기자단의 시선을 사로잡았죠. “작가는 빨랫줄 동물들에 개성을 부여했어요. ‘스무디’의 소 스무디는 온순하지만 감정기복이 있는 친구예요. ‘페가수스’의 말 페가수스는 활기찬 성격이죠. 두 작품 속 동물 모두 넓은 초원을 향해 서 있는데요. 우리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앞으로 좁은 방을 벗어나 넓은 곳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겼어요.”

작품 옆 체험존에서는 빨랫감으로 직접 동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채원·아민 학생기자가 어떤 동물을 만들지, 어떤 빨랫감을 사용할지 고민했어요. 김 매니저가 “양을 만들어볼까요?”라고 제안하고, 몸통을 만들어주자 학생기자들도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죠. 흰 상의와 검은 양말을 이용해 양의 다리, 흰 양말로 꼬리, 노란 반바지와 검은 양말로 독특한 양의 머리를 완성했죠. 학생기자들은 “빨랫감으로 동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시작은 어려웠는데, 조금 상상력을 발휘했더니 동물의 이미지가 그려졌어요”라고 했어요.

‘홈플레이 & 빨래의 표정들’ 섹션에서는 집 안에 있는 물건과 건물 외벽의 그림,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 활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헬가 스텐첼 사진전’에 마련된 칠판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홈플레이 & 빨래의 표정들’ 섹션 중 ‘홈플레이’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활용해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들로 구성됐는데요. 특히 ‘바이트 크기’는 키보드 자판을 팝콘으로 만들어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죠. “키보드로 만들어지는 편리한 콘텐트를 팝콘 먹듯이 무분별하게 소비하도록 우리가 어떻게 유도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그리고 ‘히 삭스’라는 작품은 여러 색깔의 양말을 겹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만들었어요.” ‘빨래의 표정들’에서는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과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으로 사람의 표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확인했죠.

마지막 섹션 ‘생각을 위한 음식’의 작품들은 개인적·사회적 주제를 담고 있죠. “’번 아웃’은 식빵으로 토스트기를 만든 작품이에요. 어떠한 일이나 활동이 끝나고 스트레스를 풀지 못한 상태를 ‘번 아웃(burnout)’이라고 하는데요. 작가는 토스트기와 검게 탄 식빵을 통해 ‘번 아웃’이라는 사회적 문제 메시지를 담았어요.” 노란 옥수수 사이에 낀 노란 레고 머리 ‘찰떡궁합’은 여러 사람 사이에서도 자신의 독특함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장난스럽게 반영했죠. “작가가 ‘찰떡궁합’을 영국에서 우리나라로 가져올 때 공항 세관에서 검사를 받았어요. 세관 직원들이 이 작품을 진짜 옥수수로 착각한 것이죠. 그만큼 작가의 작품이 시각적으로 디테일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최아민(왼쪽)·김채원 학생기자가 ‘헬가 스텐첼 사진전’에서 그의 ‘집 안의 초현실주의’ 세계를 알아보고, 헬가 스텐첼처럼 빨랫감을 이용해 양을 만들어봤다.


섹션을 다 둘러본 뒤 미디어관을 찾은 학생기자단은 영상에 푹 빠졌어요. 이곳에선 ‘페가수스’ ‘스무디’ 등 헬가 스텐첼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영상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죠. “전시장에는 미디어관 영상뿐만 아니라, 작가가 전시 개막 전 내한했을 때 벽에 그린 그림과 만든 물건도 있어요. 이를 찾는 재미가 쏠쏠할 거예요.”

채원 학생기자가 “작가처럼 창의적으로 사진 찍는 방법이 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작가는 자신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항상 들고 다니는 아이디어 노트에서 나온다고 했어요. 관찰한 대상을 노트에 그리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사진을 찍는 것이죠. 작가처럼 꾸준히 관찰한 대상을 통해 즐거움을 찾다 보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사진이 나올 겁니다.” 소중 친구들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상을 꾸준히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헬가 스텐첼처럼 일상 속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 헬가 스텐첼 사진전

「 기간 3월 1일(수)까지
장소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 272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3F CxC아트뮤지엄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30분)
관람료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만 13세 미만) 1만원, 36개월 미만 영유아 무료입장(증빙서류 지참).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헬가 스텐첼의 사진 속 대상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어요. 이런 대상을 활용해 창의적인 작품이 탄생했다는 게 신기했죠. 특히 양배추와 올리브로 강아지를 만든 ‘크런치’가 인상적이었죠. 자주 먹던 음식이 강아지로 변신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집 안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일상과 가까워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어요. 저도 헬가 스텐첼처럼 주변 대상들을 잘 관찰해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요.

김채원(서울 원촌초 4) 학생기자

‘헬가 스텐첼 사진전’에는 밝고 유쾌한 작품들이 많았어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크런치’였죠. 맛있는 음식이 입맛을 다시게 하면서도, 귀여운 강아지가 눈을 사로잡았어요. 빨랫감을 이용해 소를 만든 ‘스무디’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직접 빨랫감으로 작품을 만들어보는 체험을 했는데요. 어떤 빨랫감을 쓸지, 어떤 대상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헬가 스텐첼이 얼마나 깊게 관찰을 하고 작품을 만드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죠. 소중 친구들도 헬가 스텐첼의 유쾌한 작품을 감상하면서 상상력을 키워보길 바라요.

최아민(경기도 미사강변초 5) 학생기자

글=박경희 기자 park.kyunghee@joongang.co.kr, 사진=이대원(오픈스튜디오)·㈜씨씨오씨, 동행취재=김채원(서울 원촌초 4)·최아민(경기도 미사강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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