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 배리 본즈도 참는 것부터 시작했다

김식 2023. 1.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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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욕심을 버리라”는 말을 선수도, 팬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다 아는 얘기를 꺼낸 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욕심을 어떻게 버릴지, 그 방법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타격은 본능과의 싸움이다. 타자의 가장 큰 본능은 욕심이다. 안타를 치려는 마음, 홈런을 때리겠다는 결의, 팀을 이기게 하겠다는 승리욕이다.

이게 왜 나쁜가?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만 앞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심리적인 압박감을 갖는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이기려는 욕망과 비례해서 커진다.

타자가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준비를 끝내야 한다. 그게 훈련이고 전략이다. 타격보다 중요한 건 타격 이전까지의 과정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 충분히 설명할 것이다.준비를 끝내고 타석에 들어섰다고 해서, 무작정 덤비지 마라. 그리고 치기 좋은 공을 기다려라.

참을 인 3개면 3할을 친다

타자는 치고 싶은 욕심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나는 초구에 일단 공을 보려고 노력했다. 날 상대하는 투수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투수들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더 잡으려 했다. 난 그걸 노리고 타격한 적도 있지만, 초구는 대체로 지켜봤다.

타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수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 나와 마주한 투수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 공 스피드가 달라졌을 수 있고, 새로운 구종을 던질 수도 있다. 심지어 20~30분 전에 상대했던 같은 투수라도 피칭 밸런스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난 초구는 투수를 파악하는 데 활용했다. 투수의 공을 가까이서 보고 느끼며 속으로 스윙 타이밍을 맞춰봤다. 자, 충분한가?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초구에 스트라이크가 날아온 게 아니라면 2구째도 타이밍을 측정했다. 공을 하나 더 보면 더 많은 투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투수가 용감하게, 또 정교하게 스트라이크 2개를 먼저 던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타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투수의 성향에 따라 1구 또는 2구부터 스윙할 필요가 있다. 서너 타석 중 타자가 한 번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덤벼도 투수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내가 전성기 때 타석에 서면 3구 안에는 좋은 공이 거의 안 들어왔다. 스트라이크존을 한참 벗어나는 패스트볼이나, 달아나는 변화구가 대부분이었다. 타석마다 공 2~3개를 기본적으로 보고 시작하니 타격이 수월해졌다. 볼카운트가 여유 있더라도 치겠다고 덤비지 않았다. 타자는 한 타석에서 좋은 공 하나만 노려서 좋은 결과를 내면 되기 때문이다. 2스트라이크 이후라도 기회가 올 수 있다.

아니면 볼넷을 얻는 것도 좋은 승부다. 투수에게 공 4개 이상을 던지게 해서 출루한다면 팀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4번 타자니까 적극적으로 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공격법이 맞는 상황도 있지만, 아닐 때도 많다.

장타를 치고 싶은 욕심을 억제하고 볼넷을 얻는 것도 훌륭한 전략이다. 난 초구를 쳐서 아웃되는 게 정말 싫었다. 내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을 때린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초구를 받아쳐 안타가 돼도 뭔가 개운치 않았다. 특히 내가 속한 팀 타선이 약할 때는 그 공격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 내가 1루를 밟아봐야 득점으로 연결될 확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배리 본즈(왼쪽)는 2001년 73홈런을 터뜨리며 메이저리그(MLB)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 보유자는 마크 맥과이어(오른쪽·1998년 70홈런)였다. 두 슬러거는 볼넷%도 상당히 높았다. AP=연합뉴스


다시 강조하지만, 투수에게 공을 많이 던지게 하는 건 괜찮은 전략이다.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의 볼넷/타석% 데이터를 본 적이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20.6%)와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 배리 본즈(20.3%)가 1·2위를 달렸다. 베이브 루스는 19.4%로 3위였다. 홈런 타자 이미지가 강한 마크 맥과이어의 볼넷 비율도 17.2%에 이르렀다.

120년 야구 역사상 타격을 가장 잘하는 이들의 볼넷 비율이 이렇게 높다. 이 기록이 타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힘을 70% 써야 90%가 나온다


‘치고 싶은 욕심 다음’으로 버려야 할 것은 ‘세게 치고 싶은 욕심’이다.

실전 경기에서 100%의 힘으로 스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타자에게 세게 치고 싶은 욕심이 있기에 필요 이상의 힘을 쓰기 마련이다. 그러면 120%의 힘을 사용해 오버 스윙을 하게 된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면 스윙 리듬이 깨져 방망이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스윙이 퍼져 나와서 타이밍도 늦어진다.

나는 타석에서 내 힘의 60~70%만 활용하려고 했다. 그렇게 의식해야 실제로는 80~90%의 힘을 쓰는 거 같았다. 일단 근육에서 힘을 빼고 하체의 균형을 먼저 잡아야 한다. 그리고 스윙의 타이밍과 궤적에 집중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살살 치라는 뜻이 아니다. 힘을 잘 이용하라는 거다. 이건 타자뿐 아니라 투수도 마찬가지다. 골프나 다른 스포츠의 원리도 같다. 복싱이나 종합격투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주먹을 꽉 쥐고 때린다고 강펀치가 되는 게 아니다. 가볍게 빵 때리는 거 같은 펀치가 빠르고 정확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던 내가 물리수업을 열심히 들었을 리 없다. 그래도 타격에 대해 고민하면서 알게 된 아주 기본적인 물리법칙이 있다. 힘은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F=ma)이다. 배트의 무게(m)와 가속도(a)가 스윙의 힘을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아니라 ‘가속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에 힘을 좀 빼고 스윙하다가 공과 만나는 구간(콘택트존)에 방망이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힘센 타자는 차고 넘치지만, 그 힘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타구에 싣는 타자는 드물다. 예전부터 “신인 타자가 프로에 와서 힘 빼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진짜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프로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건 힘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나보다 체격이 좋은 선수, 나보다 파워가 뛰어난 선수는 얼마든지 있다.다만 난, 힘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일찍 깨달았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야구를 제법 잘했다. 늘 주전으로 뛰었다. 프로에 와서 은퇴를 앞둔 시점에 “홈런 못 친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마추어 시절에는 펑펑 때렸다. 거의 매 경기 홈런을 쳤다.

이때 고민했다. 더 세게 칠 것이냐, 더 정확히 칠 것이냐.

나는 세게 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세게 치려다 보면 몸에 불필요한 힘이 많이 들어가 헛스윙하곤 했다. 그러면 자존심이 상하더라. 투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온힘을 다 쏟지 않아도 좋은 스윙으로 타이밍을 잘 맞추면 홈런을 칠 수 있다.

그래서 내 목표는 헛스윙을 하지 않는 것이 됐다. 내가 잘 때릴 수 있는 공을 기다려 좋은 스윙을 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었다. 나쁜 공을 골라내면 한 타석에 투구 한두 개는 스크라이크존 가운데로 온다. 가운데로 오는 공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받아쳐 좋은 타구를 만들면서 동료들이나 감독님께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 타격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좋은 공을 기다려야 잘 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버려야 할 것은 ‘모든 공을 다 치겠다’는 욕심이다.

스트라이크라고 해도 보더라인 근처로 날아오는 공은 때려봐야 좋은 타구를 만들기 힘들다. 몸쪽으로 꽉 박히는 공, 바깥쪽에 살짝 걸치는 공, 그리고 너무 높은 공과 낮은 공은 콘택트하기 까다롭다. 타구에 힘을 싣기도 어렵다. 스트라이크라고 다 같은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존 가운데를 향하는,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인 공을 쳐야 강한 타구를 만들 수 있다.

프로에 와서 슬럼프에 빠진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걸 극복하려고 스윙을 점검하고, 내 타격 영상도 분석했다. 그래도 부진 원인을 찾지 못할 때가 있었다. 언젠가 김인식 감독님이 명쾌한 답을 주셨다.

“너 요새 어떻게 치는 줄 알아? 볼을 쳐. 볼 말고 스트라이크를 치란 말이야.”

초등학생한테 할 법한 말이지만, 김인식 감독님의 지적은 매우 정확했다. 스윙이 문제가 아니라 볼(또는 볼에 가까운 스트라이크)을 치려고 덤비는 게 부진의 이유일 때가 적지 않았다.

컨디션이 나쁠 때 영상을 되돌려 보면, 내 방망이는 공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나쁜 공에 스윙하는 일이 많았다. 심리적으로 몰리면 한가운데로 오는 투구를 놓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다 보면 나쁜 공에 손이 또 나가는 악순환이 생겼다.

잘 칠 수 있는 공이 올 때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KBS 해설위원, 정리=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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