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계단식 아니라 절벽처럼 온다”
유동성 관리, 부동산 투자 축소, 한계기업 점검
[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올해도 대내외 불확실성이 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업 실적 악화 우려와 고금리에 따른 자금경색, 지정학적 리스크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다. 수백조의 자산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올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위한 리스크 전략을 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 운용사 리스크관리 책임자들이 말하는 올해 키워드는 '유동성 관리' '한계기업 분석' '부동산 익스포저 축소'로 요약할 수 있다.
유동성 관리와 한계기업 모니터링이 최우선 과제다. 정태준 KB자산운용 리스크관리본부장은 "고금리 등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 부동산 분야 등에서 일부 사업장의 부실화가 예상된다"며 "신용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한계기업이나 사업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유동성 리스크 측면에서 고객이 환매를 요청할 때 언제든 응할 수 있도록 펀드 유동성 관리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 KB 머니마켓펀드(MMF)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전혀 편입하지 않은 상태여서 안정적"이라면서도 "혹시나 모를 유동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ABCP의 기초자산에 대한 모니터링을 좀 더 철저히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신용리스크 모니터링도 강화한다. 정 본부장은 "크레딧전략팀과 협력해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 등 한계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크레딧이벤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부동산·인프라펀드 등 대체투자자산에 대한 사전 리스크 검토 및 사후관리를 철저히 할 계획이다.
시장 상황이 불확실한 만큼 선제적 투자 회수 검토와 금융시장 요인별 시나리오 분석도 필요하다. 조영식 신한자산운용 위험관리책임자(CRO)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금리 인상 기조에 따른 신용스프레드 확대와 자산가치 조정, 높은 원자재 가격 영향의 경기 하방 우려, 부동산시장 침체 등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조 CRO는 "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을 통해 포트폴리오 이상 신호를 적시에 파악해 대응할 방침"이라며 "금융시장 요인별로 발생 가능한 손실위험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체투자펀드 만기도래 자산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 회수 계획을 세우고, 기존 투자자산의 핵심 관리지표의 분기별 점검 등 심도있는 모니터링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는 "신규 기업 투자의 경우 기후 리스크관리를 위한 고탄소배출 업종, 경기민감 업종, 잠재 리스크 업종 등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경험상 위기는 계단식이 아닌 절벽처럼 갑자기 온다는 경고도 나왔다. 김국태 미래에셋자산운용 리스크관리부문 부문장은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때 위기는 단계적으로 다가오기보다는 한 번에 크게 온다"며 "일정 위험 수준을 예상하고 투자한 자산가치가 예상치 못한 수준까지 하락하고, 이 때문에 유동성·신용·거래상대방 등 위험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부문장은 "투자자산의 현금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벤트를 중심으로 사전에 시나리오를 분석해 최적의 투자의사결정이 되도록 면밀히 준비할 것"이라며 "포트폴리오는 위험요인 분석을 통해 분산효과가 충분히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개별 기업의 유동성과 재무건전성을 살펴 하방 위험을 관리하고, 신규 투자는 우량자산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창주 한화자산운용 리스크관리실장은 "복합이벤트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라"고 조언했다. 이 실장은 "스트레스 테스트 정교화 등 위기관리 프로세스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우호적인 거시경제 변수와 유동성 축소, 신용경색 우려 등 신용리스크 증가에 대한 사전적 대응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정적 전망에 매몰되기보다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부정적 전망에 고정된 투자전략이 외려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심재환 한국투자신탁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현재의 암울한 시장 상황에 입각한 전망이 틀릴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원자재 가격과 서비스 물가 안정으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 각국 정부의 정책 대응력이 조금씩 생기면서 투자심리가 호전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심 CIO는 "주식시장 상승, 금리 소폭 상승 국면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며 "시장 컨센서스보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하면서, 수익 달성에 지나치게 매달리기보다는 체계적 운용과 리스크 관리로 안정적 운용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의 경우 저평가 경기 관련주 등을 저점에서 사서 비중을 확대하고, 채권은 금리가 시장 컨센서스와는 달리 하락 국면으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적절한 회수기간 관리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해외주식의 경우 경기 호전의 수혜는 미국 등 선진국보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가 더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해, 이머징 시장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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