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개혁]尹 꺼낸 '중대선거구제'…정개특위 14명 중 8명이 "선호한다"
중앙일보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소속 의원을 상대로 전수조사(5~8일)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14명 중 13명이 “비례성과 대표성을 늘리는 선거제 개편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선거제 방식으로는 소선거구제(4명)보다 중대선거구제(8명)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번 전수조사는 익명으로 진행했다. 정개특위 위원 17명(민주당 8, 국민의힘 8, 정의당 1) 대상의 이번 조사에는 국민의힘 8명(이양수·김상훈·이만희·장동혁·정희용·조해진·최형두), 민주당 5명(전재수·김영배·문정복·신정훈·허영), 정의당 1명(심상정) 등 14명이 응답했다. 민주당 남인순 위원장, 맹성규·이탄희 의원은 답하지 않았다. 이번 정개특위는 지난해 8월 구성됐으며, 공직선거법 개정 시한(4월 10일)을 3개월 앞두고 있다.
선거제 개편에는 민주당 의원 1명을 제외한 93%(13명)가 찬성했다. 지난 총선에 도입된 ‘준(準) 연동형 비례제’를 바꿔야 한다는 게 주요한 이유였다. 2019~2020년 민주당·민생당·정의당 등이 “국회 구성을 다원화하겠다”는 취지로 패스트트랙에 올린 준연동형 비례제는 ‘위성 정당’ 사태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양당제를 더욱 강화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정치인 개개인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 뜻이 더 잘 녹아들 수 있게 선거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고, 야당 의원도 “극심한 대립의 정치를 선거제 전면 개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민주당 한 의원은 “선거제 개편은 너무 많은 의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시간도 짧다”며 논의 자체를 반대했다.
정개특위 중대선거구제 우위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지역구 크기를 늘려 복수 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 가운데 무엇을 선호하는지 물었을 땐 ▶중대선거구제(8명) ▶소선거구제(4명) ▶응답 유보(2명) 순이었다. 국민의힘에선 7명이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했고, 1명이 응답을 유보했다. 민주당·정의당에선 소선거구제 4명, 중대선거구제 1명, 응답 유보 1명이었다. 설문에 응하지 않은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앞서 대선거구제(4~9인) 법안을 발의한 점을 고려하면, 정개특위에선 중대선거구제가 우위인 상황이다.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의원들은 “득표와 의석의 불일치가 줄어든다”는 명분 외에도 “대통령이 언급해 논의에 탄력을 받을 것”이란 현실론을 들었다. 반면에 소선거구제로 답한 의원들은 “(지역별로 비례의원을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제로도 지역 대표성과 비례성은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비례대표제 확대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답변이 8명으로 찬성(5명)보다 많았다. 대체로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 비율 동결을 주장했다. “중대선거구제가 수도권 야당 독식 구조를 완화할 수 있고, 비례대표제는 문제가 많다”(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유에서다. 반면 수도권과 비례 의석 비중이 높은 민주당에선 상대적으로 소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 의견이 많았다.
각 제도의 장단점을 절충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농촌 유권자는 소선거구제를 좋아하니, 대도시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고, 또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지방 인구 감소를 고려했을 때 의원 정수 증원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3인 이상 선출이라면 비례성이 높아질 것”이라거나 “권역별 비례제와 결합하면 논의할 수 있다”는 긍정적 답변이 많았다.
선거법 개정안 10건 제출…강경파가 변수
이미 국회에는 지난해 6월 이후 10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이 가운데 중대선거구제를 골자로 하는 법안 5건은 박주민·김상희·전재수·이탄희·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제만 고집하던 20대 국회와 달리 이미 내부에선 중대선거구제가 한가지 대안으로 검토됐다”며 “윤석열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4년 전보다 선거제 합의 가능성은 커졌다”고 전했다.
학계에선 올해가 선거제 개혁의 적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논의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정치학)는 “현역 의원은 유불리를 이유로 반대하겠지만, 대세의 흐름이 형성돼 논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고,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정치학 박사)도 “지난번 총선 때 적용한 선거법 자체가 기간이 정해진 한시법(限時法)이라 무조건 바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 진영 강경파의 반대다. 민주당 강성 당원의 지지를 받는 유튜버 이동형씨는 지난 4일 자신의 방송에서 “지난 총선 경기도 득표율은 민주당 53.9%, 국민의힘 41.1%이었지만, 의석수는 민주당 51석, 국민의힘 7석이었다”며 “이걸 타파하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건 말도 된다”고 주장했다. 보수 논객인 주동식 제3의길 편집위원도 지난 5일 페이스북에 “중대선거구제는 이슈와 전선을 분산시킨다”며 “민주당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기회를 놓치고, 자칫하면 국민의힘의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적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중대선거구제는 그 자체로 여러 조합이 가능해, 단순히 지금 상황에서 누구에게 유리하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각자의 유불리로 정쟁을 벌이기보다는 국회에서 정식 논의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현석·성지원·강보현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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