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미국의 보호무역 회귀, 국제연대로 견제해야

2023. 1. 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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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전 주미대사, 경남대 석좌교수·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미국 정치학자 에드워드 러트워크는 냉전이 끝날 무렵 “이제 지정학의 시대는 가고, 지경학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최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쓴 뉴욕타임스 칼럼을 읽으면서 30년 전 러트워크의 말이 생각났다. 크루그먼은 미·중 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21조 ‘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 제한’을 둘러싼 분쟁에서 미국이 패소했음에도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옹호했다. 그는 자유무역주의를 주창해 온 미국이 이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나쁜 영향을 줄 것이나, 미국의 행동은 옳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WTO가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등 상당수 미국의 여론 주도층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면서도 법치주의를 지켜나갈 수 있는데도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양분법적 사고를 한다. 이런 미국의 변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걱정스럽다.

「 미국에서 WTO 무시 경향 고조
무역국 한국 등에 악영향 끼쳐
EU 등과 연대, 보호무역 막아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첫째, 국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를 만들어 자유무역주의를 주창한 이유는 1차 대전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대공황의 충격을 더 깊게 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에 역행하는 것은 국제 경제에 심각한 폐해를 불러올 것이다. 둘째, 미·중 경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냉전 이후 미·중 경제 연계가 심화해 미국의 중국 견제에도 미·중 경제 디커플링에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있었는데, 크루그먼의 양분법적 주장은 미·중 경제 디커플링이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우리 경제는 대표적인 개방 경제이다. 지정학이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을 지배하면 전 세계가 영향을 받지만 우리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미국 행정부·의회 등 정책 결정자뿐 아니라 연구소·언론 등 여론 주도층에 대한 정책 대화를 확대해야 한다. 대화의 초점도 경제적 영향뿐 아니라 지정학에 놓을 때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미국의 미·중 관계 학자들은 미국이 만든 ‘규범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와 동맹 체제’는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강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국제질서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법의 지배’이고, 미국이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 미국의 우위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미국 학자가 수긍한다.

둘째, 유사한 생각을 하는 국가 간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회귀 가능성을 우려하는 많은 국가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유지에 힘쓰는 국가들과 일치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캐나다·일본·호주 등이다. 이들은 최근 주요 7개국(G7) 회의, 나토 정상회의 등에 한국을 초청하고, 이들 국가의 고위 관리들은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WTO의 권능 유지, 보호무역주의 회귀 방지 등을 의제화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셋째, 기술 초격차 유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초격차 유지는 경제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은 지난해 1월 노동당 8차 전당대회에서 전략 무기는 물론 전술핵 개발을 공언하고, 지난해 9월에는 핵 독트린을 억제력 위주에서 공격 위주로 전환하는 법까지 통과시켰다. 이후 한국에서는 미국 핵우산의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이 퍼졌다. 북핵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해서는 미국 핵우산을 보다 든든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을 확보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 동맹으로서의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양자 기술, 차세대 원전, 바이오, 인공지능(AI), 로봇, 우주 항공, 수소 등 12개 전략 기술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 회의에서 ‘기정학’ 표현을 쓰며 기술이 갖는 지정학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올바른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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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전 주미대사, 경남대 석좌교수,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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