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때 '워라밸' 즐긴 검사들…어쩌다 '과로사 위기' 몰렸나 [장세정의 시선]
정치 검사들, 권력 비리에 눈감고
정치 판사들, '정치 재판' 질질 끌어
권력비리 방치, 재판 지연 피해 커
요즘 검사들 5년치 '설거지' 한창
서울중앙·수원지검에 사건 몰려
엄정한 수사와 신속한 재판으로
무너진 형사사법체계 되살려야
죄를 지었다면 경찰·검찰의 수사를 받고, 혐의가 드러나면 기소돼 재판에서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법치국가에서 상식이다. 너무도 당연한 형사사법 절차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비정상적으로 굴러갔다. 술에 취해 택시 기사를 폭행한 이용구 변호사(문 정부 법무부 차관) 사건을 축소·은폐했던 경찰의 권력 눈치 보기 사례는 언급하기조차 민망하다. 무엇보다 지난 5년 검찰과 법원의 파행이 심각했다. 군사 독재 정권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강골 검사와 대쪽 판사가 보이지 않았으니 법과 상식이 실종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상식과 시비가 전도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비리 의혹을 받는 자들이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쳤으니 말 그대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었다. 법이 능멸당하고 상식이 실종되는 와중에 검찰만이라도 제역할을 했으면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검찰총장 체제에서 '친문 정치 검사들'은 의혹이 불거져도 눈을 감기 바빴다. 수사 흉내를 내더니 대충 덮거나 물타기하기 급급했다. 심지어 신성식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이던 2020년 6∼7월 존재하지도 않는 녹취록 내용을 KBS 기자에게 흘려준 혐의로 지난 5일 뒤늦게 기소됐다. 권력 비리를 수사해야 할 검사가 사실 왜곡 범죄를 저질렀다니 기가 찰 일이다.
지난 5년의 법치 파행도 모자라 국민의 심판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무기 삼아 지난해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만들어 검찰 수사에 족쇄를 채웠다. 이에 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법 개정 없이도 검수완박을 우회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 비리 수사에 숨통을 틔웠다.
하지만 문 정부에서 쏟아진 권력형 비리 의혹이 사실상 방치되는 바람에 지금 검찰은 5년간 쌓인 '수사 설거지'하기 바쁘다.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엘리트 검사들은 지금 이원석 검찰총장 체제에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비리 수사에 명운을 걸고 있다. "문 정부 시절 특수부 검사들은 정치 외압으로 수사를 못 해 '워라밸(일·생활의 균형)'을 즐겼으나,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검사들은 인력 부족 와중에 수사할 사건이 넘쳐나 자칫하면 과로사할 것 같다"는 말이 법조계에 나돌고 있을 정도다.
내일(10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두한다. 이 대표를 둘러싼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은 문 정부 시절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 와중에 불송치 결정됐고, 지난해 1월엔 성남FC 수사 무마 논란이 벌어져 친문 성향 박은정 당시 성남지청장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에 고발당했다. 정치에 휘둘린 성남FC 의혹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국민 신뢰와 사법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할 책임이 검찰 앞에 놓여 있다.
검찰이 그나마 기본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면, 법원은 여전히 암담한 지경이다. 무엇보다 정치 사건의 재판을 질질 끌어 사법 정의가 제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조국 전 장관 비리가 언제 터졌는데 재판은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다.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에겐 지난달 징역 5년이 구형됐다.
윤미향 무소속(전 민주당) 의원이 연루된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사적 유용 의혹 등은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5) 할머니가 폭로하면서 공분을 일으켰다. 그해 9월 사기·횡령·배임 등 8개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이 지연되면서 지난 7일 윤 의원에게 징역 5년이 구형됐다. 법원이 다음 달 10일에야 1심 선고를 한다니 대법원까지 가면 윤 의원은 4년간 세비를 고스란히 챙길 상황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검찰이 2020년 1월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을 재판에 넘겼으나 법원은 1년 3개월간 본재판을 한 번도 열지 않았고 3년이 지난 지금도 1심 재판 중이다. 당시 재판을 맡은 김미리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내 '사법부 하나회'란 비판을 받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어서 구설에 올랐다.
일본 검찰과 미국 대법원처럼 법을 다루는 기관이 중심을 잡아주면 나라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강도와 살인범도 나쁘지만, 정치 검사와 정치 판사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더 클 수도 있다. 검찰에 이어 사법부가 하루속히 제자리를 찾도록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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