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에 113조 쏜다…인도 파워, 구글·스벅·샤넬에 英총리도 접수 [글로벌 리포트]
글로벌 기업 구글·마이크로소프트·IBM·스타벅스·샤넬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최고경영자(CEO)가 인도계란 점이다. S&P에 따르면 미국 포춘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인도계가 CEO인 기업은 58곳에 이른다. 정계에서도 인도계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국가 원수에 오른 인도 혈통이 최소 30명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0월엔 인도를 식민 통치했던 영국의 총리(리시 수낵)를 배출하기도 했다. 최근 아일랜드 총리로 재임명된 리오 버라드카 역시 인도계다.
인구 14억 인도의 '맨 파워'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가 올해 세계 1위의 인구 대국, 10년 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그 중심엔 세계 정·재계를 움직이는 인도계가 있다. 미 저명한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은 "인도는 세계의 가장 중요한 인재 원천"이라고 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1년 해외 거주민들의 모국 송금액 순위에서 인도계는 893억 달러(약 113조4110억원)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해외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해 모국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미 이민정책연구소 따르면 2021년 인도계 이민자 가정의 평균 소득은 15만 달러(약 1억9000만원)로 다른 이민자 가구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또 인도계 이민자의 80%가 학사 학위를, 49%가 석사 학위 이상을 보유했을 정도로 학력 수준도 높았다.
인도계가 서구에서 성공한 바탕엔 우선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과 높은 교육열이 꼽힌다. 헌법이 인정한 언어만 22개인 인도에선 사실상 영어가 공용어로 쓰인다. 또 인도엔 인도공과대 등 이공계 명문대들이 많을 뿐 아니라, 영미권 명문대로 유학 가는 경우가 많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2022년을 기점으로 영국 내 인도 유학생 수는 중국 유학생을 추월해 가장 많은 유학생 집단이 됐다. 지난해 영국에서 인도 유학생에게 발급한 비자는 2019년보다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미국 내 전체 유학생 중 인도 학생의 비율도 2012년 11.8%에서 지난해 21%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유수의 서구 대학들은 파격적인 장학금과 취업을 지원하며 인도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샹카르 수바나라사야 만타 전 인도과학기술교육위원회(AICTE) 의장은 인디언 익스프레스에 "서구 대학들은 학내 연구 활동에서 보안 유지를 위해 중국 유학생들보다 인도 유학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도인 특유의 기질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비벡 와드와 미 카네기멜론대 공대 교수는 "인도인은 지난 수십 년간 부패와 열악한 인프라, 제한된 기회와 싸우면서 생존력·회복력을 길렀으며 인도 가정에선 겸손함과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이런 점이 사회에 나가면 근면과 창의성, 기업가 정신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젊고(평균 연령 27.9세), 우수한 기술 인력이 풍부한 인도는 중국을 대체할 노동력 공급원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애플은 2025년까지 아이폰 생산시설의 25%를 중국에서 인도로 옮길 계획이다. 인도의 인구수는 올해 중국을 넘는 데 이어 2063년엔 17억 명에 달한다는 전망이다. 거대 인구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소비에 적극 나서면서 인도의 내수 성장도 이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인도는 10년 안에 미국·중국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명목 GDP 기준)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인디언 파워'엔 걸림돌도 있다. 우선 일자리 창출 속도가 노동력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지난달 실업률(8.3%)이 1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고질적인 남녀 차별 문제로 15~64세 인도 여성의 취업률은 중국(69%)보다 훨씬 낮은 10%대에 불과하다. 경제 성장의 결실을 일부 부유층이 독식하는 빈부 격차도 문제로 꼽힌다.
■ “美·中·印 3극 시대 열린다”
「 일본 니케이는 지난 2일 "2023년 인도가 미·중과 함께 세계 3극으로 떠오른 해로 기억될 것"이란 진단을 내놨다. 철저하게 국익을 우선시하는 현실주의 외교 정책을 펴는 인도는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국면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매체는 올해 역시 미·중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도는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국제 정치에서도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국가로, 미 주도의 중국 견제 안보 협의체 '쿼드(Quad)'의 일원이다. 동시에 중국·러시아가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브릭스(BRICS)'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인도는 미국과 가깝게 지내며 영토 분쟁으로 얽힌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지난해 9월 러시아·중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다.
김찬완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소장은 중앙일보에 "냉전시대 비동맹 노선을 추구하던 인도는 탈냉전 시대, 특히 나렌드라 모디 정부 들어 국익을 앞세운 다자 간 동맹을 맺으며 외교적 힘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원유를 할인된 가격에 대량 사들여 이익을 얻고 있지만,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가 필요한 미국은 인도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인도를 중국의 대체 생산기지로 보고 관계 강화에 힘쓰고 있다. CNN은 인도에 대해 "서로 적대적인 모든 나라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고 평했다.
인도는 오는 9월 뉴델리에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연다. 2024년 총선을 앞둔 모디 정부는 G20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중재자'로서의 리더십 과시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인도는 외교·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파트너라고 조언한다.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하며,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 협력할 부분이 많다는 설명이다. 올해는 한·인도 수교 50주년이기도 하다.
」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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