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북산 엔딩’을 아시나요?

정진호 2023. 1. 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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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경제부 기자

북산 엔딩. 신조어라기엔 오래됐지만, 주로 온라인에서 아직 활발하게 쓰이는 말이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당대 최강 농구팀이었던 산왕공고를 기적처럼 이긴 북산고가 그다음 경기에서 탈락하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시작에 비해 허무한 마무리를 표현하기 딱 좋은 말이다.

지난 주말, 추억을 되새기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극장에서 보고 왔다. 영화의 배경은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전국대회 2차전이다. 강백호는 물론 북산의 주장인 채치수까지 실수를 거듭하며 큰 점수 차로 뒤진다. 그런데도 북산의 감독인 안 선생님은 선수를 질책하지 않는다. 못 한다는 이유로 욕하는 관중은 한 사람도 없다. 농구를 처음 시작해 룰도 잘 모르는 백호에게 안 선생님은 응원을 보내면서 잘할 방법을 알려준다.

지난 7일 메가박스 코엑스점 전광판에 나온 ‘슬램덩크’ 광고. 정진호 기자

앞 좌석 몇 개를 제외하곤 가득 찬 극장에선 30~40대 남성이 상당수였다. 만화는 북산 엔딩을 맞았지만, 여전히 『슬램덩크』를 첫사랑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 북산고의 전국대회 탈락을 비난하는 마음이었다면 이렇게 오래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 안에도, 밖에도 북산을 비난하는 어른은 없다.

통계청 고용동향을 분석해보면 지난해 11월 전체 실업자(66만6000명) 중 3분의 1이 넘는 23만5000명이 20대다. 20대 실업자는 전년 같은 달보다 1만7000명(7.6%) 늘었다. 모든 연령대 중 실업자가 1년 전보다 증가한 건 20대뿐이었다. 20대 실업자 증가세는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연속으로 이어졌다. 지난해는 고용시장이 역대급으로 호조를 보였다는 때다. 20대만 예외였다.

지난달 말부터 취재해 2일 작성한 기사에서 인용한 통계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은 이렇다. “20대 써보면 별로 쓰고 싶지 않을걸. 어떻게든 자기가 정한 1인분만 하려 한다” “실력은 없는데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목을 매니... 헛바람만 들어 그 모양이지” “일자리 많은데 힘든 일 안 하려고 하니 그렇지”. 20대도, 실업자도 아닌 30대 직장인이 봐도 상처인 말이 넘친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상반기 대기업 합격자의 스펙을 분석한 결과 72.4%가 1개 이상의 자격증을 소지했고, 42.8%가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었다. 인턴십 경험자는 38.3%에 달했다. 2017년 잡코리아 조사에선 자격증 소지 비율이 53%, 공모전 수상자는 18.6%에 불과했다. 철부지 이미지의 ‘MZ’ 꼬리표가 붙었지만, MZ세대는 분명 전보다 더 치열하게 노력한다.

산왕공고에 큰 점수 차로 밀려 전의를 잃어가는 팀원들에게 강백호는 말한다. “농구 상식은 내게 통하지 않아. 나는 초짜(시로우토)니까.” 이 대사에 스크린 속에선 관중이, 밖에선 관객이 열광한다. 이제 막 사회로 발을 내딛고자 하는 초짜는 응원받을 자격이 있다.

정진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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