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엔저'에 늘어난 엔테크족...올해도 웃을 수 있을까?

김경희 2023. 1. 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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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반기 역대급 ‘엔저’(엔화가치 하락)가 이어지면서 엔테크(엔화+재테크)족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가 주요국 통화 대비 약세를 보이자 환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거래 건수는 1만145건으로 2011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2월(5273건)과 비교하면 불과 9개월 사이에 52%나 증가했다. 지난해 12월도 1만57건으로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이는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해외 투자자 입장에선 같은 값으로 일본 주식을 더 많이 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는 지난해 1월 달러당 115엔에서 10월 장중 151엔으로 크게 떨어졌다. 차후 엔화가치가 반등하면 환차익을 노릴 수 있다. 여기에 지난해 세계적인 증시 하락에도 불구하고 일본 증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 것도 이른바 일학개미(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가 몰린 배경으로 꼽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엔화 직접 투자도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의 엔화 예금 잔액은 6851억 엔이었다. 지난해 말(4967억 엔)과 비교하면 11개월 새 38% 증가했다. 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은행에서 개인이 엔화를 사들인 금액도 지난해 12월 223억8288만 엔으로 1년 전보다 약 30배 급증했다. 11월에는 232억8566만 엔으로 한해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들어 엔화값은 빠르게 반등(엔·달러 환율은 하락)하고 있다. 새해 첫 거래일인 지난 3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가치는 129엔대를 기록했다. 130엔대를 밑돈 건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이다. 7일 현재는 132엔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는 지난해 9월부터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를 내다 팔아 엔화를 사들이는 등 외환시장에 개입한 영향이 크다. 또 지난해 12월 일본은행이 장기금리 상한선을 기존 0.25%에서 0.5%로 높이는 ‘사실상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선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지난해 일본 금융시장에 뛰어든 투자자들은 적잖은 환차익이 기대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새해를 맞아 시장 전문가 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70%가 “올해 달러당 엔화값이 120~126엔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의 오드리 차일드 프리먼 수석 전략가도 “올해 상반기 중 125엔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엔고 현상’에만 기대해 올해 일본 증시ㆍ엔화 투자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화 강세가 이어지더라도 강도는 이전보다 약해질 수 있어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도 계속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엔화를 팔고 미국 달러로 표시된 미국 국채 등을 사들이는 흐름은 여전하다. 최근엔 엔화와 함께 원화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어 한국 투자자 입장에선 엔고 현상이 희석될 수 있다.

또 한국 증시와 달리 엔고 현상은 일본 증시에 부정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 증시는 엔화가치의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오르면 일본 증시는 약세를 보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강세를 보인 경우가 많았다. 환차익을 얻더라도 주식 투자 손실로 상쇄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엔화 예금의 경우 금리는 다른 외화예금과 달리 0%라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경제학) 교수는 “투자자 관점에서 의미 있는 수익을 기대하려면 달러당 100엔대 아래가 돼야 하는데, 그런 정도의 ‘엔고’ 가능성은 올해 안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일본 입장에선 국가 부채가 많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낮기 때문에 금리를 더 올리기가 쉽지 않다”이라며 “다만 차후 미국이 금리를 내리는 요인이 생겨 미ㆍ일 금리 차가 줄어들면 엔화 강세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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