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받으려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여자가 있다
[김성호 기자]
언젠가부터 '관종'이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관심종자의 준말로, 관심이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족속이란 뜻이다. 혈통을 얕잡아 부르는 말인 '종'자가 붙었으니 고운 시선에서 나온 말일 리 없다. 싸이월드부터 시작된 인터넷 기반의 온갖 SNS가 활발히 이용되며 온라인에서 남의 관심을 붙잡으려 온 정신을 쏟는 이들이 관종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관종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먼저 떠오를까. 셀카 몇 장 정도로는 관종이라 불릴 수 없다. 혼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직접 찍고 인터넷에 게시한 뒤 감성적인 글귀 정도는 적어줘야 관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다.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와서 기념사진을 올린다거나 시험을 치르며 사진을 올리는 이들이 논란이 되기도 했으니 관종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 해시태그 시그네 포스터 |
ⓒ 판씨네마(주) |
자존감 낮은 관종의 참담한 실패기
그러나 어느 관종은 반대의 길을 걷는다. 고통스런 경험이며 뼈아픈 실패, 절망, 좌절, 우울 따위를 전시하여 다른 이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관종병이 심해지는 경우는 흔해도 나아지는 경우는 드무니, 불행을 선택한 관종의 삶은 갈수록 괴로워지게 마련이다. 타인의 동정이며 관심을 받기 위해 제가 처한 상황을 부풀려 이야기하는 뮌하우젠증후군이 이 부정적 관종들의 진단명이라 하겠는데, 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그 환자가 가히 폭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정적 관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이달 개봉하는 신작 <해시태그 시그네>가 바로 그 영화다. 1985년생 노르웨이의 젊은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평범한 여성이 희대의 관종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현실감 넘치게 그렸다. 처음엔 유머러스한 코미디인 줄 알았던 것이 점차 공포스런 이야기로 나아가니 때로는 현실이 공포영화보다 더욱 공포스러울 수 있단 걸 생생하게 느끼도록 한다.
▲ 해시태그 시그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그녀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이유
시그네에겐 주목이 필요하다. 그녀가 관심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알린다. 영화의 첫 장면, 둘은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있다. 토마스는 한 병에 수백만원이나 하는 와인을 시키고는 시그네에게 전화를 받는 척 먼저 나가라고 말한다. 시그네는 식당 안 모두가 자기들을 보고 있다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마스의 말에 시그네는 결국 식당을 나서고 토마스는 그 술을 들고 잽싸게 달려 도망친다.
흥미로운 건 토마스를 쫓아 달린 직원이 결국 그를 놓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그네를 마주쳤음에도 알아보지 못한단 점이다. 시그네의 존재감이란 게 그렇다.
영화는 거듭하여 시그네가 관심을 받지 못 한단 걸 보여준다. 그녀는 너무나 평범하여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소외되기 일쑤다.
▲ 해시태그 시그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관심 앞에 자유로운 인간만 돌을 던져라
영화는 시그네가 불법 약물을 구해 먹으며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그네의 상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그녀가 망가지는 것에 비례하여 주변의 관심을 얻어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까지 속여 가는 시그네는 마침내 스스로조차 속여버리고 만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이가 거짓을 동원하여 관심을 갈구하면 어디까지 몰락할 수 있는가를 <해시태그 시그네>가 그려낸다. 참혹하기까지 한 이 이야기가 오로지 영화 속에만 있다 할 수 없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온갖 SNS와 유튜브에서 넘실대는 관심에 대한 열망들이 그 근저엔 박약한 자존감을 깔고 있지는 않은가 우려하게 된다. 어쩌면 개중 상당수가 그러할지 모를 일이다.
▲ 해시태그 시그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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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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