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험연극의 뿌리’ 리빙시어터, 연극 ‘로제타’로 첫 내한

장지영 2023. 1. 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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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극공작소 마방진과 합작… 구한말 의료와 교육에 헌신한 로제타 셔우드 홀 소재로
연극 ‘로제타’에 출연하는 미국 리빙 시어터 배우들과 한국 극단 극공작소 마방진의 배우들이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옐로밤 연습실에서 언론시연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 최고의 아방가르드 극단으로 현대연극에 큰 영향을 끼친 리빙 시어터가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난다. 리빙 시어터는 한국의 극공작소 마방진, 옐로밤과 공동제작한 연극 ‘로제타’의 시범공연을 13~14일 광주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 극장2에서 선보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국제공동 창·제작 공연사업의 하나인 이번 연극은 구한말 한국에 들어와 평생 여성에게 근대 의료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힘쓴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의 이야기를 다뤘다.

리빙 시어터 출신으로 극작과 연출을 맡은 요세프 케이(한국명 김정한)는 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연습실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로제타’는 25살의 나이에 말도 모르는 조선에 와서 고군분투한 로제타 셔우드 홀의 아름다웠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재미교포인 그는 “수년 전 우연히 방문한 서울 마포구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일기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리빙 시어터는 1947년 줄리안 베크와 주디스 말리나가 창단해 미국 오프오프브로드웨이의 시작을 만든 전설적인 극단이다. 세계연극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극단으로 파격적인 실험과 논란으로 유명하다. 특히 예술을 억압하는 자본주의와 화폐제도 등을 없애야 한다면서 무정부주의 혁명을 주창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을 떠나 유럽에 망명해 활동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극공작소 마방진은 장르를 넘나드는 스타 연출가이자 극작가 고선웅이 2005년 창단한 극단이다. 그동안 수많은 수작을 발표했으며, 지난해 발표한 연극 ‘회란기’는 한국연극베스트7을 수상하기도 했다.

로제타 셔우드 홀(왼쪽)이 만든 한글점자 교재는 최근 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

리빙 시어터 예술감독 겸 배우인 브래드 버지스는 “리빙 시어터는 누구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극단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작품을 만들 때 관객들이 극장을 떠나며 좋은 변화를 갖기를 원한다.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꾸려는 것이 우리가 계속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번 한·미 합작 공연 ‘로제타’가 다루는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90년 남편 윌리엄 홀과 함께 조선에 온 의료 선교사다. 1894년 남편이, 1898년 딸이 각각 병에 걸려 죽었지만,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병원인 광혜여원과 최초 맹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건립하는 등 평생 여성 교육과 의료 봉사를 위해 헌신했다. 그가 제작한 평양여맹학교 한글점자 교재는 지난 5일 문화재로 등록된 바 있다. 또 그의 아들 셔우드 홀도 의사가 되어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보급하는 등 한국의 결핵 퇴치에 이바지했다.

이번 공연이 자칫 실존 인물의 위인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김 연출가는 “로제타의 삶을 처음 접했을 때 리빙 시어터에서 배운 가치가 떠올랐다. 리빙 시어터는 돈이나 명예를 떠나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려는 극단이기 때문에 협업을 제안했다”면서 “연극은 관객이 로제타를 삶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경험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강민 대표는 “로제타의 국적과 상관없이 그가 실천한 보편적 가치인 인류애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연극 ‘로제타’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옐로밤 연습실에서 언론 시연회에 앞서 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오른쪽부터 고강민 극공작소 마방진 대표, 작/연출 요세프 케이(한국명 김정한), 토마스 워커 리빙 시어터 배우, 브래드 버지스 리빙 시어터 예술감독, 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 옐로밤

실제로 이번 작품은 로제타의 일대기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닌 마방진 배우 5명과 리빙 시어터 배우 3명 등 총 8명이 배역 구분 없이 돌아가며 로제타를 연기한다. 나이, 성별,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배우가 “나는 로제타입니다”라고 선언하는 도입부는 로제타의 인류애가 현재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막 없이 한국어와 영어 대사가 혼재하는 형식이 독특한데, 구한말 당시 로제타와 조선인들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언어의 장벽을 더 실감 나게 만든다. 리빙 시어터에서 50년간 활동해온 배우 토마스 워커는 “이번 작품은 리빙 시어터의 앙상블 테크닉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한 명이 주된 배역을 하는 게 아니다. 배역을 뛰어넘어 물 흐르듯 대사들이 이뤄진다. 누군가의 지휘에 따라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연출된다”고 설명했다.

연극 ‘로제타’는 이번 시범공연 이후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본공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또 2024~2025시즌에 미국 뉴욕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추진 중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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