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족이 원수다

2023. 1. 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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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청란교회 목사, 동서대학교 석좌교수(가족생태학), 하이패밀리 대표

‘이놈의 웬수야.’ 우리네 부모들이 자주 내뱉었던 소리다. 그 소리엔 언제나 한숨이 따랐다. 나는 한동안 원수(怨讎)와 원수(元帥)를 구분하지 못해 헷갈렸다. 대장이면 대장이지 왜 원수냐고 따져 물었다가 창피를 당했다. 그 뒤로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모욕을 준 그가 원수였다.

성인이 되어 가정사역을 하는 내 머릿속을 헤집고 떠나지 않는 단어가 ‘웬~수’였다. 이 또한 나를 힘들게 했다. 왜 가족이 웬수가 되어야 할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있다. 그놈의 웬수는 절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아주 가까이 있다. 아니 집 안에 있다. 아프리카의 누구와 원수질 일도 없다. 가까이 있어서 웬수가 된다. 가족이어서 웬수다. 웬수가 가족이다.

주전 8세기에 혜성같이 등장한 선지자 미가는 이 말을 정확히 했다.
“이웃을 믿지 마라. 친구라도 비밀을 털어놓지 마라. 말조심하여라.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이웃과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가까운 자, 아들과 딸과 친척일수록, 더 사이가 나쁘다. 가족이 원수다.”(미 7:5~6, 메시지성경)

나는 그의 사이다 발언에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원수는 천지창조 때부터였다. 나는 어느 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가족을 사랑하는 말로 이해했다. 명창에게 찾아온 득음(得音)과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가정사역자가 되었다. 형제들끼리 불화하고 평생 해로를 다짐한 부부가 이혼하는 삶의 현장 한 가운데서 원수 사랑을 가르쳤다.

웬수 중에 웬수를 끌어안아야 하는 부모들을 이렇게 달랬다. “사과 속의 씨앗은 누구나 헤아립니다. 하지만 씨앗 속의 사과는 하나님만이 헤아리십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과 속에 씨앗이 몇 개 들어 있는지는 유치원생도 안다. 하지만 씨앗 속의 사과가 몇 개 들어있는지는 고등 수학자도 못 헤아린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교수 같은 이도 못 푼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하나 있었다. “불평등하게 공평하라.” 자녀 모두는 자기가 제일 사랑 받는 아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가 진짜 사랑이 된다.

이혼을 앞둔 부부들에게도 미가 예언자의 흉내를 내서 한마디 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자존심만큼은 건드리지 마라.” 인간으로서 존엄을 건드리는 거야말로 진짜 웬수되는 거라는 뜻이었다. 성경은 이른다. ‘불행한 이들의 존엄을 지켜 주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일’(시 41:1, 메시지성경)이라는 거다.

그동안 ‘재벌 2세’와 ‘대통령 딸’로 불리었던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결혼이 끝내 이혼으로 마무리되었다. 5년 동안의 길고 긴 법정 투쟁 끝에 재판부는 판결했다. “두 사람은 이혼한다. 원고(최태원)가 피고(노소영)에게 위자료 1억원, 재산 분할로 665억원을 지급하라.” 세기의 결혼식 결말에 실망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665억에 억! 소리가 쏟아지기도 했을 것이다.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재판의 결과가 아니다. 위자료도 아니다. 노관장의 인터뷰의 내용이었다.

“제가 지키고 싶은 건 돈보다 가정의 가치다. 저의 경우는 보통의 이혼과는 다른 ‘축출 이혼’이다. 쫓겨난 것이다. 1심 판결로 인해 앞으로 기업을 가진 남편은 가정을 지킨 배우자를 헐값에 쫓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성의 역할과 가정의 가치가 전면 부인됐다. 이것이 제 마음을 가장 괴롭힌다. 이 판결로 갑자기 시계가 한 세대 이상 뒤로 물러난 것 같다.”

노관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수십 년을 함께한 배우자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받으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시계추를 돌리고 돌려 고대 사회로 가 보자. 당시 근동 지역의 여성들은 하나의 재산으로 간주되었다. 계수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재산권을 가질 수 없었다. 상속권은 아예 없었다. 절대적인 가부장 중심의 가계였다. 이런 사회제도와 체제에 과감하게 도전한 여인들이 있었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였다. 그들의 선조는 구약시대 족장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요셉 가문이었다. 영광스런 가문의 후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졸지에 소녀가장들이 되어 버렸다. 이스라엘 사회의 전통적 관습에 의하면 아들 없이 죽은 가정은 가업을 얻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사회제도에 순응하는 길보다는 이에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딸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항변한다. 목숨을 내건 탄원이었다. 모세는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특별법을 제정한다. 여성 상속법이 나타난 것이다. 딸들의 용기는 사회 전체를 바꾸어 놓는 변혁의 토대가 되었다.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 국법의 기초가 놓이게 된 것이다.

서기 585년 이전에만 해도 여성은 영혼도 없는 존재였다. 이때 열렸던 마콘회의에서 감독들의 치열한 토론 끝에 영혼을 부여(?)받았다. 지금은 기원 전도 아니고 가부장 중심의 조선시대도 아니다. 가족관계조차 혈연을 넘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으로 인정받는 세대가 되었다.

노 관장의 고백대로라면 최회장이 CEO(최고경영자)였다면 노관장은 CVO(최고 비전 책임자)였다. 최 회장이 경제 가치를 높이는 일에 주력했다면 노 관장은 문화 가치를 심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문화는 수치로 계산되지 않는다. 무한 가치를 지녀서다.

산술적 수치나 틀에 박힌 법리를 넘어 수학의 가치와 법의 감정 역시 중요하다. 나는 가정사역자로서 이 재판의 마지막 결론이 가정을 가정답게 세우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 여긴다. ‘창피하고 수치스럽다’던 노 관장의 감정이 대한민국 여성들의 감정선이고, 공정과 상식을 바라는 국민의 법 감정임을 재판부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고장 난 시계추는 반드시 돌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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