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생일' 빨간날 아닌 이유…"출신성분 걸림돌"
"서사 미완성…우상화 선전 걸림돌"
당국 "생일 맞아 열병식·도발 주시"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생일이 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이 김 위원장에 대한 우상화를 집중하고 있지만, 재일교포 출신 어머니부터 불분명한 출생지까지 서사를 완성하지 못한 탓으로 분석된다.
8일 외교안보 당국에 따르면 이날은 김 위원장의 생일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중국 접경지역에 유통 중인 달력에는 그의 생일이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각각 '태양절'과 '광명성절'이라는 최대 명절로 기리는 것과 대조된다.
앞서 통일연구원은 지난달 '2023년도 한반도 정세 전망'을 발표하면서 "북한이 내년에는 김정은을 '수령'의 지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선전전의 고삐를 바짝 조일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김 위원장의 우상화를 '김일성 수준'으로 높일 거란 전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생일 공개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 노동신문 등 각종 관영매체도 최근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금까지 북한 관영매체에서 김정은의 생일을 맞아 행사를 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 내에서는 생일이라는 사실조차 공지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정은에 대한 미화 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생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면 출생연도에 대한 주민들의 궁금증이 생길 텐데, 너무 젊고 어린 지도자라는 점도 김정은에게 일종의 콤플렉스"라고 말했다.
北, 왜 망설이나…"母 고용희 신분도 공개 못해"
북한이 김 위원장의 생일을 기념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먼저 김 위원장의 어머니 고용희의 출신이 걸린다. 북한은 2012년 김 위원장 집권에 맞춰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이라는 영상을 제작, 간부들을 대상으로 고용희에 대한 우상화를 진행하고 이를 주민에게 배포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물론 이후로도 고영희의 '이름'이 공식 거론된 일은 드물다. 재일교포 출신에 무용가였다는 출신성분 탓이다. '항일 빨치산'이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북한에선 일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다. 재일교포 출신을 자본주의에 물든 '째포'라 비하할 정도다.
김 위원장의 출생지도 불분명하다. '신격화'에 가까울 정도로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를 진행하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백두혈통'이다. 이는 김일성 일가라는 뜻을 가지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 밀영(유격대의 비밀장소)이라는 혁명전적지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해온 것도 이러한 의미 부여다.
북한은 김 위원장도 백두산 아래 삼지연시에서 태어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애를 써왔지만, 실제 출생지는 강원 원산시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남한을 찾았다가, 고향을 묻는 최문순 당시 강원도지사에게 "나는 평양에서 태어났고 오빠는 원산에서 태어났다"고 답한 바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원산 사랑'은 유별나다. 집권 직후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개발을 선언하며 원산을 '제2의 평양'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신병 이상설이 돌았던 2020년 4월에도 측근들과 원산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공개 활동이 뜸해질 때마다 '원산 피신설'이 제기되는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 생일' 전후 동향 촉각…"핵실험 가능성도"
안보 당국은 김 위원장의 생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열병식 징후가 속속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민간 위성사진서비스 플래닛 랩스가 촬영한 2일자 사진에는 평양 미림비행장 북쪽의 열병식 훈련장에 1만3000여 명의 병력이 운집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같은 동향은 지난달 중순부터 포착되기 시작했다.
다만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병식 시기를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일인 2월8일로 추정했다. 통상적으로 열병식이 임박하면 평양 김일성광장으로 주민들이 동원돼 응원 연습을 하는 동향까지 포착돼야 하지만, 아직까진 병력의 움직임만 보이는 것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긴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열병식 준비 등 북한 지역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열병식 개최 시기는 동향을 조금 더 지켜볼 계획"이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열병식을 계기로 북한이 중대한 도발에 나설 거란 관측도 있다.
정성장 센터장은 "열병식은 북한의 무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충성까지 이끌어내는 중요한 이벤트"라며 "이번 열병식에서도 시험발사가 이뤄지지 않은 신형 무기가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이 정주년인 만큼 이때부터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까지 대대적인 행사를 이어가면서, 7차 핵실험을 비롯한 중대 도발까지 감행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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