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도 싫어도 그만 둘 수 없는 일

김정희 2023. 1. 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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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아보듯 부엌에서의 일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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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기자]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로부터 절대로 멀어지지 못한다. 우리는 시간, 유아기 언어, 그때 맛본 음식들, 우리들 안에 있는 원초적 순간에 얻어진 얼굴 표정과 신체 형태들, 이런 것들의 치마폭에 머물러 있다'는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의 한 구절을 읽고 정말 그럴까? 우리는 결코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멀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방식, 내 의지대로 살림을 꾸리다 보면 나만의 터전을 일구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반감이 살짝 고개를 들기도 했다.

두 아이가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는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내 오래된 부엌을 돌아보니 나만의 영역이랄 곳이 참 볼품없어 보인다. 세월의 흔적을 감출 수 없는 몇 장의 앞치마와 흠집 난 도마, 무뎌진 칼, 밥공기와 국그릇에 보이는 미세한 흠집, 수저, 프라이팬 등 부엌을 점령하고 있는 것들은 내가 수저를 놓을 때까지 평생 함께 할 살림 도구들임에도 불구하고 윤기를 잃었다.

예전보다 외식하는 일도 잦고 한두 끼 다른 음식으로 대체할 때가 있다 보니 부엌에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고 있기 때문일까? 훈김이 돌아야 할 부엌의 집기들도 흥이 나질 않는가 보다. 부엌도 늙어가나 싶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 맛
 
 겨울 눈 속에서 뽑은 배추가 귀하게 생각되어 수채화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 김정희
 
식구들 입에 맛있는 음식 들어가는 게 보기에 좋았다. 음식 준비하는 일이 즐거웠다. 내 손으로 집들이 음식을 준비했다. 부모님을 비롯해 작은아버지 가족과 사촌들, 시댁 식구들까지 초대했다. 출장 요리사를 불렀냐, 우렁각시가 따로 있냐는 등의 말들을 하셨으나, 거칠 것 없이 온 집안을 오가며 뚝딱 음식을 해냈다. 음식만큼은 내 손으로 해야 마음이 놓이는 습관이 있어 옆에 누가 있으면 일의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40포기를 하던 김장이 20포기도 많게 여겨지면서 살림이 대폭 줄었다. 꼭 필요한 만큼의 김치만 담그는데도 다 먹지 못했다. 새로 한 김장 김치를 넣을 곳이 없다. 내년에는 김장을 하지 말까 생각한다. 그만큼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지만 편해졌다. 이제는 요리하는 일로부터 얼마간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진정 멀어진 것일까? 그때 맛본 음식들에서 멀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먹고 싶어 찾게 된다.

소박하고 거칠지만 어릴 적 먹던 음식이 좋다. 청국장, 시래깃국, 보리 개떡이며 쑥국, 동치미, 콩나물밥, 고추장떡, 마른 고추 불그스름하게 우러나 매콤하게 먹던 식혜 따위가 무시로 떠오른다.

며칠 전 선물로 들어온 젓갈 몇 가지를 시누이 집에 보내드렸다. 집에 오셨을 때 젓갈을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 생각이 나서다. 시누이 남편은 어릴 적에 먹었던 어머니의 음식을 향수 어린 눈빛으로 소환하곤 하셨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으나, 맛만큼은 어릴 적 먹었던 음식 맛에서 결코 멀리 가지 못한 것 같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지극히 소박하고 거친 음식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의 치마폭 아래 도란도란 모여 앉아 받아먹던 순한 음식이 나를 키웠고, 그 그늘 벗어나 삶의 온갖 신산함을 헤쳐 온 어깨에 다소곳하게 손 한번 얹어주는 일처럼 어릴 적 먹었던 음식들이 위로와 치유를 준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얘기도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한치도 더 나아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부엌을 잃은 게 아니라 부엌에서 얼마간 멀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건강한 부엌을 돌아보는 삶이기를
 
 군산의 대설경보 속에서도 초록초록한 모습을 보이는 배추. 살아있는 것들의 경이로움을 배웁니다.
ⓒ 김정희
 
지난 대설에 온통 눈을 뒤집어쓰고 있던 배추 몇 포기를 잘라 왔다. 눈 속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한겨울을 나고 있는 배추를 보니 강인함에 앞서 생명 있는 것들의 거룩함이 느껴졌다.

오늘 끼니는 배추 나물에 배추 지짐이다. 군침이 절로 돈다. 딸이 먹어 보더니 "엄마 배추 나물 어떻게 무쳤어. 먹을 만하네" 한다. 간단하게 설명했으나 당장 해 먹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문득 오늘 먹었던 배추 나물이 생각날 때가 있겠지.
   
내 평생은 물비린내 올라오는 부엌 싱크대 앞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며 지지고 볶고 끓이고 씻다가 저물 것이라는 생각에 때때로 우울하다. 그러나 사는 동안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부엌의 삶이다.

그가 누구든 살아있는 동안은 먹어야 하니까. 좋아도 싫어도 먹는 일을 그만둘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되도록 건강한 밥상을 고민하면서 오늘의 부엌을 다시 살피고 입에 들어오는 음식을 눈여겨볼 일이다.
 
 배추를 데쳐 순하게 양념을 해서 무친 배추 나물
ⓒ 김정희
 
대한 불교 조계종단으로부터 '사찰음식 명장'을 받은 선재 스님에 따르면 '음식이 성품을 만든다'고 하셨다. 제철 음식 자체의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도록 양념을 순하게 해서 먹으면 따로 어머니의 반찬을 찾지 않아도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를 섭취할 수 있을 것이다.

부엌의 부뚜막이나 찬장에 있던 어머니의 양념은 고작 조선간장이거나 고추장, 된장이 전부였다. 그래도 감칠맛이 났으니 그것은 손맛이었을까. 허기를 채우던 결핍의 맛이었을까.

부엌에서 멀어질 일이 아니라 갖가지 식재료의 출처와 잊었던 근원적인 맛은 무엇이었나를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경로를 거쳐 내 앞에 와 있는가를 들여다본다면 계통 없는 음식을 마구 섭취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적게 먹더라도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음식을 고르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

다시 부엌으로 가자는 말이 아니라 건강한 부엌을 돌아보는 삶이기를 나 자신에게 일깨워주고 싶은 것이다. 더불어 순하고 착한 음식을 만드는 부엌을 회복한다면 세상도 조금은 순해질 수 있을는지. 다정한 사람을 맞을 수 있을는지.

프랑스의 미식가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이 한 말이라고 한다.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삶을 돌아보고 점검하듯 이제부터는 내가 먹는 음식에 관하여 찬찬히 눈여겨보며 살아야겠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곧 나를 지키고 내 몸과 친근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돌아보듯 부엌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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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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