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문제적 발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 [아이들은 나의 스승]

서부원 2023. 1. 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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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열심히 받아 적는 교육부 관료들... 북한 관료들과 무엇이 다른가

[서부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2023년도 정책방향 연두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현직 교사로서, 지난 5일에 있은 교육부의 2023년 업무보고를 본 '관람평'이다. '달변가'로 알려진 윤석열 대통령은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료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도 모두와 마무리 발언 시간을 할애해 무려 43분 동안 '강의'를 했다. 그들 중에는 학자 출신의 교육 분야 전문가도 여럿이다.

그 자리에서 드러난 윤 대통령의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무지와 퇴행적인 교육철학을 더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시간 낭비이자, 지면 낭비라는 생각에서다. 지금껏 교수와 교사 등 수많은 교육 관계자들이 언론 등을 통해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에 대해 숱하게 비판하고 제언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다.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해 경쟁을 키우자는 윤 대통령의 이야기는 딱히 새로울 것도,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작년 당선 직후 '교육부도 경제부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가가 주도해온 교육을 자유경쟁시장에 맡기자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뿐이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교육의 민영화'라는 이야기까지 버젓이 나오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은 교사를 향한 불신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가 어디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반말투로 말한다는 건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 자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교사를 '선생'이라고 칭했다. 교과서와 수업 방식이 강의식, 지식전달식이라며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한 건 기실 교사의 무능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 교실 풍경은 '밑줄 쫙, 별표 땡' 하던 시절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지금도 그렇게 수업한다면, 학부모의 민원과 교육청의 감사까지 갈 것 없이 동료 교사들이 보내는 비난의 화살에 단 며칠도 못 버틸 것이다. 교육과정이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교과서도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 등 체험활동 중심으로 바뀌었다.

정작 충격적이었던 건, 윤 대통령이 쏟아낸 '문제적 발언'보다 그 자리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열심히 받아 적는 교육부 관료들의 모습이다. 교육에 관한 한 나름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일 텐데, 그의 발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통령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연신 고개 끄덕이며 메모하는 그들의 모습이 더욱 황당했다.

고위 관료가 되어 정부에 입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각 대학과 연구 기관에서 교육의 본령을 설파했을 분들 아닌가. 아무리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고들 하지만, 권력 앞에 굽신거리는 모습은 교육계에 몸담았던 이의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민망하다. 남들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할 수 있는 이가 단 한 명 없다는 건 절망적이다.

대통령 발언을 황당하게 느낀 아이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과 귀감(龜鑑)은 사실상 동의어다. 교사의 학력이 아무리 높고, 교과서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한들, 교육자가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아무런 감화도 줄 수 없다. 대통령의 말씀대로, 경쟁을 강화하고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기계나 로봇으로 키워낼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 순간 불현듯 떠올랐던 광경이 있다. 북한의 권력자 김정은이 '현지 지도'라는 이름으로 군부대나 산업 시설을 방문할 때, 관계자들과 나란히 선 모습 말이다. 그때마다 김정은은 말하고, 관계자들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첩에 그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같은 동작을 취한다.

젊디젊은 김정은이 아버지뻘쯤 돼 보이는 이들 앞에서 여기저기 손가락질해대며 '한 수 가르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봉건성과 폐쇄성을 봐왔다. 전가의 보도처럼 '백두 혈통' 운운하며, 권력을 세습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북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 주는 풍경이다. 그 일사불란하고 맹목적인 상명하복이 끝내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게 될 자충수가 될 것이다.

김정은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수첩부터 꺼내어 드는 북한의 관료들과 윤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발언들을 열심히 받아 적는 우리 교육부 관료들이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싶다. 상대를 향해 서로 욕하면서 닮아간다더니, 옷만 바꿔 입히면 데칼코마니처럼 흡사하다. '현지 지도'도 업무보고도 아닌, 그저 권력자의 '심기 경호'일 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누군가 내게 독재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준을 말해보라면, 늘 북한 김정은의 '현지 지도' 풍경을 댄다. 반대로 바람직한 지도자상을 대라면, 국민이 입을 열고 자신은 귀를 여는 정치인이라고 대답한다. 섣부르지만, 내 기준대로라면 윤 대통령도 독재자에 가까울 듯하다. 평소 다른 사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도 100분 중 95분 동안 홀로 말씀하신다고 하지 않나.

이번 대통령의 발언을 황당하게 느낀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아이는 관련 보도를 봤다면서, 대통령이 법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적어도 교육부 업무 보고 자리라면, 현행 교육과정 정도는 숙지하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러면서 던진 말에, 교사이기 전에 기성세대로서 낯이 뜨거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 업무 보고를 받을 게 아니라, 우선 우리 고등학생들과 교육 현실을 주제로 토론부터 해봤으면 좋겠어요."
 
 2022년 9월 25일부터 10월 9일까지 북한군 전술핵운용부태 등의 군사훈련 지도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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