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교육, 어른 정서함양 위해…‘쓰다 버려진’ 토끼들

김은초,류동환,박성영,서지영,이지민 2023. 1. 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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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토끼는 과연 ‘행복’할까] ② 구청·학교에서도 버렸다
“산토끼 토끼야…” 누구의 귀에나 익숙한 이 노랫말처럼, 최근 도심 공원 안 야트막한 동산에 토끼가 등장해 시민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토끼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이들은 갖가지 이유로 버림받은, ‘후천적’ 산토끼들이다. 사뿐사뿐 몸을 놀리는 귀여운 토끼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는 있다. 2023년 계묘년, 토끼의 해를 맞아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이 도심 속 유기토끼 문제를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 토끼장에서 촬영한 토끼들의 모습. 김은초 인턴기자

대한민국 곳곳에서 토끼가 ‘유기’되고 있다. 가정에서 토끼를 키우다 몰래 내다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등 관이 주도해서 토끼를 집단 유기한 사례는 더 충격적이다.

‘생명 존중 교육’이나 ‘주민 정서 함양’ 등의 명목으로 토끼를 들인 후 개체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유기하거나 부실하게 관리하는 행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은 그중 많은 토끼 개체수로 주목받았던 배봉산 토끼장과 서대문구 모 초등학교 토끼 유기 사례를 집중해서 살펴봤다.

관 주도로 만들어진 배봉산 토끼장…현황은?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 토끼장. 김은초 인턴기자

서울 동대문구청은 2019년 여름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에 토끼장을 조성해 토끼 20여 마리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동대문구청은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배봉산 토끼장에 대해 “토끼가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다 보니 어린이 교육과 어른들에겐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처럼 정서 함양 차원에서 조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빠른 번식력 탓에 토끼가 100마리 넘게 급증한 것이다. 이에 구청은 2020년 5월 20일 ‘배봉산 토끼장’의 토끼 20여 마리를 현장에서 즉석 무료 분양했다. 구청의 섣부른 토끼 분양으로 관내에서 토끼 유기가 급증하는 등 연이어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구청은 토끼 문제 해결을 위해 ‘토끼보호연대(토보연)’ ‘동물권단체 하이’와 협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토보연이 동대문구청과 함께 토끼를 돌보고 있다. 배봉산 토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인턴기자들은 지난달 30일 배봉산에서 현재 남아 있는 약 40마리의 토끼를 만날 수 있었다. 야외 토끼장의 토끼들은 강추위로 인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사료와 함께 제공되는 물통 속 물은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어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초식동물인 토끼는 건초와 함께 깨끗한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또 개체수가 많다 보니 좁은 토끼장 안에서 서로 영역 다툼을 벌이다 부상을 입은 토끼도 보였다.

동대문구 배봉산 둘레길 토끼장. 건초와 털, 각종 먼지로 인해 오염된 물그릇. 그마저도 얼어 있었다. 류동환 인턴기자


한겨울 이 같은 배봉산 토끼장의 모습을 두고 구청과 동물보호단체는 확연히 엇갈린 목소리를 냈다.

동대문구청은 2020년 당시 약속했던 토끼장 확장, 모든 토끼 중성화 수술 완료, 전담 인력 배치 등을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구청의 직원봉사단원이 찾아와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토끼가 먹을 건초를 공급하기가 쉽지 않은 탓에 구청에선 사료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토끼장 밖에는 “나뭇잎, 채소 등을 주지 마세요. 사료 먹은 토끼라 설사합니다” 같은 문구를 붙여 놓았다.

그러나 구청과 협약하고 배봉산 토끼장 봉사를 하고 있는 토보연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토끼의 먹이가 여전히 너무 부족하고 한파 대비도 전혀 돼 있지 않다며 우려했다. 토끼의 경우 이빨이 계속 자라기 때문에 건초나 풀을 먹어야 할뿐더러 사료만 먹이는 것은 오히려 비만이나 위장장애를 유발할 수 있어 추천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들은 확장된 토끼장 역시 현재 거주하는 토끼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좁고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토보연은 “겨울 한파 대비를 요구했는데 구청 측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줬다. 야생에 있는 애들이 원래 그렇게 사는 건데 어떡하냐’는 태도였다”며 “하지만 저 토끼들은 야생에 있던 애들이 아니고 구청 측이 데려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초식동물인 토끼는 야행성인 데다 종족 번식력이 강해 체험용이나 관람용 동물로 적절치 않은데 구청이 이러한 토끼의 습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토끼장을 만들어 초래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동대문구청은 현재 토끼장 상황에 대해 “저희는 동물보호단체에서 모니터링을 통해 요청하는 사항이 있으면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명존중의식’ 가르친다고 학교에 데려온 토끼…산에 버렸다

유기 사건이 발생한 서대문구 모 초등학교에서 탈출한 토끼들이 당근마켓 등 커뮤니티에서 제보됐다. 풀토동: 풀 뜯는 토끼 동산

관이 방조한 토끼 유기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군포시에 소재한 수리산에서는 갑작스레 토끼 수십 마리가 발견돼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조사 결과 서울 서대문구 소재의 한 초등학교에서 토끼를 집단유기했다는 진상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 학교는 ‘동물복지교육’을 명목으로 토끼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토끼가 무분별하게 번식하자 그 수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수리산에 토끼를 ‘방생’하는 선택을 했다.

이후 수리산에서는 시 보호소와 토보연 활동가, 시민들이 수차례에 걸쳐 토끼 포획작업을 벌였다. 포획과정 전후로 5마리가 사망했고, 1마리는 끝내 잡지 못해 총 33마리가 구조됐다. 구조작업 끝에 지금은 토끼가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

군포시에서 제작한 현수막. 네이버 카페 '풀토동: 풀 뜯는 토끼 동산' 캡처


그러나 토끼가 사라졌다고 유기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리산 토끼 유기 사건이 불거진 이후 학교에서 사육하는 동물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잇달아 제기됐다.

결국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학교에서의 동물 사육 실태가 공개됐다. 이 문제를 제기한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전국의 유·초·중·고·특수학교 중 총 1947개교에서 동물을 사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포유류 중에서는 토끼가 가장 흔히 사육되고 있었고, 155개교에서 743마리가 사육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문제는 사육하는 동물에 대한 관리가 심각하게 부실하다는 점이다. 서 의원에 따르면 학교에서 기르는 동물의 관리는 학교 자율에 맡겨져 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담당 부서도 마련되지 않았고, 동물 기르기에 대한 기본적인 안내와 교육 프로그램 제공도 전무했다.

심지어 수리산에 토끼를 유기한 해당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이 동물복지교육 시범학교로 선정한 곳이었다. 2018년 조희연 교육감이 토끼장 개관식에 참석해 축하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에서 직접 나서 동물사육을 장려하면서도 정작 관리 실태 감독에는 손을 놓았던 셈이다.

준비가 미진한 건 동물을 직접 사육하는 일선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민원 제기나 비용 부담, 감당하기 힘든 번식 등 유사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자체 대응계획을 수립해 놓았는지’를 묻자 전체 학교의 30.71%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같은 설문에서 동물 사육의 이유를 묻자 72.63%가 ‘생명존중의식을 함양하기 위해’라고 응답했는데, 정작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대비책은 미비했던 것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학교에서 안정적으로 토끼를 사육하기 어렵다고 보고 점진적으로 동물 사육장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시·도교육청은 물론 각급학교 단위별로 동물 사육과 관련한 지침을 명확히 세우고 사육할 경우 구체적인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대로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은초, 류동환, 박성영, 서지영, 이지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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