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불시착한 토끼들…토끼도, 생태계도 위험하다
이들은 갖가지 이유로 버림받은, ‘후천적’ 산토끼들이다. 사뿐사뿐 몸을 놀리는 귀여운 토끼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는 있다. 2023년 계묘년, 토끼의 해를 맞아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이 도심 속 유기토끼 문제를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반려인구 300만 가구 시대에 ‘계묘년’(검은 토끼의 해)을 맞아 어느 때보다 토끼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유통가에서는 검은 토끼 이미지를 활용한 상품을 쏟아내고 애완동물 가게에서는 ‘검은 토끼가 대세’라며 토끼 분양을 홍보한다.
그러나 같은 시각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유기된 토끼를 입양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개나 고양이에 비하면 토끼를 키우는 사람 숫자가 많진 않지만, 유기견 유기묘 다음으로 버려지는 동물이 ‘토끼’라고 한다. 버려진 토끼들의 현실이 어떤지 인턴기자들이 직접 찾아가 봤다.
요즘 토끼가 자주 관찰된다는 분당중앙공원으로 가봤다. 지난달 30일 공원을 돌아다닌 지 2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토끼를 만날 수 있었다. 분당중앙공원 내부에는 자그마한 동산이 있는데, 그 산 정상부에 토끼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정상에 있는 팔각정 주변에서 운동 중이던 시민 A씨는 자신의 발치에 토끼들이 뛰어다니는 데도 익숙한 일이라는 듯 무덤덤했다. 그는 “몇 년째 이 공원에 운동하러 오는 데 토끼는 늘 있었다”며 “동네 주민들이 와서 토끼 밥을 챙겨준다”고 말했다.
A씨의 말대로 현장에는 주민들이 토끼를 위해 준비한 사료와 배춧잎 몇 장이 그릇에 담겨있었다. 그 옆에선 이 먹이를 노리는 비둘기들이 다가와 쪼아대고 있었고, 무리 중에서도 서열이 낮아 보이는 토끼들은 그릇 근처로 접근조차 못 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의 토끼들은 ‘천적’인 개와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초식 동물인 토끼에게 큰 개들은 매우 위협적인 존재다. 분당중앙공원은 내부에 반려견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어 주민들이 반려견 산책을 위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산책 나온 개들이 토끼를 사냥하려는 듯 달려들고, 깜짝 놀란 토끼들이 줄행랑치는 모습을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분당중앙공원의 유기토끼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토끼보호연대(토보연)에서 활동하는 김지수씨는 6일 “수년째 토끼 유기와 번식이 지속하다 보니 전체적인 규모도 알 수 없다”며 “중성화수술 사업 등을 고려하고 있지만 인력 문제도 있고 정확히 파악도 안 돼 손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토보연은 토끼가 개, 고양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유기되는 ‘제3의 동물’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동물자유연대의 ‘2016~2020년 유실·유기동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기간 개와 고양이를 제외한 ‘기타 축종’ 10개 종 중 토끼의 유실·유기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실제로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하는 토끼는 전체 유기토끼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이 산이나 공원에 버려진 토끼를 야생동물이라고 생각해서 신고를 안 하기 때문이다.
분당중앙공원보다 더 유명한 ‘토끼공원’은 서울 서초구에 소재한 몽마르뜨 공원이다. 예능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곳에 토끼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2011년으로 추정된다. 누군가 한 쌍의 토끼를 유기한 것이 시작이었는데, 2018년에는 100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토보연은 이 토끼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이들은 시민 모금으로 공원 토끼들을 구조해 중성화시켰고, 그중 일부는 가정으로 입양 보냈다.
토보연에서 활동하는 최승희씨는 “몽마르뜨 하나 겨우 끝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 현재 몽마르뜨 공원에서는 토끼를 찾아볼 수 없었다. 100여마리나 되던 토끼들이 몽마르뜨 공원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몽마르뜨 공원을 담당하는 서초구청 관계자는 “당시 몽마르뜨 공원에서 토끼들이 고양이 등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잖았다”고 설명했다. 또 “토끼 특유의 번식력 탓에 개체 수가 급증하는 문제도 있었고, 토끼들이 눈에 띄다 보면 추가적인 유기가 일어날 우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서초구청은 동물보호단체와 협력해 토끼들을 중성화하고 보호소로 이관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토끼를 다 구조할 수 없었다. 당시 토보연 산하의 보호소는 설립 초기였던데다 공간도 비좁아 전부 구조할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40여 마리의 토끼는 다시 몽마르뜨 공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중 토보연이 구조한 5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토끼들은 3년 만에 몽마르뜨 공원에서 자취를 감췄다. 토보연에서 활동하는 혜금씨는 “거의 다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국내 반려 토끼는 대부분 ‘굴토끼’로 평균 수명은 보통 5~8년이다. 굴토끼는 한국 야생 토끼인 산토끼(멧토끼)와는 유전적으로 달라 야생에 방사하거나 야외에서 생활할 경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몽마르뜨 공원의 토끼들이 3년 새 모두 죽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공원의 환경이 굴토끼가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도훈 국립생태원 환경영향평가팀 선임연구원은 “많은 사람이 굴토끼를 우리나라 토종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다”며 “토끼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많이 고려하지 않고 방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백준 국립생태원 외래생물연구팀 팀장은 “관련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원들은 유기된 굴토끼가 한국의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굉장히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지구온난화의 영향 등으로 굴토끼가 적응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유기된 토끼들이 환경에 적응하면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호주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160여년 전 호주는 빠르게 번식한 토끼 무리로 인해 ‘토끼 재앙’을 겪은 바 있다. 영국에서 온 이민자가 산업용 토끼 24마리를 데려온 것이 발단이었다. 이 토끼들은 불과 3년 만에 수천 마리로 불어났고, 이후로도 수를 불려 나갔다. 이 외래종 토끼들은 농작물과 땅을 파괴하고 대규모 토양침식 등 환경 문제를 일으켰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도 마냥 토끼들을 방치하다 보면 호주와 같은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은 호주가 한국보다 조금 더 따뜻하지만, 한국 기온이 점차 온화해지고 있는 만큼 호주에서의 재앙이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래생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자체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김 박사는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봤을 때 장기적으로는 기후의 영향이 크지만, 단기적으로는 외래생물의 임팩트(영향)가 가장 크다”며 외래종 유입 문제에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은초, 류동환, 박성영, 서지영, 이지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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