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5평 원룸이면 혼자 살기 충분?…적어도 몇 년은 살아봐라
[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13)
‘5평 원룸이 충분하다’라는 말은, 적어도 그 공간에서 몇 년은 살아본 뒤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독립해 나만의 집이 생겼을 때는 너무 기뻤다. 처음 해보는 요리에 스스로를 기특해하고, 냉장고에 맥주캔을 채워 넣으며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실감을 했다. 축하하러 온 친구들과 좁은 방에 누워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옹기종기 잠들 땐 여행 온 기분이었다. 청춘의 방에는 추억이 차곡차곡 쌓인다.
5평의 방은 크지 않았지만 있어야 할 건 다 갖춘 집이었다. 1구 인덕션과 개수대 하나, 싱크대 아래 9kg 소형 드럼세탁기가 빌트인 되어있었다. 책상과 옷장이 옵션으로 딸린 집이었다. 거기에 3단 서랍장과 옷걸이 행거까지 들여놓으니 작은방의 3분의 1 정도가 채워졌다.
있을 것은 다 있는데, 문제는 모두 조금씩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빠듯함은 사람을 조바심 나게 한다. 1구 인덕션으로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동시에 계란 프라이를 할 수 없어 허둥댔다. 개수대가 하나라 설거지도 바로 해치웠다. 친구들이 여럿이 오면 그릇이 부족해 일회용품을 썼다. 빨래 건조대를 펼치면 화장실로 가는 길이 막혀서 마르는 순서대로 얼른 개었다. 이사 후, 나의 첫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 알아보다 결국은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게 가장 쾌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집에서 나온 뒤, 지금의 원룸으로 이사 왔다. 집주인의 말로는 이 일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원룸 건물이라고 했다. 옛날에 지어진 덕에 방이 아주 컸다. 새로 올리는 원룸 건물들은 아주 잘게 쪼개져 있었다. 많이 쪼갤수록 많은 세입자를 들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이 많이 낡았음에도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크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식탁과 전자레인지를 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향으로 보내던 이불과 계절 옷도 베란다에 보관했다.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함께 계란 프라이를 부칠 수도 있고, 밥을 먹은 뒤 설거지를 쌓아둘 수도 있었다. 오래 널어두는 빨래는 바싹 말랐다. 공간이 조금 더 넓어졌을 뿐인데,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졌다.
한 사람에게는 얼마의 공간이 필요할까? 얼마 전, SNS에서 청년 주택의 기준 평수가 5평이라는 것에 여러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갔다. 거칠게 나누면, 그 정도 가격에 신축 건물 5평이면 감사할 일이라는 이야기와 적어도 7평은 되어야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서울 중심가의 쾌적한 신축 건물에 저렴한 가격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복지이다. 원룸텔이나 고시텔에 비하면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5평이 인간다운 생활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5평 안에 필요한 것을 갖출 수는 있지만, 충분하다고 느끼기는 부족하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은 1인 14㎡(약 4.2평)이다. 2인은 26㎡(약 7.8평), 3인의 경우엔 36㎡(약 10.5평)로 정해져 있다. 2011년에 정해진 기준이고, 청년 주택은 이 기준에 맞추어져 있다. 최소한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공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코로나 확진이 되고, 동생이 따로 격리할 공간이 없어 급하게 숙소를 알아볼 때 느꼈던 속상함, 한 사람이 온라인 화상 모임을 할 때 나머지 한 명은 다른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9평의 공간도,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니 엄청 답답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일만 하는 존재가 아니듯이, 집은 잠만 자고 나가는 곳이 아니다. 나의 공간에 필요한 가전과 생필품 외에 취향도 채우고 싶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옷도, 계절 가전도 많이 필요하다. 우리 집만 해도 공기청정기, 가습기, 제습기를 계절마다 번갈아가며 튼다. 그런 것들을 모두 두고도 여유 공간이 남아 내가 좋아하는 액자를 걸고, 화병을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공간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답답함을 견딘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아끼며 버틴다고 해서, 넓은 아파트에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데도 조바심이 날 때면, 마음이 슬퍼진다.
절실한 누군가에게 청년 주택의 5평은 필요한 도움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공간은 너무 좁아서 벗어나고 싶은 곳일 수 있다. 주거공간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머물러 사는 공간’이니까. 그러니 5평이면 충분하다는 그런 이야기는, 적어도 그 공간에서 몇 년은 살아보고 이야기하자.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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