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의 酒저리]양촌양조, 우렁이 닮은 맑고 무해한 술 빚어

구은모 2023. 1. 7.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8> 충남 논산 '양촌양조'①
1923년부터 3대 걸쳐 100년째 이어진 전통주
친환경 우렁이쌀 사용한 무해한 술 지향
세련된 디자인으로 촌스럽다는 편견 벗어던져

“이 농사를 지어 누구랑 먹고살고?”

“나랑 먹고살지, 누구랑 먹고살아”

어려운 형편에 근근이 살아가던 노총각의 넋두리에 누군가 답했다. 놀란 마음에 기척이 난 곳을 찾아가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고 우렁이 한 마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총각은 조심스레 우렁이를 주워와 물독 안에 넣어두었다. 그날부터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정성스레 차려진 밥상이 총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하게 여긴 총각이 하루는 몰래 숨어 집안을 엿보았더니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우렁이 속에서 선녀같이 어여쁜 처녀가 나와 밥을 지어놓고는 홀연히 다시 돌아가더라.

이 땅에서 나고 자랐다면 우렁각시 설화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렁이에서 나온 처녀가 총각을 위해 몰래 밥을 해주고 갔다는 내용에서 비롯된 이 설화는 오늘날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우리의 언어 안에 녹아들었다. 오늘날 설화에 덧붙여진 다양한 현대적 해석과는 별개로 설화 속 우렁이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데는 예부터 주변 논이나 못에서 쉬이 볼 수 있던 데다 각종 유기물을 먹어 치우며 알게 모르게 농사일에 도움을 준 무해한 성질 때문일 테다.

'소화 6년(1931년) 6월 9일'이라고 쓰여 있는 양촌양조의 대들보 상량문.

100년의 역사, 세월의 더께 고스란히 묻어나는 양조장

일 년 내내 햇빛이 잘 드는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라 하여 햇빛촌(陽村)이라 불리는 한 마을에도 우렁각시처럼 매일 묵묵히 술을 지어내는 곳이 있다. 우렁이를 닮은 맑고 무해한 술을 지향하며 한 세기를 오롯이 같은 곳에서 우리 술을 빚어내는 곳, 충남 논산 '양촌양조'다.

양촌양조의 역사는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창업자인 고(故) 이종진 대표가 가내 주조로 시작해 아들인 고 이명제 대표를 거쳐 다시 그의 아들인 이동중 현 대표까지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양촌양조는 입구에서부터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현재 양조장 건물은 1931년 이종진 대표가 지어 올린 목조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대들보 상량문에 적힌 ‘소화 6년 신미 6월 초9일(昭和六年辛未六月初九日)’이란 글자가 여전히 선명하다.

당시 양조장들은 대부분 일본식으로 지어졌지만, 양촌양조장은 한옥 구조를 기본으로 설계됐다. 바닥 등을 이중 송판으로 구성해 밥을 짓고 발효할 때 나오는 열과 습기가 밖으로 원활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재래식 통풍구조를 갖췄고, 천장과 벽 사이에 왕겨를 단열재로 사용해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도 실내 온도를 적절히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대표는 “재래식이긴 하지만 반지하 반일층 구조로 지어진 양조 전문 건물”이라며 “온도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게 반지하에 구축한 발효실은 여전히 같은 용도로 사용하고 있고, 반일층은 술밥을 쪄서 식히는 공간으로 통풍이 잘 이뤄지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발효실 앞에는 건물이 지어질 때 함께 들어선 우물도 전과 같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술 빚는 데 물맛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라며 “이 지역은 근처에 공장이 들어설 수 없는 청정지역으로 6개월마다 48개 항목의 수질검사를 받으며 백 년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촌양조의 발효실. 양촌양조는 100년 가까이 같은 곳에서 발효를 이어가고 있다.

1978년부터 전통주 외길… 숱한 위기에도 전통주의 힘 믿어

양촌양조의 술맛을 책임지고 있는 이 대표가 양조장에 발을 들인 건 1978년이었다. 양조장 집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술 빚는 걸 보고 자랐지만, 처음부터 대를 이을 생각은 없었다. 당시 양조장 일은 너무나 고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때라 주말은 물론 출·퇴근도 명확하지 않아 밤새도록 술 만드는 게 일상다반사였다”며 “냉장 시설도 거의 없던 때라 여름에는 하루만 지나도 술이 상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매일같이 새로 빚고 또 빚고 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어려서부터 도시 생활을 동경하기보다는 농촌 생활이 편안하고 좋았다. 형제들은 모두 서울 등 외지로 나가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그는 대전에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곧장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고향에서 농사지을 생각에 농대를 간 것이었다”며 “그러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양조장이 바쁠 때 일을 거들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의도치 않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깨너머로 하나씩 배워가다 보니 흥미가 생겼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발효 원리도 모르고 술이 어떻게 되는지도 하나도 몰랐다”며 “점차 관심이 생기면서 전통 방식의 양조를 한다고는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이 대표는 다양한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양조 관련 수업을 들었고, 그렇게 점점 양조 일에 빠져들게 됐다고 이전 일을 돌아봤다.

이 대표가 양조장 일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 막걸리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주류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막걸리였지만 1980년대부터 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확산하면서 막걸리를 찾는 손길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 대표는 “당시 막걸리 판매량이 급격히 줄면서 양조장들도 많이 사라졌다”며 “양촌양조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전통주가 어려움을 겪을지언정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판단으로 꿋꿋하게 버틴 것이 이후 다시 기회를 얻고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물건으로 가득한 양촌양조장.

무농약 우렁이쌀로 빚은 술… 전국구 양조장으로 발돋움

100년 역사의 양촌양조가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표 제품인 ‘양촌 생막걸리’로 지역에서 나름 탄탄한 기반을 다지며 긴 역사를 유지해왔지만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선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제품의 고급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이 대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우렁이였다. 양조장 인근 은진면에선 이 대표의 농과대학 동기가 우렁이 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해당 쌀을 사용해 막걸리를 빚으면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최근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는 술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친구와 손을 잡고 우렁이 농법으로 무농약 재배한 논산 햅쌀로만 빚은 수제 막걸리가 2015년 첫선을 보인 ‘양촌 우렁이쌀 손막걸리’와 ‘우렁이쌀 손막걸리 드라이’다. 이 대표는 “기존의 생막걸리보다 3배가량의 장기 저온 숙성을 거친 막걸리로 기존의 토속적인 맛과는 다른 젊은 취향에 어울리는 깔끔함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렁이쌀 막걸리가 출시되면서 양촌양조의 새바람에는 속도가 붙었다. 고급화와 더불어 다음 과제는 다양화였다. 막걸리와 보조를 맞출 파트너가 필요했고, 청주를 낙점했다. 이 대표는 국립농업과학원에 기술협력을 의뢰했고, 그렇게 2년여의 연구·개발과정을 거쳐 최적의 누룩과 레시피를 완성했다. ‘양촌 우렁이쌀 청주’였다.

양촌 우렁이쌀 청주는 역시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찹쌀로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60일간의 저온 숙성방식을 거친 청주다. 백국균을 주로 사용하지만, 일부 황국균 누룩을 더해 술이 부드럽고 풍미가 독특해지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약주보다 깔끔한 맛이 나도록 만들었지만 동시에 찹쌀 특유의 단맛의 여운도 있는 토속 청주이기도 하다.

우렁이쌀 청주는 양촌양조가 전국구 양조장으로 발돋움하게 한 일등 공신이다. 이 대표는 “시대가 바뀌면 입맛도 바뀌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젊은 층의 입맛에 맞춰 개발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2016년 출시 이후 입소문을 타고 우렁이쌀 청주를 찾는 손길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21년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이제는 양조장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간판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양촌양조 '우렁이쌀 청주'

전통주는 촌스럽다? 맛과 향에 시각적 식감까지 더해

우렁이쌀 청주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 대표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또 하나의 계획도 탄력을 받았다. 증류식 소주였다. 이 대표는 “양촌양조는 1956년 ‘송광소주’라는 이름의 전통 방식 소주를 출시했었는데, 오래전 사라진 양조장의 소주를 시대에 맞게 복원하고 싶었다”며 “한국식품연구원의 김태완 박사께 의뢰해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여유’라는 이름의 소주까지 시장에 내놓게 됐다”고 강조했다.

2021년 6월 출시된 여유는 우렁이쌀 청주가 한창 탄력을 받고 있던 시점에 출시된 제품이어서 ‘우렁이쌀 소주’라고 이름을 지으면 어떻겠냐는 의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여유는 앞선 술들과는 결이 다른 술인 만큼 다른 이름이 필요했다”며 “각박한 세상에서 술 한 잔 여유 있게 즐기자는 뜻에서 여유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양촌양조의 제품들은 세월의 더께가 가득한 양조장 건물과는 다르게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한다. 2014년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막걸리 부문에서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양촌양조의 병과 라벨 디자인은 모두 이 대표의 둘째 형인 이동상 씨의 아들 이태희 씨가 전담하고 있다. 이 대표는 “디자인과 관련된 일은 조카에게 모두 일임했다”며 “막걸리는 촌스럽다는 인식을 벗어나 맛과 향은 물론 시각적 식감까지도 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