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패권경쟁 게임체인저 노리는 ‘미스터 에브리싱’

박재현 2023. 1. 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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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줄타기 외교’
전 세계 광폭행보로 존재감 과시
말 한마디에 원유·금융 등 출렁
게티이미지


‘모든 것이 가능한 남자.’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살만 아사우드(38)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다. 그는 전 세계에서 ‘광폭 행보’를 이어가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원유·금융 시장뿐 아니라 건설·제조업계까지 그의 말 한마디에 출렁인다.

특히 양대 강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례 없는 줄타기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사우디는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이었지만 빈살만 체제에서 이는 옛말이 됐다. 전통적 외교 문법이 아닌 철저한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그의 언행에 미국은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그 틈을 공략하고 있다.

치밀함의 대명사, 미스터 에브리싱

왕위 계승권자이자 총리인 빈살만 왕세자는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갖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재산은 적게는 1400조원, 많게는 2500조원이다. 1985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그의 셋째 부인 파흐다 빈트 팔라 빈 술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매우 치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우디가 오랜 형제세습의 전통을 깨고 부자세습으로 전환한 데도 그 치밀함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NYT는 당시 “왕위 승계 방식 전환이 외부에는 순탄한 것처럼 보도됐지만 실은 살만 국왕과 빈살만 왕세자의 치밀한 계획 속에 빈 나예프 왕자가 축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빈살만과 그의 아버지인 국왕은 라마단 기간에 맞춰 메카 왕궁에서 왕위 승계 1순위였던 모하마드 빈 나예프 왕자를 소환하는 동시에 왕세자 평의회를 진행했다. 빈 나예프는 왕위 계승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받고 승계 1순위는 물론 내무장관 자리도 내줬다. 빈살만 부자는 이 일을 위해 수년간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당선으로 본격화한 줄타기

이 같은 치밀함을 가진 빈살만이 국제사회에서 선택한 길은 ‘줄다리기 외교’다. 그는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시하지 않고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사우디는 미국에 석유를 공급하고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졌던 전통이 무너진 것이다. 미국에서의 ‘셰일 혁명’ 이후 석유 패권국인 사우디의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 실패한 중동 정책은 빈살만의 개혁·개방 정책을 앞당겼다.

여기에 빈살만과 바이든 대통령의 악연도 크게 작용했다.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에 따르면 빈살만은 2020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의 계획은 미국의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을 수니파의 수호자로 내세워 국내외 지지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것이었다.

트럼프와 빈살만의 관계는 매우 좋았기에 그의 재선은 곧 빈살만의 영향력 확대를 의미했다. 트럼프는 취임 뒤 첫 해외 방문국으로 선택했을 만큼 사우디를 신뢰했다. 의회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예멘 내전 개입 등 논쟁적인 사안에서 사우디 편에 서 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빈살만으로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우디의 인권 문제를 비판했다.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에 지원을 멈추고 무기 판매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집권 후에도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두고 사우디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며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미들이스트모니터는 “바이든의 2020년 대선 승리는 빈살만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다”고 평가했다.

틈새 놓치지 않은 시진핑

우크라이나 전쟁은 빈살만에게 반전의 계기를 제공했다. 2022년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정부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과 최악의 인플레이션 탓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급히 사우디로 날아가 빈살만에게 석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거절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미국은 뒤늦게 빈살만 달래기에 나섰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달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관련한 소송에서 빈살만 왕세자의 면책 특권을 인정하면서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과 사우디 간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빈살만의 승부수로 평가받는, 5000억 달러(약 640조원) 규모의 ‘네옴(NEOM) 시티 프로젝트’가 본격화하자 시 주석은 지난달 6년 만에 사우디를 직접 방문해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전략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한 두 나라는 30개 이상의 협약을 체결했다. 에너지와 정보통신 등 34개 분야에서의 경제 협력도 약속했는데, 그 규모가 약 38조6000억원이다.

시 주석은 사우디 방문 당시 중국-걸프협력회의(GCC) 기조연설에서 ‘페트로달러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겠다는 폭탄 발언도 했다. 페트로달러 체제는 1974년 이후 미국과 사우디 간 원유 결제를 달러로만 하겠다고 합의한 것을 이른다. 이 체제 도입으로 중동에서 원유를 구매하려는 각국은 달러를 확보해야 했다. 이는 미국이 패권 국가로 자리 잡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

시 주석은 “GCC 국가들은 석유의 위안화 결제를 위해 상하이 석유·천연가스 거래소(SHPGX)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화로 원유를 결제하는 새로운 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시 주석으로서도 사우디와의 밀착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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