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크리스천 하루의 영성을 깨우다
영어 단어 ‘리추얼(ritual)’이 지닌 본질은 종교성에 있다. ‘종교상 의식’ ‘제의적 의례’를 뜻하는 사전적 정의만 봐도 그렇다. 최근 몇 년 사이 ‘라이프’(life)와 결합한 리추얼은 종교성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특히 MZ세대에게 미친 파급력은 대단했다. ‘욜로’(YOLO·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와 ‘플렉스’(FLEX·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과시하는 것)로 대표됐던 MZ세대의 특징이 ‘리추얼 라이프’로 옮겨가면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에 관심이 높아졌다. 이는 ‘갓(God)생 살이’란 신조어에 숨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다짐과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맺지 않도록 고군분투가 벌어지는 새해 첫째 주. 자신만의 루틴을 구축해 온 크리스천 MZ세대들을 만나 ‘하나님(God)의 사람으로서의 삶(生)’을 지향해가는 여정을 들어봤다.
‘리추얼 라이프’의 핵심은 일상 속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삶에 에너지를 더하는 자기만의 루틴을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하기 전인 새벽 시간을 활용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지난 2020년 8월 23일부터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는 16년차 직장인 조인재(39)씨의 하루는 오전 3시에 시작된다. 1일차부터 ‘미라클 모닝’ 인증을 남겨 온 그의 SNS에는 지난 2일 현재 862일 차를 알리는 게시글과 새벽의 풍경, 오늘 읽은 책 속의 한 줄, 플로깅하며 주운 거리 위 쓰레기 사진 등이 남겨져 있었다. 정오에 서울 성수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에게선 9시간 전 하루를 시작한 사람의 피곤한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작은 기도하고 묵상하는 습관을 갖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시간도 있고 장소도 있는데 막상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한참을 고민하다 발견했죠. 나에겐 행동을 위한 결정적 요소가 의지나 생각이 아니라 기분이구나.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을까. 호르몬이 분비돼야겠다. 그렇게 역으로 추적하면서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들어볼 요량으로 ‘걷는 사람’이 된 겁니다.”
루틴의 첫 단추는 감사 기도다. 이후 스트레칭(침대)→세면→셀카 촬영→체중 측정→정리 정돈→스쿼트(20회)→푸쉬업(30회)→분리수거→실외 걷기(약 4㎞) 및 플로깅→샤워→뉴스 듣기→기도 및 QT→하루 계획 및 목표 쓰기→감사 일기→독서(100분)→글쓰기(20분) 등이 촘촘하게 진행된다. 조씨는 “미라클 모닝을 통해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터에서의 능률도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에게 위기가 없을 리 없다. 조씨는 “회식 후 새벽 1시에 들어올 때, 지방으로 출장 갔을 때 등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매일 같은 시간 ‘좋아요’를 누르며 내 루틴을 지켜봐 주는 이들이 있어 이겨냈다”고 했다. 처음엔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데 대해 불만을 표했던 아내와 두 아들도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응원군이다. 그는 “365일 차 되는 날엔 가족들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해줬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지하철 1호선 석수역 인근에서 요가원을 운영하는 윤여름(27)씨는 “소중한 하루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아침을 십일조로 드리는 마음으로 묵상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매일 성경’ 큐티(QT)집을 활용해 그날 메시지를 요약하고, 중심문장을 토대로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를 떠올려본 뒤 자신에게 주는 교훈을 일기 쓰듯 적어 내려가는 게 그만의 루틴이다. 그가 공유하는 SNS엔 ‘행함과 진실함’을 묵상한 내용, 몸살로 끙끙 앓는 남편을 위해 늦은 밤 추위를 뚫고 약을 사다주며 ‘이해보다 행동이 먼저인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 커플 사진과 함께 띄워져 있었다.
통신회사에서 근무하는 이중관(36)씨는 스스로 만든 루틴을 일터와 신앙 공동체로 확장해가고 있었다. 매일 오전 6시, QT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에게 직장 신우회와 교회 청년부 간사 모임은 자신과 공동체의 영적 세계관을 더 견고하게 해주는 지렛대가 돼준다. 격주 수요일 진행되는 신우회 예배, 매주 토요일과 주일 이뤄지는 청년부 모임에선 오프라인과 온라인(단체 채팅)을 넘나들며 격려와 위로, 용기가 샘솟는다. 이씨는 “일상에서 상처를 받거나 위축되는 상황을 겪기 일쑤지만, 불쑥 전송되는 메시지 하나에 힘을 얻고 삶의 버팀목이 돼주는 예수님을 발견할 때가 많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연말연시는 새해의 평일 저녁 루틴을 구상하는 시기다. 지난해엔 교회 오케스트라 봉사를 위한 오보에 레슨, 신앙 제자훈련, 세계관 아카데미 등이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채웠다. 이씨는 “무슬림 난민 선교나 이슬람 국가 단기선교에서 원활하게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새해에는 정기적으로 아랍어를 공부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리추얼 라이프를 추구하는 이들의 증가세는 여전하다. 최근 2년 사이 미라클 모닝, 오하운(오늘 하루 운동) 등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5~6배가량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조씨와 윤씨는 “어느 날 지인들로부터 ‘미라클 모닝’ ‘말씀 묵상’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주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전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지속하진 못한다.” ‘갓생 살이’를 위해 자신만의 루틴을 만든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윤씨는 “매일 루틴을 시작할 때마다 솔직하게 자기를 성찰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가는 내 몸의 균형이 얼마나 깨져있는지, 그 몸을 어떻게 가리고 포장해왔는지 솔직하게 마주하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요가복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용기 내는 거죠. 묵상도 결이 같아요. 말씀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 같거든요. 시간을 정해 묵상할 때마다 자신을 바로 보려는 용기를 내야 해요.”
조씨는 “아주 작은 몸짓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전 지금도 뛰진 않아요.(웃음) 걷기만 합니다. 스쿼트도 팔굽혀펴기도 5개부터 시작했고 기상 시간도 처음엔 5시30분이었죠. 독서, 성경 읽기가 목표라면 1페이지만 먼저 읽어보세요. 주행보다 중요한 게 시동 거는 겁니다.”
‘미라클 모닝’보다 ‘미라클 타임’에 집중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이씨는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이른 아침 시간을 고집하기보다는 자기 일상에 맞춰 지속성을 보장할 만한 시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전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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