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명소라고 해서 가보니...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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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별 기자]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는 동백나무가 자생한다. 겨울철에 피는 동백꽃은 매우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동백(冬柏)은 한자어이지만 겨울에 꽃피우는 나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다. 남부 지방에서는 사철 푸르고 윤기나는 동백잎처럼 변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뜻으로 혼례식 초례상에 동백나무를 꽂았다.
▲ 동백나무(유엔기념공원) 11월~4월까지 꽃이 피고 꽃잎은 반쯤 벌어진다. |
ⓒ 이새별 |
중국 명나라 때 시인 양신(楊愼:1488~1559년)은 "해홍은 곧 산다이다"라고 말했다. 꽃에 미친 조선의 선비 유박(柳璞:1730~1787년)이 지은 원예 전문서 <화암수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러 품종의 꽃 이름을 잘 알지 못하고서 동백을 산다라 하고"라는 기록이 있는 걸 보아 옛날부터 이 두 가지 이름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혼동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동백을 산다(山茶)라고 부르고, 일본은 동백을 쓰바키(椿)라 부른다. 또 일본이 원산지이고 일본 고유종인 애기동백을 사잔카(サザンカ:山茶花)라 부른다. 일본의 고대 시가에 등장하는 동백이 있지만 그러나 동백과 애기동백의 구분은 무로마치 시대 중기(中期) 때부터 시작되었고 그 이전에는 이 둘은 구분 없이 모두 '동백나무'라 하였다.
▲ 동백나무/동백꽃(유엔기념공원) 겨울에도 눈부신 꽃을 자랑하며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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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헌들을 근거로 보면 동백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로 보이지만 현재 동백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에 자생하고 있다. 필자는 동백나무의 원산지를 따지려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애기동백나무'의 원산지를 따지려 한다.
애기동백나무(サザンカ:山茶花)를 일본에서는 사잔카(サザンカ)로 읽고 한자로는 '山茶花'라 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애기동백나무는 일본 고유종으로 일본이 원산지이다. 늦가을부터 초겨울에 꽃이 피는데 동백과 비슷하지만 꽃잎이 하나씩 흩어져 피고 동백나무보다는 전체적으로 작아 우리나라에서는 '애기동백나무'라고 부른다.
▲ 애기동백나무 애기동백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재배식물로 꽃이 피는 기간은 매우 짧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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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동백섬을 가보면 이곳이 동백섬인지, 애기동백섬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진입로부터 애기동백꽃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각 학교 교화(校花)·교목(校木)을 산다화로 지정해 놓고 학교 진입로부터 화단에 애기동백나무를 빽빽하게 식재해 놓은 학교도 있다. 산다화를 동백꽃으로 알고 동백꽃과 애기동백꽃을 구분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은 애기동백꽃이 일본 강점기에 들어온 일제 잔재 나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애기동백나무 학교, 관공서, 공원, 거리를 완전히 점령해 버린 애기동백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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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제강점기에 이토 히로부미가 좋아해 기념식수 1호로 삼았던 일본산 나무 가이즈카 향나무가 국회 곳곳을 둘러싸고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가이즈카 향나무는 이토 히로부미가 경술년에 일어난 경치국치를 앞두고 순종황제를 동원해 이를 기념 식수로 정한 뒤 전국에 집중적으로 심었던 나무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본토에서 공수해온 나무를 전국 곳곳에다 심으며 우리 토종 나무들은 베어버렸는데, 애기동백나무도 치욕스러웠던 일제 식민 잔재로 일본 본토에서 공수해 온 일본을 상징하는 일본 고유의 나무이다.
▲ 동백나무 동백숲에는 해마다 당제가 치러지는데 정초에는 새끼에 금줄을 늘여 신성목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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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이 제주 4.3항쟁의 상징이 된 데는 이유 없이 붉은 피를 흘렸던 민중의 덧없는 죽음을 의미하며,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면서 부활을 상징하는 환생꽃의 의미를 갖는다. 청마 유치환은 '동백꽃'이라는 시에서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 아아 나의 청춘의 피꽃"이라고 읊었다.
동백꽃은 통꽃이다 보니 꽃이 질 때는 시들지 않은 붉은 꽃봉오리가 통째로 '툭~' 소리 내며 떨어지는데, 일본에서는 마치 무사의 목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서 일본 사무라이들이 꺼렸던 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백나무는 마귀를 막는 힘을 가진 식물로 여겨 우리나라에서는 '길상의 나무'라 취급했다.
동백꽃은 새가 꽃가루를 날라주는 조매화(鳥媒花)로 알려져 있다. 벌이 추위에 나와 있을 리 만무하다며 동박새가 꽃가루를 날라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겨울철 따뜻한 날 동백꽃을 촬영하다 꿀벌이 달콤한 꿀을 잔뜩 품고 있는 동백꽃의 꿀물을 먹으며 꽃가루를 옮겨주는 것을 몇 차례나 본 일이 있다.
▲ 동백꽃이 질 때 떨어진 모습 (좌) / 애기동백꽃이 질 때 떨어진 모습(우) 동백꽃은 나무에서 피고, 땅에 떨어져 피고, 우리 가슴에 다시 피는 나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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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과 애기동백꽃의 구분은 동백꽃은 꽃잎이 반쯤 벌어지지만 애기동백꽃은 꽃이 거의 수평으로 펼쳐져 활짝 벌어진다. 꽃이 질 때는 동백꽃은 통째로 떨어지나 애기동백꽃은 꽃잎이 지저분하게 하나씩 떨어져 바람에 날아간다. 또 일본산 애기동백은 잎 뒷면의 맥과 씨방에 털이 있는 점도 다르다. 중국의 시인 소식(蘇軾)은 동백꽃은 "불꽃같은 붉은 꽃이 눈 속에서 핀다"라고 표현했다. 동백꽃은 질 때 빛깔과 모양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본래의 모양 그대로 뚝 떨어져 내린다.
동백나무와 종(種)이 다른 외래종 애기동백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재배식물이다. 현재 제주도를 비롯해 부산 등 남부 지방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심은 일본산 애기동백나무가 거리와 공원 등지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교화(校花)가 동백꽃인데 학교에 심어져있는 것은 전부 일본산 애기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년 전 제주교육청에서 일제 강점기 식민 잔재 현황을 파악하고 청산하기 위한 '일제 강점기 식민 잔재 청산 연구용역'을 진행했는데, 친일 잔재 나무인 '가이즈까 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가 35곳(초등학교 18곳·중학교 11곳·고등학교 6곳)에 달했다는 뉴스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동백섬에 우리나라 자생종인 동백나무는 자취를 감추고 있고 일본산 애기동백나무를 잔뜩 심어놓은 것은 동백꽃과 일본산 애기동백꽃을 모두 동백꽃으로 오해해 심은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필자가 지나는 사람들에게 '애기동백꽃'을 가리키며 꽃 이름을 물어보니 시민들 대부분은 모두 '동백꽃'이라 답했다.
동백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해 남부지방 해안 곳곳에 자생하는 나무이지만 현재 제주도를 비롯해 동백꽃 명소로 거론되는 곳은 일본산 애기동백나무가 완전히 차지해 버렸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애기동백꽃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오늘의 이 현실은 우리 자생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솔직히 부끄럽다. 벚꽃이 피는 봄철에 일본에서 꽃놀이를 즐기는 하나미(花見, はなみ)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동백꽃이 피는 계절에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꽃을 일본의 정신과 결부시키기도 하는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땅에 자생하는 꽃에 대한 애정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꽃에 민족적 감정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여온 일본산 애기동백꽃을 우리 국민 대부분이 동백꽃으로 알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제주 섬에 유배됐던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라고 적었다. 엄동설한에 피는 동백꽃을 보면 필자도 마치 유배인이 된 것처럼 눈자위가 조금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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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식물분류학회 회원이며 자생식물을 30년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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