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점수 깎은 게 범죄? 학자 자존심 산산조각"

신상호 2023. 1. 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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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편 재승인 심사 참여했다가 검찰 수사 받는 정미정 박사

[신상호 기자]

 서울 중구 TV조선 본사 입구.
ⓒ 연합뉴스
 
"학자의 전문성과 양심을 부정당했습니다."

지난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합편성채널(TV조선) 재승인 심사에 참여했던 언론학자들이 최근 검찰 수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검찰은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일부 심사위원들이 방송통신위 관계자들과 공모해, TV조선에 대한 점수를 고의로 깎았다고 의심하면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심사위원들을 불러 장시간 조사를 진행했다.

종합편성채널들은 3~5년 주기로 재승인 심사를 받는데 2020년 이루어진 심사에서 TV조선은 1000점 만점에 총점 653.39점을 받아 재승인 기준을 넘겼다. 하지만 중점 심사 사항인 방송 공적 책임과 공정성 항목에서 과락(총점의 50% 미달, 210점 만점에 104.15점)를 받아 '조건부 재승인'을 받은 바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은 지난해 8월부터 종편 재승인 심사와 관련해 TV조선 감점 의혹을 감사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2020년 종편 재승인 심사에는 방송·법률·경영·기술 등 5개 분야 12명의 전문 심사위원(위원장 미포함)이 참여했다. 현재 검찰 수사는 심사 과정에서 점수를 수정한 일부 심사위원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들 심사위원은 지난해 이미 자택 및 차량 압수수색을 비롯해 핸드폰을 압수당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정미정 박사(저널리즘 전문)도 지난 3일 서울북부지검에서 10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4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 박사는 많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듯이 말을 이어갔다. 조만간 성대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목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에는 학자의 양심적인 판단이 검찰 수사로 전면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담겨있었다. 

정 박사는 "학자로서 가진 자긍심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면서 "이렇게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뒤집어 씌우고 증거 하나도 없는데 끊임없이 영장을 치고, 무리수를 두는 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검찰이 문제 삼고 있는 TV조선 심사 당시 점수 수정에 대해 "일부 항목에 '과락' 수준의 점수를 주긴 했지만 총점 기준으로 보면 TV조선에 재승인 기준(650점 이상)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줬다"며 "TV조선에 악의가 있었다면 그런 점수를 줬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방송사 재승인 심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점수를 낮게 준 게 문제라고 하면 점수를 높게 준 것도 문제가 된다. 모든 걸 다 문제삼을 수 있다"며 "종편 재승인 심사를 포함해, 수많은 형태의 정부 심사 제도가 목적에 맞게 작동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 박사는 "이 사건은 공적 심사에 참여했던 학자의 전문성과 양심을 전면 부정당한 매우 심각한 일"이라며 "정치적으로 볼 사건이 아니고, 방송학회와 언론학회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정 박사와의 일문일답.

"검사가 '전 국민이 보는 방송사 문 닫을 뻔한 일이었다' 하더라"
 
▲ 검찰, '서해 피격 첩보 삭제' 박지원·서욱 불구속 기소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첩보 삭제 지시 혐의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장관을 재판에 넘긴 2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 연합뉴스
 
- 지난 3일 TV조선 재승인 심사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상당히 늦게까지 조사가 이어졌다고 들었다.

"북부지검에서 어제(3일) 오후 1시 35분부터 시작해서 저녁 9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오후 9시를 넘겨서 조사하려면 야간 조사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당일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더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9시에 조사는 끝내고, 조서 수정을 다 한 뒤 오후 11시쯤 끝났다."

- 검찰이 어떤 혐의로 조사를 하는 것인가.

"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이 재승인 점수를 알려줘서 제가 심사 점수를 수정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TV조선 심사 항목에 중점 심사항목이 있다. 중점심사 항목 점수가 총점의 50%를 미달하면 과락이 되고, 조건부 재승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심사 점수를 수정하면서 과락이 됐고, 그래서 아무 무리 없이 재승인 될 수 있는 TV조선이 조건부 재승인을 받게 되었다는 게 주요 혐의라고 했다."

- 심사점수 일부 항목을 수정한 게 이렇게 문제가 되고 있다. 당시 점수를 수정하게 된 배경은 뭐였나?

"사실 총점 기준으로 보면 나는 TV조선에 재승인 기준(650점 이상)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줬다. TV 조선에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면 어떻게 그런 점수를 줄 수 있었겠나. 점수를 수정한 것은 공정성 평가 중 시청자 권익 항목이었다. 당시 심사를 하면서 시청자 의견을 많이 봤는데, TV조선에 대한 시청자 의견이 매우 거칠고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그래서 점수 수정이 가능하다고 해서 수정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수정하기 전 점수도 이미 과락 점수였다. 내가 수정을 해서 결과적으로 과락이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조사 받으면서 '점수가 미달된다고 재승인이 거부된 경우는 없고 조건부 재승인 사례는 다수 있었다. 또 방송사가 조건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검사가 '전 국민이 보는 방송사 문 닫을 뻔한 일이었다'고 하더라."

- 검찰이 어떤 부분을 추궁하던가?

"방통위 심사 담당 공무원들이랑 대화를 나누었냐는 거다. 사실 심사 당시 상황들이 명확하게 다 기억나지 않는다. TV조선 점수를 수정했던 것도 영장에 적시된 내용을 보고 '내가 했나보다'하는 정도다. 당시 확실히 기억나는 건 심사 마지막 날 아침, 어떤 심사위원이 점수 수정이 가능한지를 물었고, 심사위원장이 다 모이면 물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이 점수 수정이 가능하다고 했던 것이었다."

- 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명할 근거는 검찰이 제시를 하던가?

"애초에 그런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검사가 조사 당시 제시했던 건 당시 평가표, 의견서, 심사일정 정도다. 그리고 일부 참고인과 공무원의 진술이 있었다. 진술에 심사 마지막 날 방통위 국장과 나와 몇 명이 같이 앉아 있던 걸 봤다는 내용이 있다고 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건 3년 전 일인데다, 당시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이슈나 문제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검찰에도 그렇게 일관되게 이야기했다. 당시 보안요원이 심사 4일째 되는 밤에 내가 다른 심사위원과 한방에 들어가는 걸 본 것 같다는 진술을 했다고도 했는데, 3년 전에 참여한 일에서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던 내 얼굴을 보안요원이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앞으로 누가 전문가로서 양심에 따라 심사할 수 있겠나"

- 그동안 방송과 미디어 전문가로 방통위 등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을 해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겪는 것 아닌가.

"모욕이다. 학자로서 가진 자긍심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교수들이 심사에 참여했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다. 그동안 언론 분야 전문가로서 제도와 정책에 관련한 의견을 소신껏 피력해왔다. 하지만 특정 방송사가 싫다는 이유로 감정을 담아서, 그 회사가 문 닫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검찰이) 이렇게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뒤집어 씌우면서 증거 하나도 없는데 끊임없이 영장을 치고, 무리수를 두는 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 앞으로 종편 재승인 심사도 심사위원들이 객관적으로 하기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젠 무서워서 누가 TV조선 심사 점수를 낮게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이번 재승인 심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학계 추천의 심사위원들이 꾸려질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심사위원들이 꾸려진다면 과연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양심에 맞추어 심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점수를 낮게 준 게 문제라고 수사를 한다면, 점수를 높게 준 것은 문제가 안될까. 모든 걸 다 문제 삼을 수 있다. 종편 재승인 심사를 포함해, 수많은 형태의 정부 심사 제도가 과연 온전하게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 학계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정보학회는 학자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언론학회나 한국방송학회는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진 않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아쉬운 측면이 있다. 학회가 워낙 다양한 의견의 학자들이 있으니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걸 정치적 지향의 문제로 바라봐선 안된다. 이 사건은 공적 심사에 참여했던 학자의 전문성과 양심을 정면으로 부정당한 매우 심각한 일이다. 학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정부와 여당)들은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이번 TV조선 심사 뿐만 아니라, TBS는 거의 문을 닫을 판이고, MBC는 비행기도 안 태우면서 압박을 하고 있지 않나. 끊임없이 확장하면서 언론 탄압은 더 거세질 거라고 생각한다. 관련 학계가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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