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도 아니고…50일째 정류장 거슬러 올라가는 경기도민 사연
“좌석 남는 정류장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수밖에 없어요.”
지난 5일 오전 7시30분쯤 화성 동탄신도시 반송동의 한 버스정류장 앞. 유턴을 하려는 차량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정류장에 가까워지면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다급하게 사람들이 내리고 차는 즉시 자리를 떠났다. 알을 낳기 위해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정류장엔 목적지 반대편을 향해 거슬러 올라온 사람들이 넘쳐났다. ‘버스 입석 금지’가 빚어낸 풍경이다.
경기도 광역버스 ‘입석 금지’ 50일
오는 7일이면 경기도 최대 버스 운수업체인 KD운송그룹이 계열사 광역버스 입석 금지를 전면 시행한지 50일째를 맞는다. KD운송그룹은 직행좌석형 125개 노선과 광역급행(M버스) 21개 노선 등 서울시와 경기도를 잇는 146개 광역버스 노선의 입석을 전면 금지했다. 안전 우려 때문이다. KD운송그룹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이후 군중 밀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소속 버스기사들이 먼저 입석 금지를 제안했다”며 “수익률 감소를 무릅쓰고, 안전을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정류장에서 약 2㎞ 떨어진 능동 숲속마을에서 가족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온 30대 회사원 강모씨는 “집 가까운 정류장에서 빨간 버스(직행좌석)를 타면 편하지만 화성 봉담과 병점까지 빙빙 돌아 동탄에 오기 때문에 보통 자리가 없다”며 “입석 금지 전엔 서서라도 타고 갔지만, 이젠 아예 탈 수도 없어 몇대나 버스를 보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목적지 반대편 정류장까지 자가용이나 택시로 이동해 버스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도시의 사정도 비슷하다. 수원에선 지난해 7월 8일 경진여객이 15개 광역버스 노선의 입석을 금지하며 빈 좌석을 찾아 전 정류장, 전전 정류장까지 거슬러 가는 '연어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수원 광교신도시 상현역 인근에 사는 남모(56)씨는 “대학생 딸이 서울에 갈 때마다 집 앞 정류장대신 차로 10분 거리인 광교중앙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한다”며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 만석 버스를 몇대나 보내면서 벌벌 떨지 않으려면 빈 좌석이 남아있는 정류장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북수원에서 서울 사당역을 잇는 7770·7780번 버스는 서울 서남부권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노선이라 불만 민원이 쏟아졌다. 수원 장안구 파장동에 살며 서울 여의도에 직장을 둔 박모(46)씨는 아예 버스 출퇴근을 포기했다. 박씨는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이미 좌석이 꽉 차 버스를 6~7대를 보내며 1시간을 허비한 적도 있다”며 “멀리 돌아가더라도 성균관대역에 가서 전철을 갈아타며 출근한다”고 했다.
‘중간 배차’ 버스 도입했지만….
게다가 11월 말부터는 다른 광역버스 운송업체들도 입석 금지 조치에 동참하며, 경기도 광역버스 노선 318개 전체로 확대됐다. 역시 사고 예방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동시에 주민들의 불편도 해소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지난 2014년 7월에도 국토교통부 훈령으로 광역버스 입석 탑승이 금지됐지만, 민원이 속출하며 얼마 뒤 흐지부지된 적이 있어서다.
이번에도 임시 조치는 이뤄졌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경기도는 좌석이 여유 있는 정류장으로 이용객이 몰리는 걸 해소하기 위해 중간 정류장을 기점으로 하는 ‘중간 배차 버스’를 임시 투입했다. 도 관계자는 “출퇴근 시간대에 19개 노선에 55대를 투입했다”며 “국토교통부에서 결정한 광역버스 추가 증차가 마무리 되면 불편 민원이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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