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예산 확보 못 하면, 영진위 직원 월급 못 준다
[성하훈 기자]
▲ 12월 23일 한국경영인증원에서 진행된 부패방지 경영시스템 ISO 37001 수여식. 왼쪽부터 한국경영인증원 황윤주 원장, 영진위 박기용 위원장 |
ⓒ 영진위 제공 |
6일로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영진위원장)의 임기 절반이 넘어섰다. 박기용 위원장은 지난해 1월 7일 호선을 통해 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영진위원장 임기는 3년이지만 영진위원으로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여서 내년 1월 7일 위원장으로서 역할은 종료된다. 실질적으로는 올해 말까지가 실질적 임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1년간 영진위는 전임 위원장 시절의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과 프랑스의 영화 협력을 위해 전략적인 대화가 진행됐고, 지난 연말에는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정을 받기도 했다.
영화계와 소통을 위해 애쓰면서 난제들은 영진위원들의 협의를 통해 무난히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6월 블랙리스트 배상 판결 항소 포기는 대표적이다.
지난 5월 새 정권이 들어선 직후 영진위는 보수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 피해를 입은 배급사에 대한 손해 배상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논란이 됐다. 비록 정부 차원에서 항소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책임을 인정한 영진위가 블랙리스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9인 위원회가 논의해 법원에 인지대를 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마무리됐다.
지난 영진위 때 사무국장 도덕성 문제가 제기된 데 대한 영화단체들의 질타에도 이를 무시한 채 버티던 자세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블랙리스트 문제 노력은 하지만
지난 12월에는 블랙리스트 전국 독립예술영화전용관 20곳에서 블랙리스트 피해 작품 20편을 상영하는 '표현의 자유 영화제'를 개최했다. 적어도 영진위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다만 이창동 감독 <시> 상영 과정에서 2차 가해 논란이 제기되면서 행사 취지가 약화 됐다.
▲ 지난 12월 개최된 '표현의 자유 영화제' |
ⓒ 영진위 제공 |
영진위 측은 "법적 손해 배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추가한 문구"라고 해명했으나, 제작사 측이 크게 반발했다. 행사 취지와는 어긋나는 영진위 내부의 관료적 사고가 빚어낸 논란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박기용 영진위원장이 개인 일정을 취소하고 상영관을 찾아 상영 전 공개 사과와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나타내면서 일단락됐다. 담당 팀장의 징계를 요구한 제작사의 입장을 받아들여 해당 팀장에 대한 인사가 이뤄졌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새 정권 등장 이후 다시 우려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영진위에게 부담이 될 전망이다. 법원의 판결에도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반성 없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영진위에서 블랙리스트 징계자들이 본부장과 팀장에 임명됐는데, 사실상 복권이 이뤄진 이후 이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부담요소다.
고갈 앞둔 영발기금
하지만 현재 영진위의 가장 큰 현안은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 고갈 문제다.
올해 영진위 예산은 전년대비 24.5% 삭감될 만큼 감소 폭이 상당했다. 전체 250억 삭감액 중 모태펀드가 270억을 차지했다고는 해도 일부 사업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동결이나 축소가 대부분이었다(관련기사 : 영진위 예산 대폭 삭감, 바닥 보이는 영발기금 http://omn.kr/2252k).
문제는 영진위 예산은 영발기금과 연동돼 있다는 점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현재 영발기금 잔고는 500억대 수준이라고 한다. 2022년 경우 전년도(2021년) 607억 원이었고, 2022년 극장을 통한 부과금 징수가 180억 원에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800억을 빌려와 대략 1590억 원 정도를 확보한 상태였다.
여기에 2022년 각종 사업과 경상비 등으로 1000억 정도가 지출되면서 잔고가 600억 원에도 못 미치게 된 것이다.
▲ 극장 관람표에 포함된 영화발전기금 |
ⓒ 성하훈 |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500억 원대 영발기금이 영진위가 확보한 예산의 총액이다. 올해 850억원 예산을 위해서는 300억 정도가 추가로 들어와야 한다. 올해 징수하는 영발기금으로 남은 사업비를 충당하면 되겠으나 지난해 징수액 180억 원 정도에서 보듯 징수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2022년 전체 관객은 2021년 6천만 관객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한 1억 1천 2백만이었다. 코로나19 이전 평균치 2억 관객의 절반 수준이다. 만일 영발기금이 정상적으로 걷혔다면 350억 원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위기 속에 영발기금 징수가 면제되면서 절반 정도인 180억만 징수될 수 있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 획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낮다. 영화계가 예상하는 올해 전체 관객 수는 코로나19 이전의 70% 안팎이다. 국내 대기업 상영관의 한 관계자는 "올해 관객은 코로나19 이전의 65%~70% 수준인 1억 4천만 관객 정도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으나 극장 관람료 인상과 넷플릭스 등 영화산업 변화로 인해 80% 이상 증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올해 관객을 1억 5천만 안팎으로 가정할 때 감면 없이 걷힐 수 있는 영발기금은 450억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정도만 걷힐 수 있다면 올해 예산 확보는 문제가 없다.
영발기금 예산 확보 위태
그러나 감면 조항에 따라 올해처럼 징수할 경우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250억 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최소 금액 300억 이상 확보가 어려울 수 있기에 연말에 가면 영진위 직원 월급마저 못 줄 상황이라는 말은 단순한 빈말이 아니다.
영진위 측은 "영발기금 감면의 경우 일몰 조항이 없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시행령(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최소한 올해 예산을 맞출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극장 측은 예민한 반응이다. "영진위야 기금 확보 차원에서 주장할 수 있으나 영화산업이 어렵고 극장도 위기인 상황에서 감면은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CGV 황재현 전략지원 담당은 "코로나19 2년간 누적 적자가 6천억 원에 달한다"며 "지난해 관람료 인상 등의 효과를 보기는 했으나, 영발기금 면제가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부산 영화진흥위원회 사옥 |
ⓒ 성하훈 |
영발기금 위기는 지난 영진위가 별다른 대안 없이 2021년 만료됐던 영발기금 징수를 7년간 연장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데서 불거졌다. 형식적으로 상영관과 영화단체들의 동의를 받았다고는 해도 코로나19 상황에서 기금 징수 연장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제대로 된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올해뿐만 아니고 앞으로 수년간 영발기금 징수가 녹록하지 않다는 점에서 영진위 사업이 정상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비 확보가 절실하다. 국회에서 향후 3년간 매해 1천억 이상 영발기금이 국비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는 있으나 당장 200억 정도의 추경 예산이 절실한 형편이다. 영화계에서는 국가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이상우 사무총장도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신년인사회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말로만 떠들면 뭐하냐"면서 "영진위 예산은 국고에서 책임을 지고 영발기금은 말 그대로 영화발전을 위해서만 쓰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전에는 국고에서 편성하던 영진위 예산도 근래는 영발기금으로 돌리고 있는데, 한류와 K-문화 성장의 원동력인 영화산업을 관객들이 내는 기금으로만 하라는 것도 매우 유감스럽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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