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3] [팩플] 플랫폼은 가라, 기술이다… 거대한 전환 넷
플랫폼은 가라
VR에서 메타버스까지
B2B 기술만 남고
그 모오든 소셜은 가라
세계 최대 가전·IT 쇼 CES 2023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다. 북적이는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맞춤 광고로 대표되는 플랫폼의 시대는 저물고 AI 반도체 같은 기반 기술을 갖춘 기업이 부상한다. 아마존이 1만8000명을 감원하고, 메타(페이스북)가 개인정보 활용 광고로 아일랜드 규제 당국으로부터 5300억원 규모 벌금을 부과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중,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에서 펼쳐진 풍경이다.
무슨 일이야
CES 2023이 5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전 세계 20개국 3100개 기업이 참가, 10만 명 이상 관람객이 8일까지 함께하는 이번 행사는 기술 시대의 전환 흐름을 보여줬다.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짚은 올해 CES 키워드는 모빌리티, 증강현실(AR), 메타버스 등으로 지난해와 비슷하다. 그러나 결은 다르다. 올해는 농기구·중장비의 자율주행, 헬스기기에 장착된 AR, 기업 판매용(B2B) 메타버스 같이 기존 산업에 바로 적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술이 주목받았다.
① 빅 테크 “우리는 거들 뿐”
지난해 CES에 불참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아마존 등 빅테크가 귀환했다. 그런데 주연 아닌 조연이다. MS와 아마존은 운영체제(OS)나 게이밍, 광고 같은 기존 사업 외에도 모빌리티관에 별도 부스를 열고 자동차·운송 업계를 위한 B2B 서비스와 솔루션을 소개했다.
MS는 글로벌 부품사 ZF와 도심항공회사 수퍼널(현대차 자회사)이 MS의 업무 시스템이나 클라우드를 이용해 생산 단계 효율성을 높이거나 상용화를 앞당긴 사례를 소개했다. ‘산업용 메타버스’도 들고 나왔다. 제조사가 별도의 전시장이나 직원 교육장을 마련할 필요 없이, MS가 제공한 소프트웨어로 가상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 ‘MS의 메타버스로 오세요’가 아니라 ‘고객님의 메타버스 만들어드려요’인 셈. MS는 4일 공식 블로그에 CES 전시를 소개하며 공언했다. “우리는 차량을 생산하거나 고객 데이터를 수익화하거나 브랜드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아마존은 이날 파나소닉과 함께 음성 인식형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시리나 알렉사 같은 AI 비서를 차에서 사용할 수 있다. 구글도 자동차 전용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오토의 새 기능을 공개한다. 이날부터 운전자는 안드로이드 휴대전화를 자동차 내 디스플레이에 바로 연결해 길 찾기나 음악 듣기를 할 수 있고, 친구나 가족을 지정해 디지털 키도 공유할 수 있다.
② 숨은 주인공, AI 반도체 회사
반도체 설계(팹리스) 회사인 엔비디아와 AMD는 이번 CES에서 공개 부스를 차리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사업 면담용 비공개 부스만 운영하고, AMD는 부스가 없다. 그러나 양사 모두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서 AI 반도체 신제품을 발표했고, CES 관심의 한복판에 섰다.
지난 4일(현지시간) 저녁 라스베이거스 베니션 엑스포에서 리사 수 AMD 회장이 기조연설을 했다. 수 회장은 AI 노트북용 차세대 프로세서와 AI 모델링에 적합한 칩 신제품을 공개했다. 수 회장의 연설 도중에 협력사인 MS·HP·레노버·인튜이티브서지컬 등 협력사 최고경영진이 총출동해 거들었다. AMD의 칩 덕분에 클라우드·게임·헬스케어 등에서 고성능 컴퓨팅이 가능했다는 것. 수 회장은 “AI가 열어 보일 다음 세대가 온다”며 “지금은 반도체 기업 최상의 시기”라고 연설을 마쳤다.
앞서 3일에는 엔비디아가 자사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가격대가 낮은 GPU 신제품과 이를 장착한 노트북·PC 신제품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AI 도구가 아티스트의 빠른 콘텐트 제작을 지원해 창작계의 혁명이 진행된다”고 했다. 최근 음악·회화·언어 영역에서 AI를 활용한 각종 창작 지원 도구들이 생겨나고 이를 가동하게 할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중에 ‘AI 반도체 대중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③ AI·VR·자율주행, 신(新) ‘소·부·장’
모빌리티관은 면적이 지난해보다 25% 넓어졌고 개막 첫날 관람객 발길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런데 완전자율주행(레벨 5) 같은 기술보다는,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같이 자율주행 단계는 2~3에 그치더라도 기존 자동차나 산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주였다. 구글의 자율주행 웨이모는 야외 부스를 열었으나 관람객 발길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신 벤츠·BMW·스텔란티스 같은 완성차 업체가 들고 나온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나 전기 트럭, 모빌아이·루미나 등의 ADAS 소프트웨어나 장비가 관심을 받았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모라이는 도심항공교통(UAM)과 항공산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디지털트윈과 정밀지도 기술을 내놓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정지원 모라이 대표는 “이번 CES에서는 기술 자체를 자랑하기보다는 상용화됐느냐, 얼마나 효율적이냐를 보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디지털헬스관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다쏘시스템은 뇌·심장 같은 장기의 디지털트윈을 이용한 수술 고도화 기술을 선보였고, 수면테크 기업 에이슬립과 소변 분석 진단기기의 위팅스 같은 국내외 헬스 스타트업들은 AI 기술을 활용된 헬스기기를 선보였다. 존 켈리 CTA 부사장은 외신 인터뷰에서 “헬스케어, 웹3, 메타버스, 푸드테크, 모빌리티는 이번 쇼의 주요 분야”라면서 “AI는 이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재료 기술에 가깝다”고 했다. AI나 자율주행, VR 등이 산업 고도화 및 효율화를 이룰 새로운 ‘소재·부품·장비’인 셈이다.
④ 노동력 부족, AI 투입 시기 당겨
AI 도입과 ‘무인화’는 CES에서 당연한 미래로 여겨졌다. 모빌리티관 한가운데는 존디어의 무인 트랙터와 캐터필러의 광산용 무인 트럭이 거대한 위용을 뽐냈다. 이들 모두 올해 CES 최고 혁신상을 받았고, 농업과 광업 분야 자율주행차 혁신이라는 점에서 각각 ‘농슬라’와 ‘광슬라’라고도 불린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노동력 부족이 있다. 캘리포니아주 농장연합의 2020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농장주의 45%가 인력 부족을 겪는다. 존 디어는 씨앗을 2.5㎝ 이내 오차로 정확하게 심는 기기, 그 자리에 정확하게 비료를 뿌리는 기기 등 무인 혁신 농기계를 공개했다. CES가 공식적으로 밝힌 존 디어의 최고혁신상 수상 이유 역시 ‘농업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에 기여함’이었다.
국내 스타트업 딥브레인AI는 AI 휴먼이 고객 음성을 인식해 주문하는 대화형 키오스크를 전시했다. 키오스크 안에 등장한 이는 가상 인간이 아닌, 회사가 실존 모델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만든 가상 쌍둥이(디지털 트윈)다. 내가 가지 못하는 곳에 가상 쌍둥이가 대신 가서 일하며 나 대신 돈을 벌어오는 셈이다. 마이클 정 딥브레인AI 전략 담당은 “한국에서는 실감하지 못하지만 미국은 일할 사람이 없어 카페 영업시간을 단축할 정도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에서 AI 휴먼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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