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글로리’와 ‘재벌집 막내아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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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이어지는 인연이다.
송중기가 출연한 '재벌집 막내아들'이 엄청난 흥행을 거두고 물러나자마자 송혜교 주연의 '글로리'가 공개됐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아는 능력을 이용해 복수를 하고, 그런 능력이 없는 '글로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복수에 바친다.
재벌들의 초법·불법적 행태를 공권력이 엄단했다면, 학교 폭력이 확실하게 처벌받고 예방됐더라면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글로리'같은 드라마는 탄생하지 않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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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이어지는 인연이다. 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송중기와 송혜교가 연달아 드라마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송중기가 출연한 ‘재벌집 막내아들’이 엄청난 흥행을 거두고 물러나자마자 송혜교 주연의 ‘글로리’가 공개됐다. 단 5일 만이다. 제작사나 넷플릭스 측에서 두 주인공의 인연을 몰랐을 리는 없는데 일부러 맞물리게 의도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이 칼럼은 연예계 소식을 다루는 칼럼이 아니니 배우들 이야기는 여기까지.
‘재벌집 막내아들’은 원작 웹소설이 가진 현대 판타지 장르의 속성을 드라마에서도 유지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결말은 논외로 하고,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환생한다는 설정부터 주인공이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 내내 비현실적이다. 반대로 ‘글로리’는 환생이나 초능력 같은 장치가 없는 현실의 이야기다.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어른이 돼 가해자들에게 가혹한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도 재벌가의 암투를 그린 ‘재벌집 막내아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장르도, 내용도 다른 두 드라마는 매우 핵심적인 주제를 공유한다. 사적구제. 다소 낯선 표현일 수도 있겠다.
사적구제란 누군가로부터 피해를 입은 개인이나 집단이 공권력을 통하지 않고 자력으로 보복을 하거나 피해 회복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법치국가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행위이며 때로는 일반 범죄 이상의 중형으로 다스리기도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아는 능력을 이용해 복수를 하고, 그런 능력이 없는 ‘글로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복수에 바친다. 주인공의 능력은 차이가 있지만 사이다처럼 시원한 복수를 펼친다는 점은 같다.
사적구제 드라마는 그 전에도 많이 있었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장르 자체가 사적구제의 서사다.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그 누구도 공권력에 소속돼 있지 않으므로 그들이 악당을 무찌르는 일은 엄연한 사적구제다. 대중이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들의 초법·불법적 행태를 공권력이 엄단했다면, 학교 폭력이 확실하게 처벌받고 예방됐더라면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글로리’같은 드라마는 탄생하지 않았을 테다.
국가도,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완벽은커녕 몹시 불완전한 시스템이다. 차선 혹은 차악이기 때문에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사적구제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작년 최고 흥행작도, 그 인기를 이어받은 드라마도 복수극인 지금의 상황은 영 개운치 않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작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사랑받았고 ‘글로리’ 역시 1부만 공개했는데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는 중이다. 검찰, 경찰, 법원, 학교, 이런 기관들을 감독하는 기관들…. 그 안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이런 드라마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즐기고 계실까? 혹여 그렇다면, 이 칼럼을 읽고 뜨끔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문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올해 소망을 하나 말해본다. 올해는 사적구제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시들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사적구제가 별로 필요 없는 사회, 복수의 화신이 공감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기를. 어쩌면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의 소망 역시 같을지도 모르겠다.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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