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도 실패한 원주산성 재건, 레전드 김주성의 도전

이준목 2023. 1. 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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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레전드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 탄생, 최장신 사령탑이라는 진기록도

[이준목 기자]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프로농구 원주 DB가 감독교체를 선택하며 '레전드' 김주성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DB는 지난 5일 이상범 감독의 사퇴를 발표하며 김주성 코치가 남은 시즌 동안 대행으로 팀을 이끌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 감독은 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과 개인 건강상의 사유로 자진사퇴하겠다는 의사를 구단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범 감독은 프로농구 '586세대'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이다. 현역 시절엔 안양 KGC의 전신인 SBS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프로농구 원년 1호 득점-3점슛 기록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도자로서는 2011-12시즌 KGC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 감독은 2017년 4월 DB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감독은 부임 첫 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8~2019시즌에는 8위로 주춤했지만, 다음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시즌이 중단되기까지 서울 SK와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올해의 감독상만 2017-18시즌과 2019-20시즌 두 번이나 수상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후로는 최근 세 시즌간은 연이어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20~2021시즌 9위, 2021~2022시즌 8위에 그쳤다. 올시즌도 사퇴 전까지 11승 18패 9위에 머물렀다. 가장 큰 이유는 부상이었다. DB는 해마다 부상자들이 속출한 까닭에 정상 전력을 가동한 경기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선수구성상 DB의 전력은 수준급이다. 국가대표인 김종규와 두경민, 강상재를 비롯하여 이선 알바노, 드완 에르난데스, 레나드 프리먼 등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이 거쳐갔지만 번갈아가며 부상과 슬럼프에 시달린 탓에 좀처럼 시너지 효과가 나오지 못했다.

DB의 부진을 단지 이상범 감독의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성적에 대한 책임은 결국 감독이 질 수밖에 없다. 맞춤형 전술과 선수 육성능력이 강점으로 꼽혔던 최대 장점으로 꼽혔던 이 감독이지만, 최근 몇 년간은 거듭된 악재속에 팀분위기가 정체되었고 이 감독도 선수장악력에서 한계를 드러냈기에 변화는 불가피했다.

DB는 7일 현대모비스와 원정 경기부터 김주성 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소화한다. 일단 임시대행이기는 하지만 이로써 KBL에 또 한 명의 레전드 스타플레이어출신 감독이 탄생했다.

'한국의 팀 던컨'으로 불리우는 김주성 대행은 한국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데뷔 이후 무려 16시즌을 원주에서만 활약한 '원클럽맨'이었고 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 5회, 챔피언전 우승 3회 우승, 아시안게임 우승 2회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개인 성적도 프로농구 역대 통산 블록슛 1위(1,037개)이며 득점 3위(1만288점), 리바운드 4위(4,425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도 각각 2회씩 수상했고, 등번호인 32번은 DB의 영구결번까지 됐다. 2017년에는 KBL이 출범 20주년을 맞아 선정한 프로농구 올타임 레전드 12인 중 한 명으로도 선정됐다.

김주성 대행은 은퇴 이후 2019년부터 DB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하며 지도자 수업을 받아왔다. 김주성이 언젠가 DB의 차기 감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다. 하지만 타이밍과 분위기가 좋지 않다. DB의 현재 상황은 이상범같은 베테랑 감독도 수습하지 못했을 정도로 총체적인 난국에 가깝다. 김주성 대행은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전설이지만, 감독으로서는 어디까지나 초보에 불과하다.

최근 프로농구에서는 구단 출신의 프랜차이저나 레전드급 스타 출신들에게 지휘봉을 맡겼다가 줄줄이 실패를 맛본 사례가 속출했다. 이상민(서울 삼성), 추승균(전주 KCC), 현주엽-조성원(이상 창원 LG)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성과가 아쉬운 측면을 넘어서 구단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로 남은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실패는 현역 시절의 화려했던 순간을 간직하고 있던 팬들의 추억에도 상처를 줬다.

물론 허재(KCC)나 문경은, 전희철(이상 SK)처럼 나름 우승도 맛보고 성공했다고 할만한 사례도 있지만 이들도 대부분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김주성 대행의 정식 감독으로서의 승격 여부는 올시즌 망가진 팀을 어느 정도로 수습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김주성 대행은 KBL 역사상 최장신 사령탑이라는 진기록도 세우게 됐다. 프로농구 역사상 최장신 감독은 196cm의 전희철 SK 감독이었다. 김주성 대행의 신장 205cm로 소속팀 선수이자 국내 최장신인 김종규(206cm)와 비슷하다. KBL 역대 최초로 2미터 신장의 감독이 탄생하게 됐다.

프로농구 지도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가드나 슈터 출신들이고 빅맨은 드문 편이다. 더구나 빅맨 출신으로 성공했다고 할만한 감독은 프로 초창기에 활약한 신선우-안준호(이상 189cm) 감독 정도로 현 시대에 활약했다면 가드 정도의 신장이다. 현재 프로농구 10개구단 중에서도 빅맨 출신이 지휘봉을 잡고있는 팀은 전희철의 SK와 김주성의 DB 뿐이다.

사령탑 세대교체라는 측면에서도 김주성 대행의 도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 유재학, 추일승, 이상범 등 오랫동안 프로농구를 장기집권했던 586세대가 하나둘씩 현장을 떠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조상현(LG)-조동현(현대모비스)-은희석(삼성) 등 497세대(40대-90년대 학번-70년대생)들이 그 뒤를 이어받고 있는 형국이다. 그만큼 젊은 지도자들의 부상이 늦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재 프로농구 막내 사령탑이 된 김주성 대행은 79년생으로 벌써 40대 중반이다. 586세대 지도자들이 대부분 40대 초반에 일찍 감독 경력을 시작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늦은 편에 가깝다.

DB의 역사는 김주성의 입단 이후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B는 전신인 TG 시절 김주성이 입단한 첫 시즌인 2003년에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고 '원주산성'으로 불리는 고공농구의 팀컬러를 구축했다. 마지막 우승도 김주성의 현역 시절인 2007-08시즌이었다. 그리고 김주성이 은퇴한 이후 DB는 다시 정상권에 근접하지 못했다.

싫든좋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주성은 본인의 농구인생을 다 바쳤던 원주산성의 황금기를 자신의 힘으로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 막중한 중책을 맡게 됐다. 이제껏 KBL 역사를 통틀어 한 팀에서만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사례는 아직 없다. 김주성 대행이 지도자로서도 원주에서 새로운 전설을 쓸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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