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된 고전의 재탄생... 세간의 우려 잠재운 배우 출신 감독
[김성호 기자]
그레타 거윅은 1980년대에 태어난 여성 영화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연출자 겸 배우다. 미국 서부 출신 10대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2018년 작 <레이디 버드>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과 감독상 후보에 오를 만큼 그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이전까지 연출에 욕심이 있는 젊은 배우 정도로 여겨졌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에 또 한 명의 주목받는 신예가 나타났음을 알렸다.
일각에선 한 번의 성취였을 뿐이라 얕잡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그녀의 전작이나 각본들 가운데선 이만한 수준에 오른 작품이 따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심의 시선과 마주하여 거윅은 <레이디 버드> 이후 단 1년 만에 한 작품을 발표한다. 오늘에 이르러 거윅의 역량을 의심하는 영화팬이 남아 있지 않도록 만든 영화, 바로 <작은 아씨들>이다.
▲ 작은 아씨들 포스터 |
ⓒ 소니픽처스코리아 |
고전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법
거윅 앞에 처음 놓인 문제는 한 세기 하고도 또 절반이 훌쩍 지나 있는 시간차였다. 마치 가 여성들 사이에 공유되는 청교도 정신이며 남북전쟁을 둘러싼 가치 따위를 오늘의 관객들이 그 시절과 같이 받아들일 거라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네 자매가 북적북적 살아가는 모습이 그 시절엔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면 오늘날엔 어수선하고 낯설게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은 설정이 본래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잔잔한 이야기는 되려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거윅은 이 같은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한 듯 보인다. 그리고 여태껏 나온 그 어떤 <작은 아씨들>보다 적극적으로 그 구성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우선 영화의 시작부터 후반부를 끌어온다. 시간 순으로 어릴 적부터 차츰 나이가 먹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원작을 뒤틀어 현재 안에서 과거를 끌어오는 식이다.
▲ 작은 아씨들 스틸컷 |
ⓒ 소니픽처스코리아 |
복작복작 살아가는 개성 만점 네 자매
이야기는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분)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물살을 탄다. 조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7년 전 네 자매가 함께 살던 즐거운 시절이 스크린 위에 소환되는 것이다. 거윅은 7년 뒤인 현재를 푸른 화면으로, 과거를 따뜻한 영상으로 그려내 그 시절을 보다 애틋하게 느껴지도록 연출한다.
7년 전 마치 가엔 엄마와 네 명의 딸, 상주하는 가정부까지 여섯 가족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마음씨 좋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분)와 글짓기 좋아하는 천방지축 조, 조용한 성격으로 피아노 치기를 즐기는 베스, 그림에 재능을 보이는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분)까지 네 자매가 지루할 틈 없이 어울린다.
▲ 작은 아씨들 스틸컷 |
ⓒ 소니픽처스코리아 |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불어넣다
기존의 <작은 아씨들>이 소설과 같은 방식의 전개를 선택했다면 거윅은 순서는 물론 사건까지도 취사 선택해 어느 것은 소설보다 훨씬 더 강조하고 어느 것은 그저 건너뛰어 버린다. 덕분에 소설과 달리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는 장면이 적잖고, 다른 영화들에선 소외되었던 옆집 할아버지와 베스의 관계가 마음을 훈훈하게 덥힌다.
무엇보다 이야기는 사랑에 매여 있던 전작과 달리 작가로서의 성취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올콧이 제 소설 속의 조에 저를 투영했듯, 영화 속 조에 거윅이 자신을 비춘 듯 느껴질 정도다. 제게 선심 쓰듯 계약을 하려하는 편집자에게 조가 당당히 흥정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타협은 할지라도 비굴하진 않겠다는 당찬 여성작가의 자세는 이전의 <작은 아씨들>에선 좀처럼 강조되지 않던 것이 아닌가.
▲ 작은 아씨들 스틸컷 |
ⓒ 소니픽처스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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