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인류의 비만 정복 머지않았다?
비싼 값 등 과제는 산적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들어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날씬한 몸매와 건강을 바라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그러나 비싼 가격과 실효성 여부 등 논란은 여전하다.
6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된 비만 주간 콘퍼런스에서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세마글루타이드 비만 치료제 '웨고비' 발표회는 큰 호응을 얻으며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 회사는 이날 비만 치료제가 잘 듣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10대들조차도 16개월간 이 약을 복용시켰더니 3분의 1 이상이 최소 20% 이상 체중 감량 효과를 얻었다는 놀라운 결과를 전했다. 이 약은 이미 성인들에게도 유사한 효과가 입증됐었다.
이처럼 최근 심각한 부작용 없이 체중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는 차세대 비만 치료제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주로 인체 내에서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억제해주는 호르몬 인크레틴(incretin)의 역할을 모방한 것들로 일부는 이미 2형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고, 체중 조절용으로도 인증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비만 치료 연구는 제프리 프리드먼 미국 록펠러대 교수가 1994년 비만의 원인이 유전적 결함에 따른 렙틴(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식욕 억제 호르몬)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본격화됐다. 앞서 옌스 줄 홀스트 코펜하겐대 교수 연구팀이 인슐린 생산을 늘리고 혈당을 감소시켜 당뇨병을 예방하는 호르몬 GLP-1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를 응용한 비만 치료제 리라글루타이드는 2010년대 중반 임상에서 평균 8% 체중 감소 효과를 보여 위약 복용자보다 5%포인트 더 높아 임상적으로 체중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다 2021년 초 세마글루타이드라는 차세대 비만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리라글루타이드의 변형인 이 치료물질은 신체 내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하도록 설계됐다. 뇌의 신경계에 작용하는 시간이 길어져 식욕 조절 효과도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임상 결과 16개월간 1주일에 한 번씩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한 사람들은 평균 14.9%의 체중이 감소하는 놀라운 다이어트 효과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식품의약청(FDA)가 같은 해 이 약물을 성인 대상 비만 치료제로 공식 승인했다. 독일 헬름홀츠 뮌헨 당뇨병ㆍ비만 연구소의 티모 뮐러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화학적 약품 처방으로 안전하게 10% 이상 체중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었다"면서도 "새로운 처방들은 과거와 정반대로 (체중 감소 뿐만 아니라) 심혈관 건강도 개선시킨다"고 설명했다.
더 강력한 비만 치료제인 티르제파티드(Tirzepatide)도 연구되고 있다. 이 약물은 GLP-1 수용체 뿐만 아니라 인슐린 분비에 관여하는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폴리펩타이드) 호르몬의 기능을 동시에 모방했다. 지난해 2형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개발사인 일라이릴리의 임상 결과 최대치를 투여했을 때 평균 21%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 최대 30%까지 감량이 가능한 비만 치료 수술의 효과에 근접하는 수치다.
이밖에 인슐린 분비 자극 호르몬인 글루카곤(glucagon)이나 식욕과 관련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장내 호르몬 '펩타이드 YY' 등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지방을 줄이면서 근육량을 증가시키는 단클론 항체 '비마그루맙(bimagrumab)도 비만 치료제로 연구 중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같은 차세대 비만 치료제들이 효과적인 비만 치료 성능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예컨대 노보 노디스크사의 비만 치료제 웨고비의 가격은 1개월당 1300달러나 된다. 미국의 경우 많은 보험회사들이 적용을 거부하고 있어 복용자의 부담이 매우 크다. 평생 먹어야 하는 지 여부나 어떤 사람에게 잘 듣고 어떤 이에게는 잘 안 듣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도 부족하다. 한 조사에선 세마글루타이드 복용을 중단할 경우 1년 내 빠졌던 체중의 3분의 2가 복구됐다. 메스꺼움이나 구토 등의 부작용도 있다.
체중과 건강과의 관련성에 대한 오래된 논쟁도 재현되고 있다. 단순히 체중이 많다고 건강이 나쁘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 비만 치료제를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선 비만이더라도 30% 정도는 심혈관계가 건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이 비만에 대한 경각심이 옅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술처럼 약만 먹으면 언제든지 비만을 치료할 수 있으니 식생활 개선에 신경쓰지 않아 오히려 건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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