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먹는 아메바’ 한국에 출현할 가능성은? ​[건강해지구]

이해림 기자 2023. 1. 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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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러자유아메바 DNA 검출 국내 사례 있어
온난화로 국내 서식 가능성 추정
일단 감염되면 95% 사망… 치료제·백신 없어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 '뇌 먹는 아메바'로 알려진 파울러자유아메바가 국내에도 대량으로 서식하게 될 가능성이 제기됐다./사진=미국 질병통제센터(CDC)
일명 ‘뇌 먹는 아메바’, 파울러자유아메바(네글라리아 파울러리)의 국내 첫 감염 사례가 보도됐다. 뇌를 먹는다는 자극적인 표현이 공포를 부추기다 보니, 한국에도 이 아메바가 서식 중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따뜻한 물에서 잘 자란다는 파울러자유아메바, 지구 온난화로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한반도가 안전 지대라고 할 수 있을까? 국내 서식 가능성부터 치료제·백신 개발 현황에 이르기까지, 파울러자유아메바를 둘러싼 팩트를 짚어본다.

◇온난화로 높아진 수온 짧아진 겨울… 국내 증식 가능성 有
파울러자유아메바는 열에 강하다. 46°C까지도 활발히 증식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밝힌 바로 원발성 아메바 뇌수막염(PAM) 발생과 관련된 강과 호수는 대부분 수온이 26.7°C 이상이었다. 국내에서 파울러자유아메바에 감염된 사례는 아직 없다. 지난달 21일 파울러자유아메바 감염으로 사망한 환자는 태국에서 4개월을 머물다 귀국한 후 뇌수막염 증상을 보였다. 사망은 국내에서 했지만, 아메바에 감염된 건 국외에서다.

국내 감염 사례가 없을 뿐 한국에도 파울러자유아메바가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2018년 한국미생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2017년 7~12월 국내 주요 상수원수에서 채취한 52개 시료 중 6개(11.5%)에서 파울러자유아메바의 DNA 염기서열이 검출됐다. 아주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신호준 교수는 “파울러자유아메바가 국내에 100% 서식한다고 말하려면 연구 결과가 더 필요하겠지만, 서식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파울러자유아메바는 포낭형(사진 왼쪽)이 돼 낮은 기온에서 살아남고, 온도가 상승하면 영양형(사진 오른쪽)으로 변해 증식하기 시작한다./사진=미국 질병통제센터(CDC)
조사 당시 파울러자유아메바는 여름·가을에만 검출되고 겨울엔 검출되지 않았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겨울이 짧아지고 있단 것이다. 파울러자유아메바는 날이 추워지면 주머니를 뒤집어쓴 것 같은 포낭(cyst)이 돼 ‘버티기’에 들어간다. 이 동안은 수가 늘지 않다가, 날이 풀리면 영양형으로 변해 증식한다. 신호준 교수는 “추운 겨울은 아메바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며 “온난화로 수온이 높아지면 한국에도 파울러자유아메바가 살게 될 수 있고, 겨울이 짧아진 탓에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파울러자유아메바 수가 늘어난다는 건 아메바가 든 물에 노출됐을 때,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감염 드물지만 치명률 높아… 진단 늦고, 효과적 치료제 없는 탓
파울러자유아메바에 감염되는 일이 그리 흔치는 않다. 따뜻한 물 어디에나 서식할 수 있는 건 맞지만, 몸을 씻거나 물을 마시는 정도로 감염되진 않아서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0~8건의 감염 사례가 보고되며, 미국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감염자는 총 3명이었다. 물론 보고된 수보다 감염자가 더 많을 가능성은 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선 감염 규모에 비해 집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신호준 교수는 “파울러자유아메바는 코점막을 통해 몸에 침투하기 때문에 물이 콧속으로 들어가야 감염된다”며 “코 안을 물로 씻거나 물놀이 도중 코에 물이 들어가는 식”이라고 말했다. 아메바를 연구하는 경상대학교 수의과대 수의기생충학 김종현 교수는 “아메바가 있는 물에서 수영하더라도, 코마개를 해서 콧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감염되지 않는다”며 “누군가의 몸에 들어온 아메바가 다른 사람 몸으로 옮아가는 일도 없으므로 감염 자체는 드물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파울러자유아메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건 높은 치명률 때문이다. 쉽게 감염되진 않지만, 일단 감염되면 환자의 95% 이상이 사망한다. 감염 진단이 지체되는 게 첫 번째 원인이다. 코점막으로 침투한 아메바가 뇌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7~10일. 뇌에 도착한 아메바가 면역세포와 싸우기 시작한 후에야 몸이 뻣뻣해지거나 등이 굽는 등 신체 이상이 나타난다. 이때 뇌척수액을 검사하면 아메바가 검출된다. 김종현 교수는 “아메바가 뇌를 직접 공격하는 단계에서야 감염 여부가 확인되는 탓에 치사율이 높다”며 “일반 바이러스·세균 치료제로는 아메바가 죽지 않으므로, 뇌에 침투한 게 아메바인지 최대한 빨리 진단해야 생존율이 그나마 높아진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게 치료제 개발이다. 현재로선 파울러자유아메바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 기존 항생제 중 몇몇이 실험실 환경에서 파울러자유아메바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는 정도다. 김종현 교수는 “아메바 감염증을 치료할 때 암포테리신B, 아지트로마이신 등의 약물을 사용하라고 CDC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만, 이들 약조차 효과가 미미하다”며 “어떤 약이 아메바를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은 계속 이뤄지고 있으며, 그 결과가 국제 자유아메바학회에서 공유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생쥐 실험 성공했지만, 인간용 백신 개발될 가능성은 낮아
인체가 파울러자유아메바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백신’으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현재로선 생쥐 실험 단계에서 백신의 효과가 입증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백신보다 치료제 개발이 우선’이라 입을 모아 말한다.

백신은 아메바에 대항할 항체를 몸이 미리 만들게 해 감염을 예방한다. 파울러자유아메바는 동그란 입처럼 생긴 부분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면역 세포를 뜯어먹는다. 백신 연구팀은 이 ‘입’을 만드는 유전자(NFA1)를 분리해, 병원성이 없는 바이러스 껍데기에 넣어서 생쥐에 투여했다. NFA1이 삽입된 바이러스가 NFA1의 유전 정보에 따라 단백질을 생성하면, 생쥐의 면역계가 NFA1 단백질에 대항할 항체를 만든다. 항체가 생긴 생쥐는 이다음에 아메바에 노출돼도 잘 감염되지 않는다. 항체 덕에 아메바가 공격력을 잃기 때문이다.

다만, 파울러자유아메바 백신 개발은 비용 대비 효과가 작다. 백신 생쥐 실험에 참여한 신호준 교수는 “인간용 백신을 만들려면 원숭이·유인원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수차례 필요해 비용이 막대하다”며 “매년 감염되는 환자 수가 적은 탓에 이 비용을 감수하고 개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실험에 참여한 김종현 교수 역시 “아메바가 바이러스처럼 사람 간에 전파되진 않으므로 백신보단 치료제를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며 “공중 보건이나 학문적 차원에서 백신 개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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