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무뎌진 ‘상폐’ 칼날에 개미 피눈물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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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기자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자신을 '주린이(주식+어린이)'라고 밝힌 최모씨는 최근 한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한 후 계속 올라 급한 마음에 덥석 샀다고 말했다.
최씨는 그런 종목이 왜 관리종목에서 해제됐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최씨가 무턱대고 매수한 종목처럼, 지난해 12월 증시에서 '좀비기업'의 몸값이 급등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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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새해 벽두부터 기자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자신을 ‘주린이(주식+어린이)’라고 밝힌 최모씨는 최근 한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한 후 계속 올라 급한 마음에 덥석 샀다고 말했다. 주당 1650원에 650주를 매수했다. 그러나 이후 주가가 1300원선까지 떨어져 불안해졌다고 했다. 손실액이 크진 않지만, 찜찜한 마음에 자료를 찾아보니 관리종목에서 해제됐다는 소식만으로 오른 4년 연속 ‘적자 종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씨는 그런 종목이 왜 관리종목에서 해제됐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최씨가 무턱대고 매수한 종목처럼, 지난해 12월 증시에서 ‘좀비기업’의 몸값이 급등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상장폐지 요건이 완화된 첫날인 12월12일에 최근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9개 종목이 관리종목에서 해제됐고, 에이디칩스·원풍물산·중앙디앤엠 등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기업들이지만, 당장 퇴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기판이 벌어진 것이다.
관리종목 지정 기준 완화 등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코스닥 기업의 경우 ‘4년 연속 영업손실 때 관리종목 지정, 5년 연속 영업손실 때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등의 요건을 삭제했다. 갑작스러운 거래 정지 등으로 개인 투자자의 원성이 컸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자자가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퇴출 요건이 느슨해진 탓에 어지간한 부실 사유로는 증시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최씨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고, 자본시장의 건전성도 훼손될 수 있다.
부실 기업이 주가 조작에 악용된 사례는 이미 차고 넘친다. 특히 전환사채(CB)를 주로 활용하는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돈을 댄 기업이 증시에서 퇴출당하는 것이다. 무뎌진 상장폐지 칼날에 이들은 속으로 웃고 있을지 모른다. 투자자 보호라는 취지는 좋지만, 도리어 시장의 건전성을 훼손하고 개인 투자자가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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