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 러시아국립발레단 내한 추진… 문체부 입장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1개월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러시아국립발레단(Russian State Ballet Theater of Moscow)의 내한이 예고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대러 제재에 동참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 소속 예술단체의 내한은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무엇보다 내한 성사 여부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국제음악예술협회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러시아국립발레단이 오는 9월 ‘백조의 호수’로 내한공연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제음악예술협회는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에서 내한 공연 관련 공식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국립발레단이 정부소속 예술단체인 만큼 러시아 문화성의 해외 출연 허가를 받았다”면서 “이번 내한공연이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오랜 기간 동반 침체된 국내 순수예술 공연시장에 재도약의 불씨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2월까지 지역별 주최사를 공모한 후 9월 한 달간 서울을 비롯해 국내 주요 도시에서 투어공연을 가지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러시아국립발레단의 내한은 변수가 많다. 이에 대해 국제음악예술협회 관계자는 “전쟁이 이른 시간 안에 종식되길 바라고 있다. 이는 발레단도 마찬가지”라면서 “정치와 예술은 분리돼야 한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문화예술이 축소되고 소멸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문화예술의 가치는 이어가야 하며, 공연을 기다리는 발레 애호가들도 있을 것”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세계 각국에서 러시아 보이콧 현상이 촉발됐다. 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서방 투어 중이던 러시아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공연이 중단됐다. 특히 국제적으로 수요가 높은 러시아 발레단들이 잇따라 투어 취소를 당했다. 당시 예외적으로 미국을 투어 중이던 러시안발레시어터만 예정대로 진행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춤춘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내는 한편 단원들이 12개국에서 왔으며 수석 발레리나 올가 키프야크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피력한 덕분이다. 심지어 러시아 단체라는 이유로 비난이 나오자 투어 기간 중 단체명을 약자인 ‘RBT’로만 써서 러시아 단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까지 했다.
물론 전쟁이 길어지면서 ‘친푸틴’ 성향이 아닌 러시아 예술가들은 서방 무대에 다시 서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예술단체들은 투어가 중단됐는데, 대부분 러시아 정부나 러시아 기업의 후원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예외적으로 그리스계 러시아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이끄는 러시아 오케스트라 무지카 에테르나가 오스트리아와 독일 투어가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스타 지휘자 쿠렌치스의 경우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낸 적 없을 뿐만 아니라 무지카 에테르나 역시 민간 오케스트라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VTB 은행의 지원을 받는 것이 문제가 됐다. 무지카 에테르나는 빈에서 3회 공연 중 1회는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기금 모금을 내세웠으나 오스트리아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의 반대로 취소됐다. 이후 독일 오케스트라들로부터도 지휘가 잇따라 취소된 쿠렌치스는 최근 서방 기업의 후원을 받는 새로운 단체 ‘유토피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국제 예술계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한국 역시 지난해 극소수의 러시아 예술가만 입국했다. 원래 내한이 예정됐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 씨어터,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 등 예술단체의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심지어 지난해 8월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의 ‘발레 수프림 2022’의 경우 원래 마린스키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9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다가 서방 발레단 무용수들로 교체됐다. 따라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러시아국립발레단의 내한 추진은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전통예술과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한-러 민간 예술가(단체) 사이의 자율적 교류를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공적 지원이나 국가 기관의 대관 등 정부의 지원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면서 “민간에서도 이번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서를 고려해 교류를 추진하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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