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위조 사회

이용상 2023. 1. 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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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의 제목을 '저는 월스트리트 저널(WSJ) 기자입니다'로 하고 싶었다.

이른바 '위조 사회'다.

위조는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깊숙이 침투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위조한 인생으로 행복할 수 있었을까? 세상은 속여도 자신을 속이는 건 여간 힘들고 괴로운 게 아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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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산업부 차장


사실 이 글의 제목을 ‘저는 월스트리트 저널(WSJ) 기자입니다’로 하고 싶었다. WSJ는 미국인들이 꼽은 신뢰도 높은 신문사다. 그 회사 소속이라고 하면 남들이 대단하게 보지 않을까. 하지만 관뒀다. 이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는 WSJ의 명성에 누가 될까봐서다. 두 번째는 명백히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거짓말이 금방 탄로 날 게 뻔해서다. 그런데 자신의 정체를 위조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위조 사회’다.

최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하고 봤던 기사가 있다. 허위로 꾸민 이력으로 중견건설사 대표에 오른 인물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맥킨지 수석 컨설턴트, 코카콜라 브랜드 매니저 등의 이력을 앞세워 대표이사가 됐다. 거짓말이었다. 그는 맥킨지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미국 본사가 아니라 한국코카콜라에서 6개월간 판촉사원으로 일한 게 전부다. 위조로 사장에 오른 그는 유흥업소 출신 여성의 이력을 위조해 회사 임원으로 앉히려고도 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 조지 샌토스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뉴욕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하고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동성애자이자 유대인 혈통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전부 거짓말이었다는 게 들통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떤 고등교육기관도 졸업한 적이 없으며 두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며 유대인이 아니다”고 시인했다. ‘공개적 동성애자’라는 주장도 2012~2019년 여성과의 결혼 생활이 드러나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일간 보스턴글로브는 ‘도널드 트럼프 이후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한 공화당원’이라고 표현했다. 이 정도면 인생 자체가 가짜인 셈이다.

위조는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깊숙이 침투해 있다. 철수(가명)씨는 의료기기 품질관리자로 지정받기 위해 대학 졸업증명서를 위조했다. 졸업증명서만 있으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품질관리자로 지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언론사 취업 준비생이던 민철(가명)씨는 가짜 대학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로 취업에 성공했다. 현수(가명)씨는 과외를 하려고 국립대 의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했고, 준호(가명)씨는 서울 강남 유명 학원에 취업하려고 명문대 졸업장을 허위로 꾸몄다. 수진(가명)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에 걸어놓으려고 가짜 명문대 졸업장을 만들었다. 독일에 사는 진호(가명)씨는 음대 졸업증명서를 위조해 명문 음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가명을 썼지만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대전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해 10월 이들을 포함해 위조문서를 발급받아 활용한 90명을 검거했다.

영화 ‘기생충’은 인간의 계급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 인생을 위조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김기우(최우식)는 현수씨처럼 고액 과외 자리를 잡기 위해 여동생 기정(박소담)에게 부탁해 대학교 재학증명서를 위조한다. 기정은 포토샵으로 총장 직인까지 뚝딱 만들어 오빠의 가짜 재학증명서에 붙인다. 이런 간 큰 행동을 본 아버지 기택(송강호)은 자랑스러워하며 말한다.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거 없나? 얘 수석 입학하겠다.”

그들은 왜 인생을 위조할까. 아무래도 그 시작은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위조한 인생으로 행복할 수 있었을까? 세상은 속여도 자신을 속이는 건 여간 힘들고 괴로운 게 아니었을 텐데. 위조 인생을 살았던 이들의 기사를 읽으며 생각한 건 이런 거였다.

이용상 산업부 차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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