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앱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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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기 이틀 전,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이 12월 31일의 목표를 말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방 청소를 할 거예요. 정리를 좋아하는데, 평일엔 퇴근이 늦고 주말엔 늘 바빠서 못 했거든요. 새해 맞이하기 전에 개운하게 방 정리 하려고요." 팔랑귀인 나는 그날로 집에 들어가 밀린 빨래와 산더미처럼 쌓인 책, 안 입는 옷 정리를 하려고 했다.
다른 건 됐고, 스마트폰 앱이나 정리하자는 생각이 들어 삭제 작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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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기 이틀 전,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이 12월 31일의 목표를 말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방 청소를 할 거예요. 정리를 좋아하는데, 평일엔 퇴근이 늦고 주말엔 늘 바빠서 못 했거든요. 새해 맞이하기 전에 개운하게 방 정리 하려고요.” 팔랑귀인 나는 그날로 집에 들어가 밀린 빨래와 산더미처럼 쌓인 책, 안 입는 옷 정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게으른 몸은 소파에 뉘어졌다. 다른 건 됐고, 스마트폰 앱이나 정리하자는 생각이 들어 삭제 작업에 돌입했다. 일찌감치 팝업을 꺼 뒀던 뉴스 앱들을 지웠고,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주식 앱을 전부 폴더 안에 몰아넣었으며, 다수의 건강 관리 앱을 삭제했다. 볼 게 없어진 OTT와 인터넷 신문의 구독도 끊었다. 은행 앱에서 휴면 계좌와 안 쓰는 카드도 해지했다. 탄력이 생긴 나는 쇼핑 앱마다 채워 둔 장바구니를 비우기 시작했고, 즐겨찾기만 해두고 읽지 않은 콘텐츠들의 소비기한이 한참 지났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며, 메일함을 차지하는 광고 메일들도 싹싹 털어냈다. 진정한 정리는 휴대전화 포맷과 모든 서비스 탈퇴지만, 그건 나에겐 곡기를 끊는 것과 같은 의미라 그 직전에 멈췄다.
이 대대적인 제거 작업 이후 살아남은 OTT와 건강 앱과 생산성 앱과 SNS들을 봤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건 나의 호기심을 메워주고, 꾸준히 운동하게 해주고, 기록을 유지해주고, 소중한 인연들과 계속 이어주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지지해주고, 그로써 나를 묶어두는 것들만이 살아남았다. 수많은 앱이 소비자의 한철 호기심과 입소문을 통해 깔리고 각광받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제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보다 이것이 없던 시절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이 나와야만 생존할 수 있다. 사용자가 겪는 불편을 콕 파고들어 정확하게 해소해주는 뾰족한 설계가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시절이 왔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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