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일요일도 편하게 마트에 가고 싶다
얼마 전 집 근처 대형마트에 갔다. 즉석식품 코너에서 치킨을 골랐다. 가격은 1만5800원. 치킨 프랜차이즈보다 가격은 약간 저렴했다. 양은 두 배 정도로 많았다. 맛은 그저 그랬다. 갓 튀긴 치킨의 따뜻하고 바삭한 느낌은 없었다. 프랜차이즈 치킨과 마트 치킨은 장단점이 뚜렷했다. 뭐가 낫다고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려웠다.
마트 치킨은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유통업의 변화를 상징하는 품목이다. 2010년에는 한바탕 난리를 일으켰던 적도 있다. 당시 롯데마트는 5000원짜리 ‘통큰치킨’을 내놨다가 8일 만에 손을 들었다. 치킨집을 하는 자영업자의 극심한 반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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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주 일요일 마트 의무휴업 규제
전통시장 살리기 효과 거의 없어
온라인 쇼핑몰만 반사이익 누려
」
지난해 6월에는 홈플러스가 6990원짜리 ‘당당치킨’을 내놨다. 12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고물가 시대를 맞은 소비자들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 치킨을 환영했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너무 비싼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다. 다른 마트도 비슷한 상품을 잇달아 내놨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트 치킨은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유통업계에는 마트 치킨보다 훨씬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다. 2012년 도입한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선 매달 둘째·넷째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했다. 주말에 장을 보는 소비자가 가장 불편하게 느낄 만한 날을 골랐다. 만일 소비자 편익만 생각한다면 당장 없애야 하는 규제다.
그런데도 11년 전에는 사회적으로 의무휴업제가 받아들여졌다. 그 무렵은 대형마트의 전성기였다. ‘빨대효과’를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마트가 신규 점포를 열면 주변 상권의 매출을 급속히 빨아들인다는 주장이다. 마트에 휴업을 강제하면 소비자의 발길이 전통시장으로 향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규제를 도입한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유효할까. 거의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20년 8월 한국유통학회 학술대회에서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스마트경영학과) 등이 발표한 논문이다.
조 교수팀은 소비자 465명에게 마트가 쉬는 날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전통시장에 간다는 응답은 5.8%에 그쳤다. 마트 의무휴업으로 혜택을 받는 건 전통시장이 아니라 슈퍼마켓이나 온라인 쇼핑몰이란 설명이다. 그나마 2018년을 고비로 마트 주변 슈퍼마켓의 일요일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조 교수는 논문에서 “대형마트의 빨대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 의무휴업의 장기화는 오프라인 소비의 침체, 온라인 소비의 활성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오프라인 침체, 온라인 활성화는 정부 통계에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하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이다. 대형마트 3개사의 매출액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연속 감소했다. 반면 온라인 유통업체 12개사의 매출액은 3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어느새 마트 전성시대는 저물고 온라인 쇼핑 전성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12월 19일 지역상인 대표 등과 협약식을 했다. 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이 아닌 평일로 옮기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휴업일 변경은 시장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이해 당사자와 합의를 해야 하고 지방의회 과반수 찬성으로 조례도 고쳐야 한다. 앞으로 홍 시장이 구체적인 성과를 낸다면 다른 대도시 시장에게도 상당한 자극이 될 것이다.
정부도 지난해 12월 28일 전국상인연합회 등과 협약식을 했다. 이건 좀 두고 봐야 한다. 협약서 표현이 애매모호하다. “시장·군수·구청장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지속 협의하여 추진한다”고 했다. 일단 휴업일 규제 완화를 위해 사회적 논의의 첫발을 뗀 정도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 말은 영화 제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예전엔 부당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과거에 정당했다고 지금까지 정당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11년 전 소비자와 지금의 소비자는 당연히 다르다. 오래된 규제가 지금도 정당한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대형마트에 격주 일요일 휴업을 강제한 목적이 전통시장 살리기였다면 더는 맞지 않는 얘기다. 유통시장 주도권은 한참 전에 온라인 쇼핑으로 넘어간 상태다.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규제는 최소한으로 그쳐야 한다. 이제 소비자가 일요일에도 편하게 장을 볼 수 있게 하자.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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