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교토삼굴 정치
신라 선덕왕 11년(642년) 대야성(경남 합천)이 백제에 함락됐다. 딸 고타소와 사위 품석을 잃은 김춘추는 고구려를 방문해 동맹을 맺고 백제를 공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실권자 연개소문은 오히려 신라가 빼앗은 한강 이남의 고구려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 연개소문의 제의를 거절한 김춘추는 옥에 갇힌 신세가 됐다. 그는 “돌아가서 선덕왕에게 청해 고구려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거짓 수락으로 가까스로 풀려난다.
선도혜라는 고구려 장수가 귀띔해준 이야기 덕분이었다. 거북이의 꾐에 속아 용궁으로 끌려갈 뻔한 토끼가 “나는 간을 꺼내서 씻었다가 다시 넣는다”는 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내용이다. 소설 『별주부전』과 판소리 ‘수궁가’의 근원설화가 되는 구토지설(龜兎之說)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국의 설화에 등장하는 토끼는 이처럼 꾀가 많아 언제나 재치있게 위기를 극복한다.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에서도 토끼는 재빠르고 영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맹상군(孟嘗君)은 고대 중국 제나라 사람으로 전국시대 사공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풍훤이라는 식객 덕분에 수십 년간 제나라의 재상을 지내며 어떠한 화도 입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풍훤이 “교활한 토끼는 굴이 세 개가 있어야 비로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법(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며 위기 때마다 모면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둔 덕분이었다. 정치적 격동기에 살아남는 처세술로도 읽힌다.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의 해이다. 십이지(十二支)에서 네 번째 동물인 토끼(묘·卯)는 호랑이와 용 사이에 있다. 작은 덩치지만 번뜩이는 기지와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임고문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1일 당 신년인사회에서 교토삼굴을 주문했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얘기를 듣는 문 전 의장이다. 검찰 수사를 받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비해 이른바 ‘플랜B’를 염두에 둔 발언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는 1963년생(호적은 1964년) 토끼띠 정치인이다. 교토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관건은 삼굴을 찾아낼 수 있느냐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교토가 될 수 있을까.
위문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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