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낼 곳이 없어서... '극성 부모'가 되는 사람들

김윤지 2023. 1. 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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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2편

'경계선 지능'이란 지적 장애 수준은 아니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적 능력을 말한다. 본 개념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1980년 개정된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따르면 IQ 71~84 사이를 '경계선 지적 기능'으로 정의한다. 한국 역시 해당 편람의 기준에 따라 '경계선 지능'을 규정하고 있으나 일상에서의 ▲ 언어 ▲ 행동 ▲ 학습 능력 및 사회적 기능 수준과 상담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경계선 지능이 언급되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EBS '심층취재 경계선 지능' 보도 이후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의 시선과 교육 및 복지 개선 속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취재팀은 경계선 지능인이 겪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을 재조명하고 사회의 다각적 변화를 도모하고자 본 취재를 시작했다. 특히 단순 문제 지적을 넘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따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난 3월부터 경계선 지능인 당사자, 학부모, 특수교사, 경계선 지능 전문가 등 14명을 인터뷰했으며, 관련 데이터 분석 등을 진행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경계선 지능인의 삶을 총 4편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기자말>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기자]

"인간의 뇌는 재생이 가능합니다. 다만 때를 놓친다면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들어가요."

경계선 지능 전문지원기관 '마음컨택 상담센터' 이강화 실장은 경계선 지능인 교육과 관련해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적절한 자극의 부족으로 성장이 멈춰 있는 단계에 재활·재생 훈련이 들어간다면 경계선 지능인은 발달장애로 이어지지 않고 충분히 일반인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오른다"라며 말이다. 대부분의 발달 교육이 아동기에 집중돼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마음컨택 상담센터 이강화 실장 마음컨택 상담센터 이강화 실장이 경계선 지능 맞춤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초등학생 시기는 경계선 지능 아동교육의 '황금기'다. 그러나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일반학생과의 차이가 눈에 띄지 않아 교육 시기를 쉽게 놓치게 된다. 본인이 경계선 지능임을 깨닫지 못한 채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알 수 없는 어려움도 마주하게 된다. 경기도교육청 대안교육 위탁기관 '룰루랄라 Wee센터'의 곽현정 실장은 실제로 많은 경계선 지능 아동이 '다른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는데, 자꾸 또래 관계 문제가 생기는 아이'로 분류되곤 한다고 말한다.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우리는 어디로 가죠?

서울시교육청 지정 경계선 지능 전문지원기관 '써큘러스리더' 이애진 대표는 "선생님 중에서도 그냥 경계선 지능 하면 특수학급에 가야 하는 아이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특수학급 적응을 더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 수준의 지적 기능보다 높은 지적 기능을 갖고 있기에 그 자체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일반학급과 특수학급 어떤 곳에서도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현장은 학습 공백이 눈에 띄게 발생한 시점에서야 그 문제를 자각한다.
 
▲ 써큘러스리더 이애진 대표 써큘러스리더 이애진 대표가 공교육 현장에서의 경계선 지능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한정된 교육시설에 2시간 통학은 기본

공교육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학부모들은 민간 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경계선 지능 지원기관이 교통 요충지역에 몰려 있는 탓에 접근성이 낮은 지역군의 학부모는 장거리 이동에 진을 뺀다. 구로종합사회복지관 내 경계선 지능 아동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위주환 사회복지사는 실제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많다며 "인접한 다른 지역에서도 전화 문의가 오는 상황이고 미달이면 받아달라고 하시는 학부모님도 계신다"라고 말했다.

성인 경계선 지능인도 상황은 마찬가지. 경계선 지능인 대상 취업 및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감수해야만 한다. 경계선 지능 청년 정지은씨는 현재 시흥에 살고 있다. 하지만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경계선 지능 청년 모임 '엘르'에 참여하기 위해 두 번의 환승을 거쳐 약 2시간가량 통학한다고 했다. 그나마 지은씨의 경우는 가까운 편이었다. 지은씨와 함께 활동한 동료의 경우 더 멀리 가평에서도, 심지어 제주도에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이에 경계선 지능 지원 관련 기관의 전국 분포 현황을 알아보았다. 다음은 취재팀이 각종 자료를 정리해 구성한 '경계선 지능 관련 기관 전국기관분포도'다. ▲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제작된 '2021년 느린학습자 자립지원체계 구축 시범 사업 결과' 중 느린학습자 지원기관 목록 ▲ 아동권리보장원 '느린학습자 사례관리 사업'에 참여한 지역아동센터 개수 ▲ 빅카인즈를 통해 취합한 2022년 1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보도된 경계선 지능 관련 기사를 참고하였다.

수집된 내용 중 올해 활동을 중지했거나 중복되는 성격의 기관은 제외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경계선 지능 교육시설은 청소년과 아동을 대상으로 하였고 지역아동센터 개수를 제외한 123개의 교육시설 중 101개의 시설이 수도권에 위치했다.
  
▲ 경계선 지능 관련 기관 전국 분포도 자체 취합한 경계선 지능 관련 기관 전국 분포도 (2021 느린학습자 자립지원체계 구축 시범 사업 '느린학습자 지원기관 목록', 아동권리보장원 '느린학습자 사례관리' 참여 대상 지역아동센터, 빅카인즈 제공 2022년 보도자료 내용 참고)
ⓒ 김윤지, 김제원, 윤은영
 
공적 지침 부재에 혼란스러운 교육 현장

경계선 지능 자녀를 둔 부모들은 끝이 없는 사교육비에 부담을 호소한다. 이에 정부 차원의 교육복지를 누리기 위해선 정보력이 필수다. 현재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차원의 경계선 지능에 대한 공적 가이드라인의 부재로 관련 복지를 담당하는 기관 및 부서는 제각각이다. 이에 부모들은 관련 지원 및 사업을 직접 발로 뛰며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구로 느린학습자 학부모 커뮤니티 '하랑' 김효정 부대표는 공교육 내에서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극성 엄마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사업 및 프로그램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선생님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 부모가 직접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책 및 시스템 개발에 앞서 진행되고 있는 기존 프로그램 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취재팀이 조사한 바로는 전국에 경계선 지능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대안학교는 총 8곳. 그중 단 두 곳만이 서울시교육청의 위탁을 받고 운영되고 있다. '대안학교'라 불리는 이곳 대부분이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못한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에 미인가 대안교육 시설 내 경계선 지능인 교육에 대한 모니터링 및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계선 지능 학생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학습 능력과 적응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커리큘럼을 제대로 갖춘 대안학교들이 매우 드물다는 거예요. 경계선 지능 학생들이 어떤 최소한의 문해 능력, 문제 해결력, 사회적 기술 등을 가지고 졸업할 수 있는지를 전혀 모니터링 하지 않아요. 교육부에서 관리가 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 박현숙 소장 (경계선 지능 연구소 느리게 크는 아이)

[우리는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1편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3편
한국 사회 경계선 지능인의 삶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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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취재물은 '제5회 뉴스통신진흥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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