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면에 든 베네딕토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미사 집전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해 가톨릭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5일(현지시간) 오전 9시30분(한국시간 오후5시30분) 이탈리아의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됐다.
이날 미사는 현직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주례했다. 가톨릭 2000년 역사상 후임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집전한 것은 1802년 비오 7세 교황(후임)과 비오 6세 교황(전임) 이후 이번이 2번째다. 교황은 종신직이라 대개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장례미사를 집전해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 보안요원이 1000명 이상 소집됐고 교황청 주변 영공은 폐쇄됐다. 미사가 진행되는 광장엔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등 성직자 3700명과 신도 등 5만여 명이 운집했다. 한국에선 오현주 신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우리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다. 염수정·유흥식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등도 조문단으로 함께 했다.
오전 8시 50분엔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이 안치된 목관이 성 베드로 대성전 밖 광장의 야외 제단 앞에 놓였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뜻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업적을 적은 두루마리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CNN은 "두루마리 문서에는 재임 기간 중요한 순간이 언급됐다"면서 "베네딕토 16세는 성직자들이 미성년자, 취약한 이들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에 단호히 맞서 교회를 끊임없이 개혁했고 정화했다"고 전했다.
미사는 오전 9시 30분,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며 시작됐다. 86세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을 통해 전 교황에게 마지막 축복을 전했다. 교황은 "베네딕토 16세가 수년간 우리에게 준 지혜, 부드러움, 헌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에 성수가 뿌려지고 관 주위로는 향이 피어올랐다. 교황은 라틴어로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베드로의 후계자로 교회의 목자가 되게 하신 자비로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당신 말씀의 용감한 설교자요, 하느님 신비의 충실한 봉사자로 삼으소서"라고 전했다. 이후 바티칸 시스타나 합창단의 찬송을 끝으로 1시간 30분에 걸친 미사가 마무리됐다.
관은 '교황의 신사들'로 불리는 교황 수행원 어깨에 실려 광장에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붉은 띠로 관을 둘러 닫고 아연으로 만든 두 번째 관, 참나무로 만든 세 번째 관에 차례로 모셨다. 베네딕토 16세는 역대 교황 91명과 함께 이곳 지하 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됐다.
교황청은 이번 장례 미사에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베네딕토 16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공식 초청했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프 벨기에 국왕,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유럽 왕족들과 세계 각국 원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에 마련된 귀빈석을 채웠다.
1990년대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되기 전 인터뷰했던 BBC 라디오 진행자 에드 스터튼은 "인터뷰하기 전 무시무시한 상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이고 따뜻한 사람은 없었다"면서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12월 31일 95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그는 뮌헨 대학과 프라이징 대학을 거쳐 본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가톨릭 전통 교리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보수 이론가로 명성이 높았다.
재임 기간 그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소재가 되기도 한 가톨릭 사제들의 과거 아동 성추행 추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교황청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베네딕토는 2011년~2012년 사제 400여명의 성직을 박탈하는 등 불의에 맞서 단호한 조처를 했다.
2005년 제265대 교황에 취임했던 8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직을 자진 사임했다. 교황의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약 600년 만에 일어난 초유의 사태였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 '두 교황'이 만들어졌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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