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건 모욕과 계약해지, 어느 쿠쿠 점주의 비극
필자는 가맹점주 출신으로 현재 자영업자 단체인 전국수탁사업자협의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연재 '위기의 자영업'을 통해 기업에 종속되어 고금리, 고물가, 고임금, 그리고 본사 갑질에 시달리며 고사 중인 종속적 자영업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기자말>
[권성훈 기자]
'창업비 회수는커녕 아직 자리도 잡지 못했는데 본사가 사업이 어렵다며 해당 사업을 철수하고 계약을 해지한다. 물론 그 본사는 지금도 승승장구 중이다.'
'빚까지 끌어와 천신만고 끝에 매출 좋은 가게를 만들었더니 간단하게 재계약을 거절하고 그 가게를 직영점으로 돌린 후 보상이라며 적자 수준의 가게를 던져 주는 본사가 있다.'
위 두 가지 사례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설마'라고 한다. 가끔은 원래 사실보다 과장한 것 아니냐고도 한다. 그러니까 '선진'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종속적 자영업자'라는 낯선 단어로 불리는 가맹점, 대리점, 수탁사업 업계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 쿠쿠전자 홈페이지 |
ⓒ 쿠쿠 |
도봉구에서 쿠쿠전자 대리점(수리점 겸업)을 하는 이윤호 사장은 지난해 12월 5일, 본사로부터 점주 단체(쿠쿠점주협의회)에서 같이 활동한 동료 점주 11명과 함께 '서비스업무계약 만료에 의한 계약갱신 거절' 통보를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년여 전 본사와 분쟁을 겪은 터라 그동안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당시 본사의 행위가 부당했다는 결과를 행정부와 사법부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본사가 이렇게나 막무가내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20여년 전 지인의 소개로 서비스 센터를 시작했죠. 쿠쿠가 당시 밥솥 판매량이 늘자 본격적으로 서비스 센터를 모집한 거죠. 그러다 제품 판매도 하는 '전문점'을 줄 테니 대로변에 30평 이상의 상가를 얻어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서비스 센터는 월세가 싼 이면도로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판매점도 겸업하게 되었죠. 그렇게 재창업하는데 2억여 원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 당연히 리모델링 등 재투자도 했고요."
점주와 쿠쿠전자 본사의 갈등은 2020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쿠쿠전자는 '홈케어 서비스'라는 새로운 서비스 사업을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타 회사 가전도 관리해 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당장 일에 필요한 숙련된 기술자를 점주가 알아서 구인하고 월급을 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본사는 이와 관련하여 점주들과 사전 협의는 물론, 별다른 계획이나 대안도 없었다는 게 점주들의 주장이다. 이에 쿠쿠 점주들은 협의체를 만들고 본사 계약서의 불공정한 약관을 공정거래위원회의 약관법 위반으로 조정신청을 하여 조정 결정을 받았다.
이에 대한 본사의 반응은 대화가 아닌 협박이었다고 한다. 본사는 팀장을 앞세워 나이든 점주들에게 '놈', '새X' 등의 폭언과 욕설로 계약해지를 언급하며 옥죄었다. 당시 이 사건은 다수의 언론에 보도되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본사는 지난해 2월 점주 단체를 완전히 와해시키고자 단체 활동을 한 4명의 점주에게 계약갱신 거절을 통보하였다. 이에 피해 점주 2명은 법원에 '지위보전 가처분'을 제기하여 승소하였다.
이렇게 행정적으로도 사법적으로도 본사의 행위가 부당했다는 결과를 받아냈지만, 본사는 아랑곳없이 다시 한 번 단체 회원 점주들에게 계약갱신 거절을 통보했다.
"내 가족 먹여 살리는 내 가게니까 당연히 애정을 가지고 노력했죠. 예전 좀 여유 있을 때는 보증 기간을 넘긴 제품도 가끔은 무상으로 수리해 주기도 했죠. 그 부품 값도 인건비도 제 주머니에서 나가지만 동네 장사는 야박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거죠.
오래전, 인근 소방서의 밥솥이 우리 회사 제품이더라고요. 상태가 엉망이길래 보기 안쓰러워 제가 공짜로 깨끗하게 수리해줬어요. 그렇게 하니 내 마음도 좋고 사용자도 기분 좋으니 따지고 보면 이런 게 영업이잖아요. 그렇게 20여 년 일군 사업장에서 나가라네요. 이유를 물어보니 무심하게 그냥 계약서대로 했다고 하더군요."
돌아온 건 모욕, 남은 건 궁핍
"한때는 수입이 괜찮았어요. 그래서 직원도 6명까지 고용하기도 했죠. 그 뒤 수입이 계속 줄었어요. 본사는 우리에게 파는 부품 값은 계속 올리면서 소비자 판매가는 그대로 묶어 뒀거든요. 거기다 우리에게 위탁한 보증 수리 공임(인건비)은 수십 년 전에 책정된 5000원에서 변함이 없었죠. 그 사이 각종 경비와 인건비는 계속 올랐고요.
이러니 가만히 둬도 죽을 판인데. 우리 점주들 가게 옆에다 본사가 직영점을 내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보복 출점이죠. 더는 버티기 힘들어 스스로 폐점한 가게도 많아요. 한마디로 말려 죽이는 거죠.
돌이켜보면 참 기분이 그래요. 현재 쿠쿠전자 밥솥이 시장 점유율 1위입니다. 점주들은 몰락하고 있는데 본사는 승승장구 중이라면, 달리 보면 우리 손에 쥐어지던 그 돈의 일부를 본사가 점점 더 많이 가져가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본사의 의도대로 계약이 해지된다면 이후 어떤 대안이 있냐고 물었다.
"대안이요? 그런 거 없어요. 내 나이가 예순둘이에요. 아는 거라고는 이게 전부인데 이 나이에 업종 전환은 꿈도 못 꿔요.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니까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죠. 현실은 여전히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눈앞이 캄캄하죠."
한편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쿠쿠 본사는 "정기적인 고객만족도 평가 등을 실시해 다양한 사안을 숙고해 계약 갱신 여부를 결정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라고 밝혔다.
오너 2세의 사다리가 된 점주들
지난해 7월 쿠쿠전자의 경영 승계와 관련한 모 언론사의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쿠쿠, 장남엔 경영권 차남엔 1530억 현금', 해당 기사는 쿠쿠전자의 가업 승계 과정에서 장남에게 경영권이 주어진 대신 차남에게는 현금 1530억 원을 주어 별다른 '잡음' 없이 승계가 이루어졌음을 전했다. 기사에서 '잡음'이란 표현이 눈에 박혔다.
이 기사는 피해 점주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쿠쿠전자라는 공동체 성장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오너 2세를 위해 153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선물로 주면서 '국내 밥솥 시장에서 점유율 1위, 2022년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 15년 연속 1위, 7회 연속 한국 서비스 품질 우수기업 인증 획득'이라는 족적에 크게 일조한 점주에게는 계약갱신 거절과 점주 사업장 바로 옆에 본사의 직영점을 출점이라는 고통을 안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쿠쿠전자는 2020년 점주와의 분쟁 때 점주들에게 욕설과 협박을 했던 중간 관리자를 이번에 보란 듯이 팀장으로 승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점주 입장에서 이는 일종의 과시성 압박이고 모욕이나 다름없다.
쿠쿠전자는 밥솥으로 유명한 회사다. 이는 다른 말로 국민에게 매우 친숙한 회사라는 뜻이기도 하다. 시장 점유율 1위라고 하니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쿠쿠 밥솥으로 지은 밥으로 고단한 하루를 위로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광고는 유달리 친숙하고 친근하고 따뜻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광고의 이면에는 이렇게 냉혹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쿠쿠전자 도봉구 점주 이윤호 사장은 인터뷰 말미 그동안 가장 힘들게 한 건 자신과 동료 점주들에 대한 모욕이었다고 했다. 양반이 하인을 대하듯, 심지어 점주를 소모품 취급하는 본사의 태도가 너무 불쾌하고 힘들었다는 것이다. 정말 공감 가는 말이었다. 인간에게 궁핍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존중의 상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불안'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불편은 모욕을 동반하지만 않으면 오랜 기간이라도 불평 없이 견딜 수 있다. 병사나 탐험가들이 그런 예다. 그들은 사회의 극빈층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궁핍을 기꺼이 견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존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이윤호 사장을 비롯한 피해 점주 11명은 본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행위로 신고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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