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도 적군도 '난감', 팬들은 '분노'…감독 경질한 흥국생명 후폭풍

배영은 2023. 1. 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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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선수들을 다독여서 눈앞의 경기를 잘 끝내겠다. 프로로서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달 29일 1위 현대건설을 꺾고 1위에 한걸음 다가가자 기뻐하는 흥국생명 선수들. 그러나 나흘 뒤 구단이 감독을 사실상 경질하면서 충격에 빠졌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이영수(45) 감독대행은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불과 사흘 전 자신이 보좌하던 감독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팀에서 쫓겨난 상황. 여론의 포화 속에 대신 지휘봉을 잡게 된 이 대행은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와의 홈 경기에 앞서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많지 않다. 감독님은 그저 '힘 내라'는 말씀을 하시고 떠나셨다"며 "나 역시 처음 보는 상황이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기에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 경기를 잘 끝낸 뒤 거취에 관해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흥국생명은 지난 2일 권순찬 감독과 김여일 단장의 동반 퇴진(본지 단독 보도)을 발표했다. 임형준 구단주는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감독의 결정이 부합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권순찬 감독과 헤어지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도 이후 권 감독의 선수 기용에 간섭하던 구단 측이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퍼졌다. 일부 선수도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수 대행은 "(감독 경질이 발표된) 2일은 분위기가 좋지 않아 정상적인 훈련이 어려웠다. 선수들과 대화를 하면서 분위기를 추슬러야 했고, 되려 선수들이 나를 걱정해주기도 하더라"며 "김연경 선수는 컨디션 문제로 3일 훈련에 빠졌지만, 다른 선수들은 평소처럼 운동했다. 또 4일엔 김연경 선수도 별 탈 없이 훈련에 함께했다"고 전했다.

이 대행은 또 "지난해 5월부터 권 감독님과 스태프가 꾸준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훈련에) 큰 문제는 없었다"며 "평소 권 감독님께서 스태프들 의견을 많이 들어주셨다. 훈련도, 경기도 평상시처럼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팀을 2위로 이끌다 돌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권순찬 전 감독. 최영재 기자


흥국생명은 정규시즌 절반이 지난 3라운드까지 2위를 지켰다. 1위 현대건설과는 승점 3점 차다. 지난달 29일 3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선 승승장구하던 현대건설을 꺾어 사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실제로 이 대행은 "현대건설전 승리 후 선수들에게 1일까지 휴가를 줬다"고 했다. 그런데 선수들이 연말연시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던 2일, 감독이 8개월 만에 물러난다는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 대행은 "그런 일이 생겼으니 팀 분위기가 좋았을 수는 없다"며 "스태프 입장에선 사흘 간격으로 계속 경기(5일 GS칼텍스전, 8일 IBK기업은행전, 11일 현대건설전)가 이어지는 부분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특히 11일 현대건설전은 (우승을 위해) 중요한 경기"라고 했다.
팬들의 분노는 여전히 들끓고 있다. 일부 팬은 이날 경기장에 입장하는 관중에게 자체 제작한 클래퍼를 배포했다. "구단이 제작한 클래퍼를 들고 응원할 수는 없다"는 뜻에서다. 팬이 만든 클래퍼엔 앞뒤로 '행복배구', '팬들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팬들은 현대건설전까지 클래퍼 배포를 이어갈 계획이다.

하필 감독 경질 후 첫 경기에서 흥국생명을 만나게 된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상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겠지만, 올 시즌 고생하고 있는 우리 선수들에게도 지금은 무척 중요한 시기다. 중요한 경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나도, 선수들도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5위 GS칼텍스(승점 25)는 3위 한국도로공사(승점 26), 4위 KCG인삼공사(승점 25)와 함께 치열한 봄 배구 싸움을 하고 있다.

인천=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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