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인대 아픈 노동자들... 정말 '건강한 노동' 이뤄지려면

최민 2023. 1. 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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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바꾸는, 노동자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③] 유해요인조사 도입 초심 돌아봐야

[최민]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하여 근골격계 통증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산재로 보상되는 질병의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질환이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다. 고용노동부가 고시하는 11가지 근골격계 부담작업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는 경우 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작업장 상황, 작업조건, 노동자들의 증상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업무상 근골격계질환 조사와 예방 방안을 법으로 정한 것은 2003년이다.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한국통신 전화 교환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 직업병 투쟁이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진행된 근골격계질환 집단 요양 투쟁은 조금 달랐다.
 
 ‘멈춰! 반노동 엎어! 불평등 - 2022세계노동절 대회’가 지난 2022년 5월 1일 오후 서울광장 부근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석한 콜센터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당시엔 IMF 구조조정 이후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지나간 자리에 높아진 노동강도로 인해, 매우 많은 제조업 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공론화되기 시작하자, 이전엔 '골병'이라 불리며 생산직 노동자라면 누구나 갖고 사는 것으로 여겨지던 각종 질병이 실은 '일과 관련'되었다는 것. 그 뿐 아니라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노동강도처럼 '노동자 건강'과는 멀어 보이던 요인들이 실은 건강과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노동자 투쟁으로 만들어낸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당시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사업장에서 70~80%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산재 요양을 신청하고 인정하라는 투쟁을 벌였다. 이때 노동자들의 요구는 질병을 치료해달라는 것도 포함했지만,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업무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낮춰라, 시간당 생산량을 줄여라, 노동 강도를 낮춰라, 인원을 충원하라"라는 요구는, 작업장의 리듬과 속도를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기준으로 결정하라는 요구였다.

노동자가 작업 과정에 대한 권한 및 지배력 등을 갖는 것이,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데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몸으로 느끼게 된 계기가 집단 산재 요양 투쟁이었다. 1999년까지 연 100~200건이던 근골격계질환 산재 신청이 2001년 1500건이 넘어설 정도로 투쟁은 폭발적이었다.

근골격계질환을 매개로 현장 통제력에 대한 투쟁이 확산하자, 정부가 내놓은 것이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다. 전국적으로 모든 사업장에서 강제로, 또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제도이기도 하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진행 중인 금속노조 부평공단지회 실행위원들의 현장조사 모습.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에 마창산추련(경남지역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 9개 사업장에서 "현장의 전문가는 노동자"라며 노동자들이 직접 유해요인조사에 나서 현장을 평가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자동차 부품 사업장인 두원정공에서는 작업 강도를 높인 U자, O자 형 라인을 일자로 펴고, 생산 물량을 낮춰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제도화는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사업주들은 작업 앞뒤로 체조를 하게 하거나 작업용 보조도구를 제공하고, 일부 대기업들은 사내에 멋진 피트니스센터를 만드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마하였다. 근골격계질환의 직업병 승인이 증가하자, 노동자들은 작업장 속도에 맞서 싸우는 대신 혼자 치료받고 쉬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의 투쟁으로' 도입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도 화석화되었다.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 참여 없이 외부 기관 혹은 전문가가 현장을 한두 번 돌면서, 고시에 제시된 11가지 부담작업에 해당하는지만 체크하고, 매년 유사한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개선 방안이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감시하지도 않고, 3년 전 제시되었던 개선 과제가 다음 보고서에 그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도 노동조합의 역할은 조사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 참여하거나, 현장 조사에 동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조사 이후 인간공학적 개선 방안을 도입하여 일터를 개선하는 사례들도 있지만, 작업량이나 인력배치 등 애초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도입하게 했던 문제의식에까지 닿는 개선 방안이 얘기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지금 남아있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제도화 이후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유해요인조사, 왜 하고 있습니까... 초심으로 돌아가야

이미 20여 년이나 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도입의 역사를 돌아본 이유는 뭘까. '건강을 살리고 현장을 바꾸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하기 위해, 우리가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하려 했던 맥락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픈 몸을 증거로 자본의 속도와 강도가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해친다는 점을 드러내어 투쟁했던 노동자들이 도입하고자 했던 유해요인조사는, 단순히 인간공학적 위험을 살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 노동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우리가 하는 일의 속도는 건강을 유지하기에 적절한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어떤 아픔과 불편함이 있는가를 확인하고 바꿔내는 것이 애당초 그 목표였을 것이다.
 
▲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 설명자료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을 설명하는 안전보건공단 자료. 공단에서도 사무직 근로자의 업무가 근골격계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유해요인조사에 관여하는 노동조합에도 이런 목표가 있어야 한다. 3년마다 해야 해서 조사한다는 것은 사업주의 대답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노동조합의 이유는 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노동을 자세히 살펴서 노동자를 아프고 불편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를 찾아내는 것, 혹은 노동조합이 이미 알고 있는 이유를 노동자들과 공유하는 것, 조사와 공감대 형성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성장하는 것, 임금 외에 구체적인 안건을 가지고 회사와 협상하는 것, 작업장을 운영하는 기준에 노동자의 몸과 마음, 안전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 등 어떤 것이든 목표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수단화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작업장 통제가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화석화된 유해요인조사를 넘어

'껍데기만 남았다'라고 비판했지만, 그럼에도 노동자 스스로 조사위원이 되어 노동을 살피고, 조합원들과 소통하며,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개선안을 관철하기 위한 시도는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사실 많은 사업장에서 '전문가'가 하는 '11개 근골 부담작업에 들어가는지 체크하는 수준의 조사'는, 당사자들도 못 할 것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노동자들이 직관적으로 알기 쉬운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직접 수행해 봄으로써, 이후 위험성 평가 등 다양한 노동안전 사안에 대한 노동자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 문제 발견과 해결 과제 제시에 노동자 입장이 반영되게 할 수도 있다.

반드시 '직접 조사'하는 것만이 모범 사례는 아니다. 한 사업장에서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일환으로 근골격계 질환 산재 요양을 다녀온 노동자 전수 조사를 시행했다. 산재 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이 요양 과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현재 상태는 어떤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경험자 전원을 인터뷰하고 현재 상태에 대해 의사 문진을 제공했다.

그 결과 근골격계 산재 요양 경험이 매우 많은 이 사업장에서도 산재 요양자에 대한 낙인과 이로 인한 고립감이 신체적 통증 못지않게 큰 고통을 주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복귀 재활 프로그램이나 복귀 시 업무 배치 원칙이 부재하여 요양 종결과 복귀마저 불안전하고 불확실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를 확인한 노동조합은 작업장에 근골격계 자문 의사제를 도입해 산재 요양자 복귀 시 업무 적합성 평가 및 단계적 복귀 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복귀 후 배치 결정 과정에 당사자 의견 반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결과에 대해 조합원 교육을 시행한 것은 물론이다.

다른 시도도 있었다. 2003년 이후 3년마다 유해요인조사를 꾸준히 해 온 한 사업장에서는, 사업장 환경에 큰 변화가 없으니 매번 반복되는 조사를 똑같이 하기보다 그동안 제안되었던 현장 개선 요구가 실제 얼마나 현실에 반영되었는지 점검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구체적으로는 부서별로 그동안의 유해요인조사 보고서를 검토해 제안되었던 개선 과제를 모두 뽑고, 반영된 것은 어떤 것인지, 개선이 되었다면 잘 유지되고 있는지, 추가적인 개선 요구는 없는지 조사했다. 반복적으로 작업 자세와 중량물을 측정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면서도 실질적인 조사였다. 정리된 내용은 다음 해 부서별 개선 과제 및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이를 통해 '조사만 하느냐'던 현장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무용론이 감소하고, 일상적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활동에 조합원들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가 왜 3년마다 되풀이해서 조사하고 있는가, 정말 필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단순히 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기 위해 우리는 무슨 노력을 할 것인가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노동자 건강을 살리고 현장을 바꾸는 유해요인조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유해요인조사에 개입하기 어렵다. 다만 회사 주도 하에 유해요인조사라도 진행된다면, 일단 노동자들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이게 제대로 조사과정에 반영됐는지 주변 사람들과 얘기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는 않을까? 화석화됐던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가 현장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반짝이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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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023년 1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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