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이적행위" 펄쩍 뛰더니…대통령 경호구역, 北무인기에 뚫렸다
지난달 26일 5시간 넘게 영공을 침범한 북한 소형 무인기 중 1대가 대통령 경호를 위해 만든 비행금지구역에 진입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그동안 비행금지구역 진입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계속 부인해오던 군 당국이 꼬리를 내렸다. 군의 전반적인 방공작전 능력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5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승겸 합동참모의장이 4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북한 무인기 대응책을 보고한 자리에서 북한 소형 무인기 1대가 P-73(비행금지구역)에서 비행한 항적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P-73는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를 중심으로 반지름 3.7㎞가량의 원 모양으로 그어놓은 구역이다. 대통령 경호 목적으로 국가 중요 행사나 군사 작전 등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비행을 할 수 없다. 용산뿐만 아니라 서울 도심과 한강 이남의 일부 지역도 들어가 있다.
지난달 26일 김포와 파주 사이 한강 중립수역을 거쳐 영공을 침범한 북한 소형 무인기 1대가 1시간 정도 서울 상공을 비행하면서 P-73의 북쪽 끝단까지 들어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은 북한 소형 무인기의 항적을 초 단위로 정밀분석해 확인한 사항이다.
군 관계자는 “P-73를 스치듯 지나간 수준”이라며 “용산 상공은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 안전을 위한 거리 밖”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소형 무인기가 촬영했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군 당국이 서울 북부 지역에서만 날아다녔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31일 '북한 소형 무인기가 P-73 외곽을 비행했다'는 보도에 대해 국방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행금지구역 안을 통과했을 확률이 높다”고 밝히자,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이적 행위”(국방부), “사실이 아닌 근거 없는 이야기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합참)고 반박했다.
군 당국은 열흘 만에 북한 소형 무인기의 비행금지구역 진입을 시인한 데 대해 “지난달 26일 당시 작전요원들이 항적을 봤지만, 무인기라고 평가를 안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침범 당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온 북한 소형 무인기를 식별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친 데 이어 5시간 넘게 영공을 휘저었는데 단 한대도 격추하지 못했고, 이번엔 탐지에 실패한 게 드러났다.
방공작전의 탐지→식별→격추 중 군이 단 하나도 제대로 해낸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서울엔 대통령실과 국방부, 합참 등 주요 시설이 몰려 있기 때문에 레이더와 방공포 등 방공망이 촘촘하게 깔려있다. 야당뿐만 아니라 “이번에 한번 확실히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다”(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 여권에서도 군 당국을 꾸짖는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은 “이번 사태는 의지ㆍ시스템ㆍ훈련의 3무(無)가 낳은 참사”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소형 무인기가 MDL을 넘자마자 떨어뜨린다는 적극적 의지, 각종 방공자산을 통합 운영하는 시스템, 적 항적을 탐지·식별하고 이를 요격하는 훈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9ㆍ19 군사합의 이후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강원도 고성의 육군 마차진 대공 사격장을 폐쇄한 게 영향이 컸다는 반성이 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벌컨이나 비호 등 대공포 표적으로 무인기를 띄우는데, 마차진이 무인기 비행금지구역(MDL 15㎞ 이내)에 있다는 이유로 훈련을 4년간 그만둔 것이다.
권 전 사령관은 "군 당국은 장비와 무기 탓만 하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훈련"이라며 "북한이 다음에도 무인기를 보내면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합참은 이날 북한 무인기 침범에 대응하는 합동방공훈련을 열었다. 지난달 29일 이후 일주일 만이다. 공군 KA-1 전술통제기와 육군 코브라 공격헬기 등 항공전력 50여대가 참가했다. 이번엔 실사격 훈련을 벌였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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