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외교문서 관청, 부정 채용 횡행했다
친족으로 얽혀있던 조직 문화 드러나
문턱 아예 낮춰 시험 자격 주기도…
사자관청(寫字官廳)은 조선 시대에 외교문서를 담당한 승문원(承文院) 소속 관청이다. 조선 중기인 중종 대에 도입돼 운영됐다. 관원은 사자관(寫字官)이라 불렸다. 주된 업무는 외교문서 작성. 왕실과 관련한 다양한 문헌도 만들었다. 사료 부족으로 자세한 활동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다. '속대전'과 '육전조례' 등 법제서로 직제, 어람건 의궤와 왕실 족보 등 왕실 서적으로 서체를 각각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국립고궁박물관은 5일 정체된 연구를 이어갈 토대를 마련했다. 2021년 입수한 '사자관청등록(寫字官廳謄錄)'을 최초로 번역한 '국역 사자관청등록'을 발간했다. 등록(謄錄)은 관청에서 조치해 행한 일이나 사실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사자관청등록에는 조선 말기 6년(1877~1882) 동안 사자관청에서 일어난 다양한 일들이 날짜별로 생생하게 담겼다. 사자관청의 업무와 사자관의 활동을 파악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초 사료다. 김인규 고궁박물관장은 "사자관청의 직위 체계를 비롯해 외교문서와 왕실 기록물 작성 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라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왕실의 사자관청 운영 및 사자관의 역할을 자세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사자관청등록에는 사자관청에서 있었던 일과 관련한 기사 671개가 수록됐다. 생도방(生徒房) 입속(入屬)부터 사망까지 기록돼 사자관에 대한 인물 정보뿐만 아니라 대대로 관직을 이어 나가며 친족으로 얽혀있던 조직 문화까지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생도방은 임관 전 소속 관아의 학문과 기술을 익히던 사람들의 수련 공간이다. 입속 절차는 당시 외국어 통·번역을 담당한 사역원의 완천(추천 과정)과 비슷했다고 추정된다. 사역원 입속을 원하는 자는 사조단자(가족의 이름·생년월일·벼슬 따위를 기록한 단자)와 보거단자(추천자 명단)를 제출했다. 녹관 심사에서 거부를 뜻하는 '결(結)'이 두 번 이하로 나와야 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졌다. 고궁박물관 측은 "사자관청등록에 완천(完薦)이란 용어와 대상자 아래 결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역관과 유사한 절차를 거쳐 동몽(童蒙)에 입속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동몽은 사자관이 되기 전 수련 단계를 뜻한다.
사자관 심사는 그다지 공정하지 않았다. 다른 기술직 중인과 마찬가지로 집안 대대로 관직을 이어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상백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조교수는 해제에 "사자관청 내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문화로, 집안사람이 관청에 있는 경우에는 일종의 혜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었다. 구체적인 사례는 사자관청등록에서 여럿 확인된다. 일부 사자관의 자제들이 완천에서 결을 세 번 이상 받고도 시험을 치렀다. 특히 1879년 3월에는 자격이 한 명에게만 돌아가자 승문원 제조(提調·관아 일을 다스리던 직책)가 문턱을 아예 낮춰버렸다.
사자관이 의무적으로 응해야 했던 녹취재(녹봉이 있는 벼슬을 주기 위해 진행된 시험)에서 3년 동안 할봉(割封·시험을 주관하는 관리가 과거 답안지의 봉미를 뜯던 일)이 이뤄지지 않은 일도 있었다. 인적 사항 부분을 잘라서 별도로 보관하지 않은 것. '국역 사자관청등록'은 "할봉을 하지 않으면 시권에 응시자의 인적 사항이 그대로 드러났을 텐데 3년 동안이나 할봉이 없었다는 건 집안으로 엮인 사자관 간에 주어진 혜택이 오랜 기간 있었음을 의미한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사자관청에서 한집안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대를 이어 사자관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명시했다.
사자관청등록에는 사자관이 외교문서, 왕실 기록물 등을 작성한 활동 내용도 상세하게 기록됐다. 일부 기사는 장서각에 현존하는 1882년 대청 문서 쉰한 건 등과 관련성까지 확인된다. 고궁박물관은 "비록 조선 말기 짧은 기간 작성된 관청 일지지만 그간 사료의 부재로 인해 사자관의 연구가 부진한 상황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사료가 될 수 있다"면서 "이번 국역서 출판이 사자관의 활발한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발간된 책자는 국공립 도서관과 관련 연구기관 등에 배포된다. 문화재청과 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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